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복제양 돌리 그 후

딸기21 2012. 5. 6. 10:44

복제양 돌리 그 후 AFTER DOLLY 

이언 월머트,로저 하이필드  |  이한음 역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04월



복제양 돌리가 태어나던 때가 기억난다. 멋모르고 국제부에서 텔렉스 받아 외신기사 훑어보는 당번을 하고 있었다. 

과학 담당기자를 해서 과학 쪽 일을 많이 아는 여자선배가 계셨다. 나는 그때 정말이지 뭘 통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 것도 몰랐다. 과학도 몰랐고 영어도 몰랐고... 외국 통신 읽는 것도 서툴렀다. 더더군다나 '클론'이란 것은 몰랐다. 사전을 찾아보니 '쌍둥이'였다. 왜? 왜 쌍둥이가 문제가 되지? 돌리? 뭔 돌리? 양의 쌍둥이가 왜 문제야? 왜들 난리야?


그러고 나서야 알았다. 그것이 그 유명한 복제양 돌리의 탄생이었다는 것을. 한 가지 위안이 있었다면, 아마도 나 뿐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 거의 모두가 '클론=쌍둥이'인 줄만 알고 있었다는 것, 즉 나만 몰랐던 게 아니라는 점 정도? 체세포 복제로 태어난 포유동물은 돌리가 처음이었으니까! (여담이지만 나는 돌리에 대해 기사를 쓰던 그 여자선배를 그 후로 살짜쿵 존경하게 됐고, 그 때부터 나도 과학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바로 그 돌리를 탄생시킨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로슬린 연구소의 이언 윌머트 박사(훗날 로슬린을 떠나긴 했지만)가 돌리 탄생 앞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공저자인 로저 하이필드는 과학 저널리스트로 '돌리 그 이후'의 연구동향을 설명하는 데에 기여를 한 것 같다. 하지만 책은 전반적으로 윌머트 박사가 자신과 로슬린 동료들의 얘기를 소상히 들려주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책은 재미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유명세에 조용한 농학자 출신인 자신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돌리는 또 얼마나 스타처럼 굴었는지 등을 담담하게 적었는데, 살짝살짝 비치는 '영국식 유머' 덕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돌리가 탄생하기까지... 그림/위키피디아


벼락스타가 되기도 했지만, 윌머트 박사는 돌리의 '성공' 이후 '인간 복제의 세상이 열리나' 하는 비틀어진 기대와 과장된 우려 때문에 한동안 시달린 것이 사실이다. 책에서 이런 우려에 대해서도 자기 생각을 여러 차례 설명하고 있다. 


실상 윌머트 박사는 다른 과학자들보다도 앞서서 공개적으로 "어떤 종류가 됐든 인간 복제에 반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물론 논쟁이 여기서 끝날 수는 없는 것이, '인간 복제'에서 '인간'의 범주를 어디에서 어디까지로 잡을 것이냐를 놓고 여전히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다기보다는 알 하나까지도 인간으로 보자는 조지 W 부시 같은 자들이나 보수적인 로마 가톨릭 쪽에서 모든 종류의 줄기세포 연구에까지도 재갈을 물리려고 한다는 편이 맞겠지만. 


윌머트의 입장은 "인간 복제에 반대한다, 위험하며 효용성도 없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히틀러 복제' 혹은 '사랑하는 죽은 자식의 복제' 같은 것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줄기세포 연구나 배아 연구에까지 '인간 복제'라는 그물을 씌워 제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인류를 위한 과학의 발전에 해가 될 뿐이다"라는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상식적인 주장 같다. 하지만 상식이 상식이 아닌 이유는 상식 아닌 상식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 조지 W 부시가 임기 중 백악관에 아기들을 불러모아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한다면서 생명의 소중함 어쩌구 개나발을 불었던 것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여보시오, 알 걱정 마시고 산 사람들이나 죽이지 마시오... 


돌리와 윌머트 박사. 사진/ boiledbeans.net


윌머트의 책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황우석 박사와 한국의 연구풍토에 대한 부분. 한때 한국 언론들이 예찬했던 '월화수목금금금'을 비롯해, 우리가 황우석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즉 한국 언론에 보도됐던 것들)을 대부분 망라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워낙 세계적으로 과학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사건이었기 때문이겠지. 한국의, 그리고 한국을 넘어서 '과학자들의 직업윤리'와 '생명공학의 윤리'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윌머트는 (거짓으로 판명나기 이전의) 황우석 쪽의 연구성과에 깊이 감명받았고 황우석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했다가, 그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내가 황우석 때문에 쪽팔릴 것까지야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한 가지 위안 아닌 위안이라면, 윌머트는 한국 젊은 과학자들이 나서서 황우석 사건을 파고든 점을 들어 '과학자들의 깨어있는 의식' 즉 과학계 내부의 자정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비단 황우석 사건 뿐 아니라 인간 복제라는 첨예한 이슈를 비롯한 모든 과학연구를 바라보는 윌머트의 기본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열린 마음, 논쟁, 규제보다도 더 믿는 것들이 있다. 나는 사람들을 믿는다. 나는 올바른 지식을 구비한 민주주의가 남용을 막아줄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여성들이 독재자를 복제하는 일에는 난자를 기증하지 않겠지만, 시급히 필요한 환자는 도울 것이라고 확신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대다수 과학자들을 믿는다."


흑흑.. 하지만 이런 글을 읽으면서도 한가닥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윌머트가 그토록 신뢰한다는 '과학자들'이 과거 핵폭탄을 만들었다는 명명백백한 사실, 그리고 지금도 거대 자본과 국가의 이익에 복무하며 돈벌이 & 사람죽이기에 이모저모로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또한 분명한 것은, 우리 존재를 근본부터 새롭게 규정하기 시작한 이 새로운 과학기술의 세상에서 오직 민주주의적 감시와 토론만이 제어장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