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전 어느 선배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어로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가 대박났다는 얘기를 갖고 왔다. 그래서 찾아보니깐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나에겐 ‘상실의 시대’ 버전이지만)에서 그 책을 언급했다고 한다.
독서카드를 넘겨보니 올해 내 첫 책은 하루키, ‘회전목마의 데드히트’였다.
난 하루키를 아주아주 좋아한다. 상실의 시대는 오히려 좀 나중에 읽은 것이고, 처음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내가 본 건 ‘일각수의 꿈’ 버전), 그 다음엔 ‘양을 둘러싼 모험’ 읽었다. 그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놀라웠고, 재미있었고, 흥분했고, 열광했고, 하루키 이름자가 붙으면 미친듯 달려들어 읽었고, 그렇게 몇권의 소설을 더 읽은 뒤로 시들해졌다. 스푸트니크의 연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그리고 재작년 작년 읽은 단편집까지, 시들해졌다가는 다시 하루키를 접하면 역시 하루키는 하루키! 싶고, 결국 하루키를 여전히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것.
이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유별나다. 하루키는 하루키. 무라카미가 아니라 굳이 ‘하루키’라고 부른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대개는 무라카미보다는 하루키라고 부르는것 같다. 왜? 무라카미 류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인들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울나라에선 류보다 하루키가 더 먼저 많이 유명해졌으니 맞는 설명일 것 같지는 않다.
무라카미라니, 너무 구태의연하게 들리잖아, 그런 이름은-- 이런 심리일까?
어쨌든 나는 하루키를 좋아한다. 몇날몇일 하루키 책을 쌓아놓고 읽고, 하루키 책을 그림으로 만들어보고(머리속에든 모니터에든 도화지에든) 하루키에 대한 글을 하루종일 쓰고픈 생각도 있다.
그런데 하루키의 책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고 표현이 기억나지 않는다. 강렬한 느낌 속에 하루키를 읽고, 기나긴 소설의 내용과 장면장면들을 그대로 잊어버리는 것 같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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