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아프리카의 뿔'에서 100년 동안 벌어진 일

딸기21 2012. 2. 15. 17:00
소말리아 ‘해적들’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지역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라는 곳입니다. 아프리카 동부, 아라비아 반도 남단과 마주보고 있는 뿔처럼 튀어나온 지역을 가리키지요. 좀 더 동쪽으로 시야를 넓히면 인도양을 사이에 두고 인도 아대륙과 마주하고 있고요.

이 일대는 아프리카의 동부 해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예멘과의 인적, 물적 교류가 많았습니다. 좀 더 북쪽에 있는 케냐나 탄자니아 같은 나라들도 인도, 이슬람권과 오랫동안 교류해온 지역이고요. 제가 너무나 가보고 싶어 하는 현재의 탄자니아 땅인 잔지바르 섬은 인도양 해양문화와 이슬람 문화, 아프리카 문화, 그리고 근대 식민지 시절에 이식된 유럽 문화가 중첩되어 다채로운 풍광을 가진 곳으로 유명합니다.

다시 아프리카의 뿔로 내려와 볼까요.

 
아프리카의 뿔에는 여러 나라가 있습니다. 
수단과 우간다, 케냐까지 아프리카의 뿔로 보기는 좀 뭣한데... 오른쪽 지도엔 그렇게 표시돼있네요;; 
 
왼쪽 지도에 나온 네 나라, 즉 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지부티-소말리아를 통상 아프리카의 뿔이라 하지요.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나라는 에티오피아일 것 같군요.
 
에티오피아가 어떤 나라입니까. 솔로몬 왕과 결혼했다는 전설의 시바 여왕이 다스린 나라, 악숨(Axum)의 거대 유적을 간직한 고대 문명의 나라 아니겠습니까(지금도 이 일대에선 홀로 기독교도가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솔로몬 왕의 전설...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실은 ‘다윗에게서 시작돼 솔로몬 시절에 전성기를 구가한 유대 제국’이라는 것은 현대의 시오니즘과 유대국가 이스라엘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른바 ‘성서고고학’의 거짓된 가정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많으니까요.

에티오피아 역사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솔로몬 왕조가 세워진 것은 1270년 에쿠노 아믈락(Yekunno Amlak)이라는 지도자 때였다고 합니다. 이 고대 왕조를 들먹이면서 역대 에티오피아 지배자들은 ‘케브라 나가스트(Kebra Nagast)’ 즉 ‘왕들의 영광’이라는 민족서사시를 유포했다는 것입니다. 이 서사시는 에티오피아의 토착신앙과 전통, 그리고 기독교 구약과 신약이 뒤섞인 내용이라고 합니다. 
 
이 민족서사시의 핵심은 에티오피아인들을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들, 유대 왕국의 후손’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솔로몬의 후손, 솔로몬의 후손이 세운 솔로몬 왕조의 신민, 그러므로 에티오피아인들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특히 고귀한 유대인들의 후손이라는 것이죠. 

뒤에 이스라엘은 아랍계 인구 비중을 줄이고 유대계 인구를 늘리기 위해 에티오피아인들의 대량 이주를 받아들였지요(이렇게 해서 이스라엘로 이주해서 이스라엘 남성과 결혼한 에티오피아계 여성을 예전 터키여행 때 만나본 적 있습니다).

요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민족정서와 민족 서사에서는 솔로몬이 엄청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

악숨의 오벨리스크. 이탈리아가 이걸 빼앗아갔다가 몇년 전에 돌려주는데, 넘 무겁다며 
'쪼개어 돌려주기로' 했다 해서 기사를 쓴 적 있습니다. 이 무슨 야만적인 일이란 말입니까.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퍼옴)
 

현대의 에티오피아가 틀을 갖춘 것은 1931년 헌법이 탄생하면서입니다. 이 헌법은 황제를 ‘신성한 혈통’으로 못박았고, 에티오피아 정교(기독교의 일종)와 왕조는 나란히 민족주의 앙양에 힘씁니다. 

에티오피아 왕조가 무너진 것은 1974년 하일레 셀라시에 2세(Haile Selassie II) 황제를 마지막으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였으니, 꽤나 긴 시간 동안 ‘솔로몬 왕가’가 유지된 셈이지요. 
동남아시아에서 태국이 홀로 열강의 점령을 당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프리카에서는 에티오피아가 19~20세기 유럽 식민제국들의 식민지로 완전히 전락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물론 에티오피아가 놀고먹으며;; 독립을 누린 것은 아니랍니다. 이탈리아의 준 식민지 상황으로 전락한 적(1936-1941)도 있었고요.

(잠시 딴길로 새자면- 어릴 적 학교다닐 때 선생님들이 '태국은 영국-프랑스 세력균형 때문에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태국 왕실은 그 세력균형을 활용해 고군분투하면서 독립을 지켜냈던 것이죠. 그걸 우리는 저런 식으로 평가절하해서 가르친 거고요. 조선 왕실이 독립을 지키지 못했다 해서, 남의 나라 왕실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게 정당할까요. 오늘날 한국에선 조선 왕실 부흥운동이 없는 반면에 태국 왕실이 숱한 문제점! 속에서도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혼자 추측만 해봅니다)

에티오피아가 유럽 세력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게 된 것은 1880년 전후의 일입니다. 영국과 이탈리아가 각축을 벌이며 아프리카의 뿔 일대를 공략합니다. 

1870년 에티오피아의 지방 군주인 아파르 술탄이 홍해에 면한 아사브(Assab) 항구를 이탈리아 회사에 팔아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현재의 에리트레아에 1890년 이탈리아 식민지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답니다.

그 후 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 사이에서는 분쟁이 계속됩니다. 메넬릭2세(Menelik II) 시절인 1896년에는 아드와 전투(Battle of Adwa)가 벌어졌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이 전투에서 이탈리아를 물리쳐 유럽국들을 놀라게 합니다. 여기서 졌다면 아마도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됐겠지요.

뒤를 이은 하일레 셀라시에 1세(Haile Selassie I)는 20세기 초반 에티오피아의 현대화를 추진합니다. 하지만 제국주의 열강이 이런 에티오피아를 반겼을 리 없지요. 

에티오피아는 1919년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에 들어가려고 가입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우습게도 명분은 에티오피아가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아프리카 사람들 끌어다가 노예로 팔던 자들이 누구였는데... 어찌 됐든 에티오피아는 1923년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노예제를 폐지했습니다.

아드와 전투를 묘사한 에티오피아 그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소장품이라네요. 역시 위키에서 퍼옴.

이탈리아는 1890년 에티오피아의 동쪽에 있는 오늘날의 에리트레아(Eritrea)를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1936년에는 에티오피아와 소말릴란드를 묶어 ‘동아프리카 이탈리아(Africa Orientale Italiana)’라는 행정구역을 만들었습니다. 현재의 소말리아가 있는 곳은 소말리 족이 사는 땅이라 해서 소말릴란드로 불렸는데, 2차 대전 무렵부터는 영국령 소말릴란드와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로 나뉘게 되지요.

이탈리아는 이미 1890년대에 에리트레아와 소말릴란드를 점령했지만, 앞서 얘기한 대로 에티오피아를 정복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에티오피아 공격에 나선 것은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집권 뒤였습니다.
 
무솔리니는 1928년 에티오피아와 20년 기한의 우호 조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1934년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와 에티오피아 접경 지역에서 작은 충돌이 계속되면서 전면전으로 비화할 위기를 맞습니다. 1935년 국제연맹이 중재에 나섰지만 수포로 돌아갔고, 무솔리니는 에리트레아와 소말릴란드에 파병해 전쟁 준비를 시작합니다. 

1935년 10월 3일 에리트레아에 주둔하고 있던 이탈리아 군대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했고 1936년 봄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했습니다. 같은 해 5월 9일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를 에티오피아의 국왕으로 공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에티오피아를 식민지로 만드는 완전한 점령으로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유럽 전선이 급박하게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세계대전’으로 방향을 정한 이탈리아는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체코슬로바키아 개입 등을 지지하면서 1940년 6월 영국과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5년 간 계속된 전쟁에서 이탈리아는 결국 패배했지요. 여담입니다만, 무솔리니는 패색이 짙어지자 스위스로 탈출하려다 롬바르디아(Lombardia)에서 생포됐습니다. 그리고 연인 클라라 페타치(Clara Petacci) 등과 함께 군부대에 처형됐고, 고기를 거는 고리에 시신이 걸렸다는...

무솔리니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에티오피아는 주권을 완전히 되찾았고... 그러나 아프리카의 뿔 지역은 그 후에도 그리 아름다운 시절을 맞지는 못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하일레 셀라시에 2세 황제가 쫓겨난 뒤 데르그(Derg)라고 부르는 맑스-레닌주의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서 공포정치를 펼쳤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자 멩기스투(Mengistu Haile Mariam)의 통치 기간 에티오피아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완전히 망가져버렸습니다. 
1987년 멩기스투 정권이 무너진 뒤 민주화가 시작됐고, 1994년 새 헌법이 도입됐으며 이듬해에는 첫 다당제 민주선거가 실시됐습니다. 민주화 이후 집권한 멜레스 제나위(Meles Zenawi) 총리는 아프리카에는 드문 ‘서구형 지도자’로 서구의 각광을 받았죠. 하지만 그 후에 장기집권자가 돼 요즘은 독재자스러운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에리트레아는 1941년 영국군이 이탈리아 군을 몰아낸 뒤 유엔 관할령이 돼 사실상 영국군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50년 유엔 결의안에 따라 에티오피아로 합쳐졌습니다. 
에리트레아는 1960년대부터 에티오피아에 맞선 독립투쟁을 시작, 30년 넘게 내전을 벌였습니다. 유엔 관리 하에 마침내 1991년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독립했으며, 1993년 국제적인 승인을 받아 명실상부 독립국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소말리아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비참해지는 분위기입니다. 북부 지역이 내전 끝에 ‘소말릴란드’라는 이름으로 분리 독립을 선언했지만 아직 국제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한 상태이고요. 1991년까지 계속된 극심한 내전의 후유증으로 나라는 엉망이 됐고, 아시다시피 해적이 판치고 국민들은 기근에 시달리는 ‘실패한 국가’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이슬람 국가인 소말리아에 툭하면 군대를 들여보낸답니다. 자기네는 기독교 국가라며, 기독교 ‘서방’을 등에 업고 동네 패권국가 노릇을 하려고 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