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은 2004년 대선에서 공화당한테 왜 깨졌을까. 부시는 전쟁광에다가 2000년 대선에서 고어보다 표를 못 얻고도 운 좋게 대통령이 된 녀석인데, 바보같고 무식하고 제멋대로 독불장군이고, 부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책의 의문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책의 결론은 제목에 나타나 있다. 코끼리는 공화당의 상징이다. 공화당은 유권자들 머리 속의 '프레임'을 선점해버렸다. '프레임'은 생각의 틀 정도로 여기면 될 것 같은데, 한마디로 유권자들 마음을 쏙 빼앗는 카피를 공화당이 다 먹어버렸단 얘기다.
민주당은 공화당 신경쓰느라(코끼리를 생각하느라) 자기네가 무슨 말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할지를 잊어버렸다. 공화당 식의 용어로 공화당과 경쟁하니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저자의 결론은 '공화당이 무슨말 하는지에 목매지 말고(코끼리는 생각하지 말고) 민주당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네 언어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학자 출신이라는 저자는 인지과학을 끌어들여 신경 시냅스니 뭐니를 언급하는데, 기본 전제라고 해도 될 그런 방법론은 영 설득력이 없고... 신경조직 때문에 생각의 틀이 굳어져서 때로는 '비합리적인 투표'를 하게 된다는 얘기인 듯 하지만 '현상'은 맞는데 시냅스 운운한 '원인' 부분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아무튼 이 책은 '이론'을 공부하기 위한 것이 전혀 아니며, 그냥 ‘선거 선전가들에게 유용한 선전술’ 정도로 생각하고 읽으면 될 것 같다.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에게 깨진 이유? 논리적 정합성은 없고 말 장사 하려는 기미가 보이지만 ‘프레임’ 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뭔가 열심히 규명을 해보려는 것 같긴 하다. 요는, ‘오른쪽으로 갈 생각 말고 왼쪽 생각을 설파하라’라는 것인데, 좀 박하게 평가를 하자면 ‘민주당도 카피를 잘 만들어라’ 하는 정도인 것 같다. 민주당이 진보이냐 보수냐라는 문제를 여기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라 ‘미국 컨셉으로’ 공화=보수, 미국=진보 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그래서? 카피를 잘 만들라고 하는데(저자는 ‘프레임을 잘 구성하라’는 표현을 쓴다;;) 저자가 시범삼아 선보인 카피는 영 꽝이다. 코끼리(공화당측 논리)는 생각하지 말라면서 기껏 예를 든 것이 ‘강력한 미국’이라니. 공화당의 ‘강한 국방’에 맞서는 카피 치고는 너무 궁색해서 외려 예를 안 드느니만 못했다. ‘공화당=강한 미국’ 그거야말로 미국인들을 사로잡은 프레임이 아니던가.
민주당의 패배 원인(공화당 논리에 말렸다/민주당이 보수파 끌어들이겠다고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까지 뺏겼다/자유주의자들은 인간 이성을 너무 믿는 경향이 있으나 유권자들은 ‘비합리적/감성적’으로 투표한다 등등)을 간결하게 분석하긴 했지만 논리적 정합성이 너무 떨어진다. 그럼 클린턴은 어케 두 번이나 이겼나? 저자의 분석은 그냥 ‘2004년 대선 패배 원인 분석’ 정도로만 받아들여야지, 미국 정치 내지는 정치선전 일반으로 확대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오른쪽으로 갈 생각 말고 왼쪽 논리를 개발하라는 것은 왼쪽에 서있으면서 대중화를 지향하는 정치인들에겐 유용할 수도 있겠다. 열린우리당에서 이 책이 인기라고 하는데 그들이 이걸 소화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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