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13세기 중반의 동유럽
(오랫동안 게으름 피우다가... 새해를 맞이하야 심기일전하는 척하며 다시 시작함돠. 죄송...)
13세기 중반이 되자 콘스탄티노플에 세워진 라틴 제국은 쇠락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안에서는 봉건 영주들 간에 내분이 일어났고 밖에서는 옛 정교 비잔틴 제국의 세 주자, 즉 니케아, 불가리아, 에피루스가 도전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황제 보두앵2세(1228-61년 재위)가 이끄는 라틴 제국에는 유럽 쪽 작은 땅과 콘스탄티노플 정도만 남아 있었습니다. 아테네 공국과 아카이아 공국도 여전히 라틴 지배 하에 있긴 했네요. 이탈리아 쪽에선 베네치아가 잘 나가고 있었습니다. 베네치아는 크레타 섬을 비롯해 에게 해의 섬 대부분, 그리고 두브로브니크를 포함한 발칸반도의 아드리아 해안 도시들까지 장악했습니다.
비잔틴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3대 세력 가운데 승리를 거둔 것은 니케아입니다. 니케아의 부상 뒤에는 옛 비잔틴 세력을 통합하기 위한 길고 힘겨운 노력이 있었습니다.
1241년 몽골의 황금 군단(Golden Horde)이 동쪽에서 진군해와 불가리아를 초토화시킨 것이 니케아에 호재가 됐습니다. 1246년 미하일 아센 Michael Asen (1246-57년 재위)이 어린 나이에 불가리아 왕위에 올랐는데, 니케아 황제 요한네스 바타체스 Joanness III Ducas Vatatzes(1222-54년 재위)가 재빨리 이 틈을 타 발칸 산맥 남쪽의 불가리아 영토 대부분을 빼앗았습니다.
요한네스 바타체스의 초상. 개성있는걸요? /위키피디아
그 사이 에피로스의 전제군주 미하일2세(1236-71년 재위)는 불가리아 서쪽 영토를 챙겼지요. 그러자 바타체스는 미하일2세를 공격해 테살로니키를 빼앗고 1254년 에피루스를 니케아의 속령으로 만들고... 영토 싸움이 어지럽게 이어집니다. 바타체스의 뒤를 이은 테오도루스 라스카리스(테오도루스2세·1254-58년 재위)도 불가리아 공략을 계속했으나 미하일2세의 반격에 말려 오히려 에피루스를 잃고 말았습니다.
라스카리스가 죽은 뒤에는 어린 요한네스 라스카리스(요한네스4세·1258-61년 재위)가 즉위했는데, 휘하 장군이던 미하일 팔라이올로구스(미하일8세·1259-82년 재위)가 반란을 일으켜 결국 왕위를 챙겼습니다. 미하일8세는 1261년 요한네스의 눈을 멀게 한 뒤 옥에 가뒀다는 슬픈 이야기...
왕위를 찬탈한 자이긴 하지만, 미하일8세 시절에 니케아는 제노바와 손잡고 승승장구 잘 나갑니다. 미하일8세는 불가리아와 협력관계를 맺은데 이어 제노바와도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동부 지중해 무역을 놓고 베네치아와 경쟁하던 제노바에게, 베네치아가 비잔틴 제국 시절에 누리던 것과 같은 특혜를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한 겁니다. 당시 베네치아나 제노바 같은 이탈리아 도시들은 교역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여기저기 무기 대주고, 뒷거래를 선도하며 영토전쟁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13세기의 지중해 세계. /위키피디아
1261년 7월 니케아 군대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했습니다. 도시 내부의 옛 비잔틴 세력 동조자들이 방비가 뚫려 있는 문들을 몰래 일러주었습니다. 소부대가 뒷문으로 들어가, 나머지 군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도성의 정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이로써 라틴 제국은 종말을 맞았습니다. 십자군 전쟁을 한다며 은근슬쩍 동유럽으로 넘어온 뒤 이슬람이 아닌 비잔틴 제국을 꿀꺽 삼켜버린 서유럽 라틴 세력... 그 밑에서 와신상담하던 비잔틴 옛 세력이 니케아, 제노바와 함께 마침내 '친구인 척하고 들어와 집 빼앗은 약탈자'를 몰아내는 데에 성공한 거죠.
비잔틴 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던 사이, 더 북쪽의 발칸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요.
불가리아와 에피루스 북쪽에 있던 신생 세르비아에는 고난이 심해져갔습니다. 1227년 슈테판 네만야(슈테판2세)가 숨지자 왕관은 나약한 아들 슈테판 라도슬라프 Stefan Radoslav(1227-34년 재위)에게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새 왕은 동생 슈테판 블라디슬라프 Stefan Bladislav(1234-42년 재위)에게 곧 왕위를 빼앗겼습니다. (아, 이 동네엔 슈테판이 너무 많아요;;)
블라디슬라프는 불가리아 차르 이반 아센(이반2세)의 딸과 결혼했는데, 세르비아는 곧 불가리아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게 됐습니다. 특히 동부 지방은 종속 정도가 심했습니다. 블라디슬라프의 동생이자 후임자인 슈테판 우로슈1세(1242-1276년 재위)는 쫓겨난 라틴 제국의 황제 보두앵2세의 딸과 혼인하고 양시칠리아 왕국을 다스리던 앙주 공 샤를(1262-1285년 재위)과 제휴했습니다.
샤를은 프랑스 왕 루이9세의 동생이었고, 콘스탄티노플 라틴 제국의 황위 후계자였던 인물입니다. 우로슈는 이렇게 친 서방 정책을 펼쳤지만, 헝가리가 세르비아 북부와 보스니아로 팽창해 오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터키 이즈니크 Iznik 에 남아 있는 니케아의 성벽. /위키피디아
헝가리에서는 봉건 귀족계급에게 특권을 준 ‘황금 황소’의 서약서가 공표된 뒤 안드라스 국왕이 다시 1224년 헌장을 반포, 트란실바니아의 작센족에게 특권을 부여했습니다. 여기에는 왕실 감독 하에서 자치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벨라4세 Béla IV(1235-1270년 재위)가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려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힘을 가진 마자르족 지주들과 관료들은 왕권에 대한 도전을 계속했습니다. 벨라는 헝가리 평원 중부에 쿠만족이 거주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고 쿠만족 용병을 끌어들임으로써 귀족들을 견제하려 애썼습니다.
글머리에서 잠시 언급했던 몽골의 황금 군단이 이 시점에 등장합니다. 헝가리가 이런 내분을 겪던 차에 1241년 몽골의 황금 군단이 쳐들어왔습니다. 황금 군단은 1241년 벨라를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 해안으로 쫓아내고 헝가리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풍전등화였던 헝가리는 그때 우연히도 몽골의 본국에서 대칸(大汗)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몽골군 지도자들이 대칸의 후계자를 뽑기 위해 말을 돌려 아시아로 돌아갔던 것이죠.
(잠시 샛길- 황금 군단은 바투 칸이 이끌던 부대에서 유래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거대한 몽골제국의 북서부 즉 러시아 및 동유럽과 만나는 지역에 거대한 칸국을 형성했습니다. 이들에게 호되게 당한 러시아에는 몽골 군단의 잔혹한 학살을 묘사한 그림이나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벨라는 몽골군에 짓밟힌 나라로 돌아왔지만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바벤베르크 friedrich Babenberg (프리드리히2세·1212-50년 재위), 보헤미아 왕인 오타카르 Premysl Otakar (오타카르2세·1253-78년 재위)와 전쟁을 치르면서 남은 재위기간을 보내야했습니다.
벨라를 계속 괴롭힌 두 인물을 살펴보려면 보헤미아로 옮겨가야겠네요. 오늘날의 체코지요.
프제미슬 왕가의 오타카르1세 Přemysl Otakar I (1197-1230년 재위)의 이름이 먼저 눈에 띕니다. 오타카르1세는 신성로마제국에 존재하던 7명의 선거후(選擧侯) 중 하나였습니다. 이게 뭐였냐고요? 신성로마제국이 약해지면서 황제들이 일부 지역 귀족들에게 지도자 선출권을 준 겁니다. '선거후'는 그렇게 귀족들을 규합해 자기 지역에서 사실상 자치를 했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거고요.
프리드리히 황제가 1212년 보헤미아에도 귀족들에게 지도자 선출권을 줬습니다. 그래서 선거후 지역이 됐고요. 오타카르1세는 13세기 신성로마제국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계속되는 동안 정치적으로 중요한 균형추 역할을 해왔는데, 정작 자기 땅인 보헤미아 안에서는 가톨릭 세력을 장악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오타카르의 후계자인 바츨라프1세 Václav I(1230-53년)는 독일인들을 보헤미아로 이주시켜 체코계 귀족계급의 권력에 맞서려고 했습니다(오늘날에도 이 지역에 독일계가 많지요. 너무나도 먼 훗날의 이야기이지만, 독일계 지역이 있다는 것은 히틀러가 동유럽으로 팽창해가는 동력이자 명분이 됐습니다. 그걸 바츨라프1세 탓이라 할 수는 없지만요 ㅎㅎ).
독일계는 왕이 보장해준 특전들 덕에 상업·농업 분야로 뻗어나갔습니다. 오타카르1세 밑에서 정치적인 권력을 손에 쥐고 바츨라프 밑에서 부를 거머쥔 독일계의 번영은 오타카르2세 밑에서 정점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프제미슬의 오타카르 2세... 얼굴은 어딨는겨? /위키피디아
폴란드에서는 13세기 전반 봉건적인 무정부상태가 이어졌습니다. 왕위 계승 싸움 속에 정치적으로 아무데도 소속되지 않은 관료·사제 계급이 성장했습니다. 혼란의 와중에 폴란드는 1241년과 1259년 두 차례 몽골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보다 이른 1228년에는 튜턴 기사단이 폴란드를 공략했습니다. 그들은 북쪽의 프로이센 이교도 땅을 속주로 삼겠다며 왔으나 임무를 완수한 뒤에도 눌러앉아 자기들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들의 나라는 폴란드와 발트 해 사이의 경계선 역할을 했습니다.
★튜턴 기사단
중세 때 프로이센을 정복해 강력한 나라를 세운 독일 십자군 조직입니다. 1190년경 팔레스타인의 아크레 Acre 에서 기독교 자선단체로 창설됐지만 곧 군사조직으로 변했습니다.
현재의 폴란드 말보르크 Malbork 에 있는 옛 튜턴기사단의 성.
Ordensburg Marienburg (Malbork Castle), '성모 마리아의 성'이라는 뜻이라네요.
단장인 헤르만 폰 살차 Hermann von Salza 의 지휘 아래 튜턴기사단은 1211년 활동 무대를 중동에서 동유럽으로 옮겼습니다. 헝가리 등의 용병 역할을 하다가 비스와 강 북쪽으로 이동, 프로이센을 정복했습니다. 토착민들을 몰살한 뒤 사실상 기사단에 의해 운영되는 프로이센 국가를 세우고 신성로마제국의 게르만계 농민들을 불러 모아 정착시켰습니다.
15세기 주민 반란과 폴란드·리투아니아의 협공으로 치명타를 입었고 1525년 결국 폴란드의 공국으로 전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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