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
리처드 도킨스. 이한음 옮김. 김영사
아주 속이 후련하다. 나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을 믿을 수 없고, 이 책에서 도킨스가 한 말들에 대해 무지막지하게 공감한다. 속이 다 시원하네, 정말...
아직도 가톨릭의 그늘;;이 남아있는지라, 신은 없다, 종교라는 것은 환상이다 라고 내놓고 얘기하기가 어쩐지 좀 힘들었다. 주변엔 모두 종교 있는 사람들 뿐인 것도 그렇고... 또 일을 하면서 국제문제를 바라볼 때에도, 종교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때가 많다는 생각에 되도록 피하곤 했다. 시아 순니, 혹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싸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이면에 숨겨진 정치·경제·사회적 진실을 가릴 염려가 있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종교가 아닌 다른 ‘싸움의 원인’을 찾아보도록 하자... 는 것이 내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킨스의 말대로 종교는 사람들에게 ‘꼬리표’를 붙이는 가장 쉬운 기준인 것을 어찌하리. 종교는 세상 모든 죄악의 근원이다. 신 따위는 없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에선, 도킨스가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 같은 진화론을 조목조목 따져보는 ‘과학적 논쟁’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종교적 보수파는 말 안 통하는 꼴통들이고, 온건파는 양심적인 체하는 멍청이들일 뿐이다.
책은 도킨스가 ‘눈먼 시계공’에서 진화의 시뮬레이션을 그려 보이며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설명했던 것과 맥을 같이하는데, 표현은 좀더 격렬하고 공격적이다.
도킨스는 특히 서방세계에서 ‘무신론자임을 선언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중요한 일인지를 얘기하면서, 신의 존재를 ‘논증’했다던 신학자(주로 기독교 측)들의 얼토당토않은 논리 같지도 않은 논리를 파헤친다. 그리고 자연선택과 점진적 진화가 어떻게 이 아름답고 경이적인 세상을 만들어냈는지 강조한다(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자세히 하지 않기 때문에 ‘눈먼 시계공’을 참조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 듯).
그리고 “신 따위는 없다”는 선언과 함께, ‘종교가 불필요한 이유’들을 펼쳐놓는다. 사실 신의 존재를 논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종교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이 괴로워서, 아이들을 착하게 키우기 위해, 이 찬란한 문화유산들을 위해 종교가 존재한다? 도킨스는 구약성서의 황당하고 잔혹하고 엽기적인 내용들을 예로 들면서 인간의 도덕, 최소한 현대사회의 보편적 도덕 감정은 종교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8장 ‘내가 종교에 적대적인 이유’는 종교에 대한 그의 적대적인 태도가 ‘비과학적인 것들에 대한 적대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종교를 욕하는 행위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도킨스가 이런 책을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욕을 먹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을 넘어서 무신론자임을 공개적으로 떳떳이 밝혀야 하고, 더불어 종교라는 것을 세상에서 없애버리기 위해 싸워야 한다! 왜냐? 종교는 진리를 향한 탐구정신에 재를 뿌릴 뿐 아니라, 분쟁과 살인과 여성·아동학대의 축으로서 죄악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절대공감!
그렇다면, 이 세상에 종교가 끊임없이 존재해온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종교가 그렇게 나쁜 것이라면 왜 그것이 생겨나서 지금껏 힘을 발휘하고 있는가. 도킨스는 이 부분 또한 진화심리학적 측면에서 설명하려고 시도하는데, 이 부분은 구체적이지는 않다. 다만 논리의 ‘실마리’를 제공할 뿐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어린이들이 위험한 상황을 피해갈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공포의 기제들을 만들어내 왔고, 이런 기제에 대한 순응적인 태도는 어린이들이 무사히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나방이 왜 전등으로 뛰어들어 자살하는지를 묻는 것은 우문이다. 그것은 달빛, 별빛을 보고 날아가도록 진화한 나방 세상에 갑자기 인간들이 만들어낸 인공 불빛이 등장함으로써 생겨난 ‘부작용’에 불과하다.
도킨스는 종교 역시 인간의 진화적 필요성에서 생겨난 어떤 현상의 부작용일 것으로 추정한다. 또 인간이 현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물리학적 입장보다는 목적 중심으로 보는 ‘지향적 입장’이 훨씬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거론된다. 호랑이가 덤벼들 때 호랑이의 운동을 물리적으로 분석하다간 잡아먹힌다. 그저 “저놈이 날 잡아먹을테니 도망가자”라고 해석하는 편이 살아남기엔 훨씬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이런 진화심리학적 기제들은 인간에게 이른바 ‘종교적 심성’을 갖도록 하는 바탕이 됐다는 것.
또 하나, 밈 이론을 확장해가는 견지에서 그는 종교라는 밈이 일단 생겨난 뒤로는 그 자체로 생존력을 강화해가는 기제를 펼쳐나갔던 것으로 본다. ‘이단’으로 표현되는 다른 종교에 대한 성서의 극도로 배타적인 태도는 이에 대한 반증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그 배타적인 태도는, 팔레스타인을 향한 유대인의 태도(이 책에는 ‘타마린의 실험’이라는 유대 어린이 대상 설문조사 결과로 잘 설명돼 있다)나 탈레반 등 이슬람 극단주의,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처럼 대량학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게 만드는 지경으로까지 이어진다. 당신의 온건한 종교가 근본주의자들의 토양을 만들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꼬리표를 달아 죽일 수 있다. 아니, 지금도 죽이고 있다. 그러니 종교를 버려라. 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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