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THE DEMON-HAUNTED WORLD
칼 세이건. 이상헌 옮김. 김영사
세이건의 글은 항상 울림이 있다. 신간 좋아하는 내가 이미 돌아가신 세이건 박사님의 책을 뒤늦게 골라가며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그런 울림 때문이다.
UFO를 신봉하는 사람들, 외계인들에게 납치됐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동향 같은 것은 너무나 미국적인 현상들이어서 크게 다가오지 않았으나(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착각일 뿐이라고 저자도 지적하지만), 꼭 UFO 얘기가 아니더라도 ‘비과학적인 사람들’은 너무너무 많다. 개신교 골수 신자들, 점 보러 다니는 사람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건 그렇다 치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과학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해도 해도 정말 너무 비과학적인 얘기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이다. 과학 지식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과학적 접근’, 그러니까 이리저리 뒤집어보고 돌이켜보며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고서 세상을 살아야 할 필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 당장 지금 문제가 되는 광우병이니 조류독감이니 유전자변형 농산물이니 하는 것들에서부터 어린아이 어떻게 과외 시키고 두뇌개발을 해서 머리 속에다가 지식을 쑤셔 박고 하는 것들까지, 한발 물러서서 ‘과학적으로’ 생각을 좀 해봐야 하는 일들은 산더미처럼 많다.
세이건 박사님이 얘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후지따 쇼오조오가 ‘철학하는 법’에서 얘기했던 것들하고도 일맥상통한다. 곱씹어보고 뒤집어보고 하는 것이 과학이라는 얘기다.
“과학은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과학 스스로는 인간 행위의 방향들을 지지할 수는 없지만 대안적인 행위 방향들에게서 비롯될 가능성 있는 결과들은 설명할 수 있다. 과학은 아무리 이단적이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라면 무제한적으로 개방적일 것과 가장 엄격한 태도로 회의적으로 검토할 것, 다시 말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성의 지혜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유지할 것을 촉구한다. 이런 종류의 사고는 변화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본질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인간은 절대적인 확실성을 바란다. 인간은 절대적 확실성을 동경한다. 그러나 과학의 위대한 계명 중의 하나는 ‘권위에 의해 지탱되는 논변을 신뢰하지 마라’이다.”
그래서 과학이 없는 세상, 무시당하는 세상, 혹은 거짓 과학이 판치는 세상에는 광기가 돈다.
“모든 시대는 그 나름의 어리석음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 시대가 갑자기 시작한 거대한 계획이나 소규모 계획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공상일 수도 있다. 그것은 이득을 보려는 욕심에 의해서 또는 자극이 필요해서 아니면 단순히 모방력에 의해 박차가 가해진다. 이러한 것들에 빠지면 그 시대는 약간 광기를 보인다. 그러한 광기는 정치적 원인이나 종교적 원인 또는 양자가 결합된 원인에 의해 선동된다.”
생각은 자꾸자꾸 뻗어나간다. 우리 시대의 광기는 신문만 펼치면, 창밖만 열면 보인다. 이명박, 기독교, 이제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다.
“걱정되는 것은 그런 사기꾼이 매력적이고 위엄있고 애국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지도자를 지지하고 믿고 따를 기회를 향해 달려들 것이다. 대부분의 기자들, 편집자들, 제작자들은 진정한 회의적인 정밀조사를 내던져버릴 것이다. 그런 지도자는 기도나 마법사의 수정이나 눈물을 팔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전쟁이나 희생양 또는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는 믿음의 다발을 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한국의 광우병 정치인들을 스케치해놓은 것 같아 울고 싶어질 지경이다.
“과학의 가치는 숨기거나 감추지 않는 데 있다. 과학은 특별히 유리한 조건이나 특권적 지위를 고집하지 않는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모두 판에 박히지 않은 의견과 활기찬 논쟁을 장려한다. 과학은 겉으로만 지식을 추구하는 척하는 이들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길이다. 과학은 신비주의에 대항하고 미신에 대항하며, 무관한 영역에 잘못 적용된 종교에 대항하는 보루이다.”
그래서 어느 시대에건 과학은 필요하다. 과학자도 아니고 과학에 대해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도 ‘과학적인 태도’는 필요하다. 생각, 또 생각.
“보통 보수주의적 혹은 근본주의적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반증된 문제들에 대해서도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들에겐 과학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는 셈이다.
종교지도자와의 신학적 토론에서, 나는 그들에게 만일 신앙의 핵심적인 교리가 과학에 의해 반증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곤 했다. 이 질문을 달라이 라마에게 던졌을 때, 그는 보수적이거나 근본주의적인 종교 지도자라면 하지 못했을 답변을 해주었다. 즉 만일 그렇게 된다면, 티베트의 불교는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정말로 핵심적인 교리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 때도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과학이 무엇을 더 알아낼 것인지 걱정하는 또다른 교리와 이해관계 그리고 관심이 있다. 어떤 이들은 아마도 모르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제안한다. 만일 남성과 여성이 다른 유전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것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구실로 사용되지 않겠는가? 만일 폭력 성향에 유전학적인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한 민족 집단이 다른 집단을 억압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될 수 있지 않은가? 혹은 예방적 차원에서 미리 제거해버리는 행위도 정당화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우리가 진리에 최고로 가까운 근사치를 알게 되고 어떤 이익집단이나 믿음 체계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날카롭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계속 유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세상은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거짓말 혹은 숨겨진 사실이 보다 고차원의 사회적 목적에 기여할 것인지 어떨지를 미리 알 정도로 현명하지 않다. 특히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과학에 대한 열정, 남아 있는 수렵채집가들에게서 얻은 교훈은 바로 다음과 같다. 과학적 성향은 어느 시대, 어느 곳, 어느 문화에서든 늘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생존 수단이고, 천부적 소질이다.”
“시민권자로서의 본분은 위협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민자들의 시민권 선서와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암송하는 맹세에 ‘나는 지도자들이 내게 말하는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할 것을 약속합니다’ 같은 것이 포함됐으면 한다. ‘나는 나의 비판 능력을 사용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나의 사고의 독립성을 개발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나 자신을 교육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래서 세이건 박사님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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