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애들 잡는 어른들

딸기21 2012. 6. 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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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혹은 '예의 없는 어린이' 얘기만 나오면 인터넷에 난리가 난다. 자주 가던 어느 홈페이지에서는 기혼인지 미혼인지 모를 남녀들이 '지하철에 애 데리고 타가지고는 자리 양보하랍시고 뻗치고 있는 엄마들'을 일제히 소리높여 욕하는 걸 보았다. 지하철에서 우는 얼라들, 식당에서 까부는 얼라들, '애새끼를 그렇게 키운 요즘 젊은 엄마들 왕싸가지' 어쩌구저쩌구...

그들의 주장은 극도로 단순하다. 애들을 싸그리 잡아다 똑바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획일화 삼청교육대가 따로 없다. 젊은 사람들이나 나이든 사람들이나, 애들 문제만 나오면 손가락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게 바로 '애'라는 것이다. 실수하고 예의 못 차리고 떠들고 짓까부는 것이 애들이다. 애들의 문제점이 아니라 애들의 자연스런 행동이다.

가끔 서울에서 초등학생 딸 데리고 한강 둔치에 자전거라도 타러 가면 어른들(주로 늙은 남자들)이 횡포를 부린다. 정말로 '쌍욕'을 한다. 애 끌고 한강까지 나왔다고. 애들은 시민 아닌가? 싸이클 타는 어른들도 애들 위험하건 말건 쌩쌩 달린다. 자동차보다 빨리 달리고 싶으면 싸이클 연습장에 가라, 소리쳐주고 싶다. 산책로에서 싸이클 탄다고 주접 떨지 말고, 스피드가 좋으면 걍 차도에서 자동차 타세요...

애들을 욕하는 사람들 중엔 아직 어린 사람들(아직 학생증 있는 사람들)도 있고 어르신들도 있다. 공통점은, 애들을 한 명의 정상적인 인간으로 봐주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보호하고 감싸야 할 미숙한 대상으로 봐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필립 아리에스는 <아동의 탄생>에서 '어린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이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라 지적한다. 그전까지 아이들은 '덜 된 인간' 즉 '아직 인간이 덜 된 존재'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동의 인권, 어린이들의 권리, 아이들을 돌봐야 할 어른의 사회적 책임 따위의 개념이 정립돼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어린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없는 것 같다.

어떤 이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생각과 정반대로 말한다. 요즘 애들이 다들 과보호에 너무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엉망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어른들(부모들)이 정말로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을까?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학대하는 것이다. 초등학생에게 예체능도 아닌 학업을 방과후에까지 시키는 것은. 중고생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아직 미성년자인 사람들을 새벽부터 밤까지 공부하라고 고문하는 것은 인권침해이고 범죄다. 그런데 자기 자식들 혹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그런 가해를 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뭔가의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혹은 '경쟁 앞에 어린이가 어딨느냐' 하는 심리인지도 모르겠다. 이 치열한 생존경쟁의 사회에서 아이들이라고 투쟁의 의무를 면제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 이것은 야생의 법칙이다. 새끼양이라고 늑대에 잡아먹히지 말란 법 없으니, 미리부터 정신차려!

우리 사회에서 어린 시절을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의 어린시절은 모두 똑같이 학대와 고문과 인권침해로 점철돼 있다. 너무 심한 얘기라고? 그래, 물론 24시간 뺑뺑이 돌리듯 공부시키는 와중에도 분명 즐거운 순간은 있었고 추억도 있었다. '우리 어릴 때는 아버지 앞에서 재채기도 못했어' '우리 어릴 때엔(웃기는 건 미성년자들조차도 자기보다 더 어린 애들 욕할 때엔 이런 소리를 한다는 사실) 선배들 앞에서/어른들 앞에서 찍소리도 못했어'라며 찍어누르고 심지어 때리고 짓밟는 어른들에 둘러싸여 자랐지만 그 와중에도 즐거움은 물론 있었다. 하지만 추억이 스며들어 있다 해서, 어린 시절의 가혹한 몰이식 경쟁이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훈육이라는 사실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군대에 갔다온 남자들이 불합리하고 심지어 불법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군대 갔다와보면 알아' '그 땐 다 그래' '세상 원래 그런거야'라 하는 걸 종종 보게 된다. 우린 바로 그렇게 모든 어린이들을 대한다. 어린이들에게 인권 따위가, 평등 따위가, 자존감과 존중 따위가 어디 있어. 어른 앞에 '까불어서는 안 되는 것들', 혹은 '찍소리 말고 공부나 해야 하는 것들'로 보는 것이다. 중학생은 초등학생을, 고등학생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어른들은 모든 학생을 그렇게 본다.

그 속엔 '누군 어렸을 때 안 겪어본 줄 알아'라는 심리가 깔려 있다. 부모가 공부를 시킨다며 자식을 과하게 압박할 때에도, 인터넷 사용자들이 어린 아이들의 행동을 욕하는 댓글을 달 때에도. 나 역시 그런 어른들 중의 하나라는 걸 부인하기 힘들다.

이제는 전국적인 집단 병리현상이 되어버린 교육열, 어린애들의 실수나 장난이나 하다못해 우는 소리에조차도 미친듯 비난하는 非어린이들. 모두 이어져 있는 현상인 것 같다. 어릴 적에 존중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존중할 줄 모르고, 존중해야 한다는 필요를 모른다. 그러니 경쟁만 가르치고, 훈육만 내세우고, 비난과 손가락질을 보낸다.

그러면서 사회는 총체적인 '비인간화'로 향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존중받지 못한, 존중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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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 워즈워드가 그랬잖아, 애들은 어른의 아버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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