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가 결국 석유 때문에 갈라지나.
이라크 헌법초안위원회가 종족·종파 갈등으로 인해 예정된 시한 내에 헌법 초안을 만들어내는 데에 실패했다. 당초 15일(현지시간)까지 헌법 초안을 내놓을 계획이었던 헌법위는 이날 “초안작성 시한을 오는 22일까지 일주일 연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고 AP, 로이터 등 외신들이 일제히 전했다. 향후 정치 일정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라크공화국’이냐 ‘이라크 연방’이냐
이라크 정치일정을 밀어부치기 위해 초안 작성에 깊이 개입했던 잘마이 칼릴자드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는 “중요한 문제에서는 대체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신들은 각 종족·종파를 대표하는 헌법위 인사들이 새 국가의 형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논란의 핵심은 연방제. 91년부터 자치를 해온 북부의 쿠르드족은 “일단 느슨한 연방으로 묶여 있다가 몇년 뒤 독립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라크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남부의 아랍계 시아파 일부 세력도 이슬람 통치를 강화, 이란식 신정국가에 가까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연방제에 동조하고 있다.
근본 원인은 석유
쿠르드족과 시아파는 과도정부를 함께 구성해 미군정에 협력해왔다. 과거 사담 후세인 시절 무참한 학살과 탄압을 겪은 두 집단이 연방제를 선호하는 반면, 후세인 정권의 주역이었던 수니파는 단일 이라크 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며 반대한다.
서로 입장이 다른 이유는 명백하다. 석유 때문이다. 키르쿠크와 모술의 거대 유전들은 쿠르드 자치지역에 걸쳐있고, 이라크의 석유수출 통로인 남부 최대유전 바스라는 시아파 지배를 받고 있다. 반면 수니파 지역인 중부에는 바그다드 근교 알 다우라 유전을 빼면 이렇다할 자원이 없다. 게다가 요르단으로 이어지는 중부 대부분 지역은 사막이다. 남·북의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각기 연방국을 구성해 자치를 강화하고 유전 지배권을 행사하면 수니파는 ‘끈 떨어진’ 신세가 된다.
주변국들 촉각, 미국도 경계
이라크에서의 연방제 실시 여부는 중동 전체의 역학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변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방제가 성사될 경우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되는 곳은 터키와 시리아다. 이들 두 나라의 쿠르드족은 이라크·이란 쿠르드족과 연대해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며 분리독립운동을 벌여왔다. 이라크 쿠르드족이 자치권을 확대해 키르쿠크 유전 수입을 차지하게 되면 ‘쿠르디스탄(쿠르드 국가) 독립자금’이 모이는 것은 순식간이다.
미국은 이라크 내 친이란계 시아파의 결집을 우려하고 있다. 이라크 시아파는 헌법 초안에 이슬람 샤리아(성법·聖法) 원리를 더욱 많이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