딸기가 보는 세상

글리벡의 패배

딸기21 2013. 4. 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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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거대 제약회사가 요구한 약품 특허권을 인도가 끝내 거부했네요. 인도 일간 더힌두는 1일 대법원이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제기한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특허권 청구소송을 기각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노바티스는 2006년 인도에서 약물성분 함유량을 늘린 ‘고용량 글리벡’의 특허를 신청했다가 거부당하자 인도 지적재산권심사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노바티스는 이 약이 이전의 제품들보다 향상된 것이므로 특허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용량을 늘린 것만으로는 특허를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창의성과 고유성을 충족시킨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7년을 끌어온 이 소송에서 법원이 노바티스의 주장을 기각함으로써 인도의 제약회사들은 이 약을 계속 생산해 싼값에 공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인도 암환자지원협회를 대변해온 아난드 그로버 변호사는 “환상적인 판결”이라며 “가난한 이들이 약을 구할 수 있게 해준 것”이라고 환영했습니다.


1994년 노바티스가 출시한 글리벡은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로, ‘최초의 표적 항암제’라 불립니다. 획기적인 약효 때문에 각광받았지만 문제는 가격이었습니다. 각국의 백혈병 환자들은 이 약을 복용하기 위해 매달 200만~300만원씩을 들여야 했습니다. BBC방송은 “영국의 경우 환자들이 매달 약값으로 쓰는 비용이 1710파운드(약 300만원)에 이른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인도 등지에서 생산되는 제네릭 약품, 즉 특허 없이 군소 제약사들에서 생산하는 글리벡을 처방받으면 월 175달러(약 20만원) 정도로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글리벡의 생산비용은 판매가의 30분의1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노바티스는 처음으로 글리벡의 원료물질이 발견된 뒤 약품으로 나오기까지 30여년이 걸렸다며 ‘천문학적인 개발비용’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글리벡 시장은 연간 1500억달러 규모인데, 2015년이면 대부분 나라에서 특허가 만료됩니다. 노바티스는 글리벡 첫 제품의 특허 기간이 끝난 뒤에도 각국에 ‘고용량’ ‘제품 개선’ 등의 이유를 들며 새로운 특허를 신청해왔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같은 구호기구와 빈국들은 생명을 담보로 한 제약회사들의 횡포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인도 대법원의 판결은 노바티스를 비롯한 거대 제약회사들의 특허 남용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입니다. 


글리벡은 가격이 엄청나다는 점 때문에 환자들과 보건의료단체들의 공격 표적이 돼왔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백혈병 환자들이 노바티스를 상대로 시위를 했고, 한국에서도 2000년대 초반 ‘글리벡 공동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 약값 인하 싸움을 벌였습니다. 

노바티스는 그 뒤로 국내 환자들을 위해 글리벡 부담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용량 제품에 대해선 복제약 생산을 막아왔습니다. 국내에서도 지난달말 특허심판원이 ‘약물 함유량이 높다’는 것만으로는 특허를 내줄 수 없다며 노바티스 요구를 기각한 바 있습니다.
 



최근 몇년 새 신흥경제국들이 일제히 나서서 거대 제약회사에 대응하는 분위기이지만 특히 인도의 사례는 중요합니다. 인도의 제약산업은 연간 190억달러 규모로 세계14위이지만 제네릭 생산은 세계 1위입니다. 전세계 복제약의 20%가 인도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일례로 미국 제약회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가 만든 혈전예방약 플라빅스의 인도산 제네릭 약은 33원 정도에 태국 등지에서 팔립니다. 미국이나 유럽, 호주 등지에서는 가격이 1정 당 2000~1만원에 이릅니다.


노바티스가 기나긴 법정 싸움을 벌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지난해 영국 시장조사업체 에스피컴은 2016년 전 세계 제네릭 약품 시장 규모가 2210억달러(원)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제네릭 약품에 시장을 빼앗기는 것과 함께, 노바티스 같은 회사들은 인도의 약품시장을 탐내고 있습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도는 세계 2위 인구 대국이고 약품 시장이 매년 13~14%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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