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스티븐 와인버그, '최초의 3분'

딸기21 2012. 4. 7. 22:17

최초의 3분 The First Three Minutes(1994)

스티븐 와인버그. 신상진 옮김. 양문



책이 신간으로 회사에 갓 도착했을 때 그쪽 부서를 기웃거리며 주워온 기억이 난다. 국내에서 나오기 전부터 다른 물리학 교양서들을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에 몹시 궁금해하고 있었고, 잽싸게 집어오면서 한껏 기대에 부풀었더랬다. 그런데 아직까지 쟁여만 두고 있다가... 지금 확인해보니, 국내 발행된 것이 2005년이다. 그러니 쟁여두고 무려 7년을 열어보지 않았던 셈이 되네...


일단 펴든 뒤에는 죽죽 읽어나갔다. 책은 미국 핵물리학자인 와인버그가 1973년 하버드 대학 과학관 개관식에서 한 연설을 기초로, 빅뱅 이후 '첫 3분'에 대한 그간의 연구성과와 추측을 덧붙여 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평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죽죽 읽어나갔다고 했지만 물리학을 전공한 독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류의 책이 쉽사리 읽힐 리는 없다. 쉽기는커녕, 이해의 발치에도 다가가지 못한 구절이 8할은 되는 것같다. 그 나머지 2할도 '문장을 이해했다'는 것이지, 나의 이 빈약한 과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제대로 내용을 이해한 것일 리 없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이런 류의 책을 꾸준히 읽는 이유는 하나다. 지적인 재미. '지적'은 폼 잡기 위한 것이고 방점은 '재미'에 찍혀 있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삶을 광대극보다 좀더 나은 수준으로 높여주고 다소나마 비극적 품위를 주는 아주 드문 일 중의 하나"라는 와인버그의 말처럼, 일상의 복잡다단함에서 벗어나 블랙홀이니, 광활한 우주니, 시간의 시작이니 하는 것들에 잠시나마 관심이 미치게 해주니까.


 

태초에 한 폭발이 있었다. 일정한 중심에서 시작해 퍼져나가면서 점점 주위의 공기를 휘말아들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상에서의 폭발이 아니고 어디서나 동시에 일어나서 처음 부터 전 공간을 채우고, 물질의 모든 입자가 다른 모든 입자들로부터 서로 멀어져가는 폭발이었다. 여기서 말한 ‘전 공간’ 이란 무한한 우주를 의미할 수도 있고, 또는 한 구(球)의 표면과 같은 유한한 우주를 의미할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가능성도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이것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초기우주의 논의에서 공간이 유한한가 무한한가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제로 은하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를 이해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은하 생성의 이론은 오늘날에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이것은 천체물리학의 어려운 숙제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이야기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초기우주에서 온도가 약 3000K 이상이었을 때 우주는 오늘날 우리가 하늘에서 보는 것과 같은 은하와 별들로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이온화된 물질과 복사의 수프로 되어 있었다 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우주의 내용물이 3000K에서 복사에 투명해지기 시작할 때와 바로 같은 시기에 복사지배의 우주에서 물질 지배의 우주로의 전이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주가 투명해지기 훨씬 이전에는 오염물처럼 미량의 물질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주로 복사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할수 있다는 사실이다. 초기우주의 엄청난 복사에너지밀도는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광자의 파장이 적색 쪽으로 이동하면서 소실되었고, 핵자와 전자로 된 오염은 별로, 바위로, 그리고 현재 우주의 생명체로 성장했다. 


초기우주의 내용물의 조리법을 간단히 정리하겠다. 광자당 전하는 0으로 놓고, 광자당 바리온 수는 10억 분의 1로 놓으며, 광자당 렙톤수는 확실치 않으나 작다고 놓는다. 일정한 시점에서 온도는 현재 배경복사의 온도 3K보다 당시 우주의 크기에 대한 현재 우주 크기의 비만큼 더 높다고 가정하자. 잘 저어서 여러 가지 유형의 입자들의 상세한 분포가 열평형의 조건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자. 이 모든 것을 이 매질에 의해서 생긴 중력이 결정하는 속도로 팽창하는 우주 안에 갖다놓자. 충분히 오래 기다리고 나면 이 반죽은우리의 현재 우주로 변할 것이다. 


슬프게도, 뉴트리노와 보통물질의 상호작용은 너무나 약해서 지금까지 아무도 2K의 우주 뉴트리노 배경을 관측할 어떤 방법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이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핵자마다 약 10억 개의 뉴트리노와 반뉴트리노가 있는데도 이들을 검출할 방법을 아직 아무도 모른다니! 아마 언젠기는 누가 이 일을 해낼 것이다. 


최초의 3분은 우리와 시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온도와 밀도의 조건들이 너무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이 통상의 통계역학과 핵물리학을 적용하는 데 불편을 느꼈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1965년에 3K 배경복사의 발견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공로는 우리 모두에게 초기우주가 있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 잃어버린 기회에 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한 것은 나에게는 이것이 과학사의 경과에 관한 가장 계몽적인 예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많은 과학사료들이 성공 사실들, 예기치 못한 발견들, 재기 넘치는 증명들, 또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사람들이 이룩한 마술 같은 비약들을 취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얼마나 미궁에 빠지기 쉬운가를, 다음에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기가 얼마냐 어려운가를 이해하지 않고 과학의 성공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온도가 3000조 도 이하로 떨어져 우주가 ‘얼게 되면’ 하나의 대칭이 소실되는데, 이 경우 위에 말한 얼음의 보기처럼 우주의 공간적 균질성이 소실된 것이 아니라 전자기적 상호작용과 약작용 사이의 대칭이 소실된 것이다. 


우주 역시 얼 때 여러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졌을까? 우리는 약작용과 전자기적 상호작용 사이의 대칭이 특정한 방식으로 깨진 그러한 영역들 중의 하나에 살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결국 다른 영역들을 발견하게 될까? 


그렇지만 이 모든 불확실성들 중 어느 것도 서기 1976년의 천문학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처음 1초 동안에 아마도 우주는 열평형 상태에 있었고, 그렇다면 뉴트리노까지 포함해서 모든 입자의 수와 분포가 그들의 상세한 전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통계역학의 법칙들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진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시초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시간 자체가 그 순간 이전에는 아무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우리는 절대영시, 즉 그 이전에는 원리적으로 어떠한 인과의 연쇄도 추적할 수 없는 과거의 한 순간이란 개념에도 익숙해져야 할지 모른다. 문제는 아직 미결이고 앞으로도 계속 미결로 남을지도 모른다.


저 아래 지구는 아주 아늑하고 쾌적해 보인다. 여기저기 솜털 같은 구름이 깔려 있고 석양을 받아 눈은 분홍색을 띠고, 길들은 이 마을 저 마을로 들녘을 가로질러 뻗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적의에 가득 찬 우주의 아주 미소한 (예외적)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기는 어렵다. 더 깨닫기 어려운 것은 이 현재의 우주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생소한 초기의 상태로부터 진화되었고, 끝없는 차가움 또는견딜 수 없는 열로 끝장날 미래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를 점점 이해하면 할수록, 우주는 그만큼 또 무의미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 성과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적어도 연구 그 자체에서 어떤 위안을 느낀다. 과학자들은 신과 거인들의 이야기에 만족하지 못하며, 또 생각을 일상적인 일로 한정시키지도 못한다. 과학자들은 망원경과 인공위성, 그라고 가속기 등을 만들고, 책상에 앉아 그들이 얻은 자료의 의미를 캐내느라 끝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삶을 광대극보다 좀더 나은 수준으로 높여주고 다소나마 비극적 품위를 주는 아주 드문 일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