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잠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소요 사태

딸기21 2005. 6. 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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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보안군이 총선 부정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발포, 1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국은 야당지도자를 체포하고 야당 간부들을 가택연금했지만 반정부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1991년 집권 뒤 민주화와 자본주의화를 밀어붙여 서방의 각광을 받았던 멜레스 제나위(50) 총리는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국민 반발을 억압, 결국 유혈사태에까지 이르게 됐다. 


AFP 등 외신들은 8일(이하 현지시간) 보안군이 아디스아바바에서 총선 부정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발포, 22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제나위 총리가 이끄는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은 지난달 15일 실시된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의 반발로 결과 발표가 미뤄진 상태다. 총 547석 중 여당이 320석 가량을, 야당과 무소속이 200석 가량을 차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지만 야당은 부정선거가 자행됐다며 반발해왔다. 

아디스아바바의 대학생들이 지난 6일 시작한 반정부시위에는 자영업자들을 비롯한 시민들도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8일 발포 사실이 알려지자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통일민주연합(CUD) 하일루 샤왈 총재등 주요 야당 지도부 인사들은 유혈사태 직후 가택연금을 당했으며, 경찰이 야당 간부들을 대거 체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반정부 시위 유혈진압으로 인해 한때 `아프리카의 새로운 지도자'로 칭송됐던 제나위 총리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독재자'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3000년 역사의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열강의 식민통치를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사회주의 군벌 데르그(Derg)의 오랜 통치와 대기근으로 나라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빈국(貧國)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1991년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의 사회주의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제나위 총리는 15년간 비교적 안정되게 에티오피아의 발전을 모색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친(親)서방-자본주의화 정책을 펼쳐 외자유치에 적극 나섰으며, 93년 분리독립투쟁을 벌여온 에리트레아의 독립을 인정해주고 2000년에는 평화협정까지 맺었다. 

그러나 별다른 자원이 없는데다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을 농업에 의존하는 저개발 경제를 탈피하지 못하면서 개혁은 한계에 부딪쳤다. 지난해 실질 경제성장률이 10%가 넘기는 했지만 실업난이 극심하며, 특히 아디스아바바 등 대도시에서는 좌절한 청년실업자들이 정부에 대한 불만을 쌓아왔다. 

또 사회주의정권의 중앙집권독재를 없앤 대신 민족(부족)주의에 기반을 둔 봉건적 체제를 다시 불러냈다는 비판도 많다. 제나위 총리가 속한 암하라-티그레족은 전체 인구에서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솔로몬왕과 시바여왕의 나라인 고대 악슘제국의 계승자라는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지금도 정부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제나위 총리는 1949년 티그레 지역의 아드와에서 태어났다. 아디스아바바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는 74년 `티그레 인민해방전선(TPLF)'에 소속돼 데르그에 맞선 무장투쟁에 참여하는 것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TPLF는 동구권 알바니아를 모델로 한 공산주의 정권 수립을 목표로 내세운 무장조직이었으나 옛 소련 붕괴 뒤 급속히 우경화했으며, 현재 집권 EPRDF의 핵심 분파로 자리 잡고 있다. 

제나위 총리는 1980년대 후반부터 TPLF와 EPRDF 의장을 지냈으며, 멩기스투 정권 몰락 뒤 과도정부를 이끌다가 95년 총리에 정식 취임했다. 

에티오피아는 영국 토니블레어 총리가 요란하게 선언한 `아프리카 재건'의 핵심 파트너 중 하나였으며, 제나위 총리는 동아프리카 일대의 이른바 `아프리카 르네상스'를 이끄는 한 축이었다. 이번 유혈사태로 제나위 정권이 더 큰 반발에 부딪칠 것은 확실하다. 정부의 강경진압에 고질적인 민족분쟁, 도-농 갈등이 재연될 경우 에티오피아는 다시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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