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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 문명의 붕괴- 마지막 한 그루를 베어낸 사람은.

딸기21 2006. 4. 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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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 Collapse: How Soci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
재레드 다이아몬드. 김영사



‘총, 균, 쇠’를 통해 다이아몬드의 팬이 됐기 때문에 이 책도 출간된 지 얼마 안됐을 때 구매해놓았는데, 책이 두껍기도 하거니와 이런저런 바쁜 사정들 때문에 정작 읽는 것이 늦어졌다. 이스터섬이 환경 재앙 때문에 붕괴했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다이아몬드는 이런 종류(환경재앙으로 인한 한 사회의 붕괴)의 이야기들을 사례 중심으로 충실하게 엮었다.


프롤로그에 밝힌 것처럼 
‘오늘 우리가 정글에 감추어진 마야 도시들의 유적을 보듯이 미래의 관광객들이 뼈대만 앙상히 남은 뉴욕의 마천루를 지켜보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에서 저자의 작업은 시작된다. 한때 휘황찬란했던, 혹은 적어도 멋지구리한 유적 정도는 후세의 볼거리로 남겨놓았던 문명화된 사회가 결국 사라지고 만 경우는 허다하다. 이 책은 그런 붕괴의 원인을 찾는 작업이다. 이런저런 사회들이 어떤 이유 때문에 망해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를(현재 스코어 지구인 공멸로 향해가는 것만 같은) 위기를 극복할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여러 문명사회의 붕괴 원인을 저자는 ‘환경 재앙’ 쪽에서 찾는다. 환경이라고 하면 의미가 좁아지는 감이 있는데, 다이아몬드가 지적하는 것은 환경파괴, 식량부족, 그로 인한 갈등과 전쟁, 무역의 실패 등 굉장히 넓은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저자는 
‘과거의 사회들이 환경을 파괴하면서 자초한 자살 과정’을 ▲ 삼림 파괴와 서식지 파괴 ▲ 토양 문제(침식, 염화, 토질 비옥도의 저하) ▲ 물 관리 문제 ▲ 지나친 사냥 ▲ 과도한 고기잡이 ▲ 외래종이 토착종에 미친 영향 ▲ 인구 폭발 ▲ 사람의 영향 등 8개의 유형으로 정리했다. 즉 이 경우 ‘환경 파괴’는 ‘인간이 불러온 식량 재생산의 위기’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므로 당연히-- 대안은 ‘지속 가능한 개발’로 나아간다)

이런 유형들은 물론 사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한 사회가 전적으로 환경 파괴 때문에만 무너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환경 요인들을 포함해 저자는 다섯 가지를 총체적인 ‘붕괴의 요인’으로 제시한다. 
환경 파괴, 기후 변화, 적대적인 이웃, 우호적인 무역국의 상실,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의 대응이 그것이다.

저자는 그 다섯 가지 요인을 놓고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진’ 사회들, 현재 붕괴해가고 있는 사회들, 위기를 극복하고 되살아난(되살아나고 있는) 사회들을 분석한다. 
첫 번째 케이스에 해당되는 것은 태평양의 이스터섬과 몇몇 주변 섬들, 북미 아나사지 원주민 문명, 마야 문명, 바이킹의 그린란드 원정대 등이다. 두 번째 ‘현재진행형’ 사례들로 저자는 인종 학살이 일어났던 르완다를 꼽는다. 환경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한 중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의 몬태나도 눈여겨볼 사례로 제시했다.

세 번째 긍정적인 연구사례는 일본과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슬란드 같은 곳들이다.
 이들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상명하달식이 됐건 하의상달식이 됐건, 환경 파괴의 위험성에 대한 주민들의 확고한 인식과 정부의 강력한 대응이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 나무를 베었던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자가 강의 도중 한 학생에게서 들었던 질문이라고 한다. 이스터섬을 황량하게 만든 원주민들, 그 중 마지막 한 그루 남은 나무를 베었던 사람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럴싸한 질문이지만, 문학적으로 들린다는 점에서만 그럴 뿐 실제로는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무가 모두 베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 아무리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마지막 한 그루 나무를 베어낸 사람은 벌거숭이 산등성이에서 자라나 숲이라는 것을 보지 못했던 사람, 울창한 숲이 있었던 아름다운 과거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에게 한 그루 나무는 숲의 흔적이라기보다는 쓸모없는 기둥 하나였을 터이니 우리가 상상하는 것 같은 ‘최후의 번민’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환경은 야금야금 파괴되고, 우리를 먹여살려 주는 자원도 야금야금 줄어든다. 무지하고 근시안적인 인간들은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던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조류학자 출신인 저자는 ‘비교방법론’ 혹은 ‘자연 실험’이라 불리는 방법을 통해 과거 사회와 현재 사회들을 비교하고, 과거 사회와 또다른 과거의 한 사회를 비교하면서 환경과 사회의 상호관계를 연구했다. 기본적으로 전세계에 걸친 여러 시대의 광범위한 사례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전공분야인) 뉴기니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연구는 관찰보다는 사료에 크게 의존했다.

책의 큰 줄거리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셰브론 부분이었다. 세계 4대 석유메이저 중 하나인 셰브론의 뉴기니 유전개발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지, 이 회사의 환경 보전 노력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남겨놓았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은 1:1 대응을 하지 않는다.

며칠 전에 미국의 한 연구소가 기업들의 환경경영 지수를 매겨놓은 것을 보았는데 에너지분야와 화학산업분야 기업들의 점수가 두드러지게 높았다. 그들이 워낙 깨끗한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많이 얻어맞고 감시를 많이 받아온 탓에 환경 보전까지 고려한 ‘지속 가능한 경영’ 마인드를 갖췄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국영기업이 제3세계 정부사이드라고 해서 제1세계 석유메이저보다 나은 것은 절대 아니다. 선과 악은 반드시 1세계와 3세계로 나뉘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환경에 있어서도 선과 악은 서구/비서구, 정부/민간으로 선을 긋듯이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 됐다.

책을 읽으면서 놓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면, 위의 셰브론 부분과 연결되어-- 결국 저자의 주장은 '대중들과 정부들, 기업들 모두'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대중들에게,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요구하고 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계속 강조한다. 자칫 논란이 있을수도 있는 부분인데,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대기업의 행위에 대해 궁극적인 책임이 대중에게 있다는 내 결론에 결코 실망할 것이 없다. 오히려 희망을 주는 결론이다. 또한 내 결론은 누가 옳고 누가 틀리며, 누가 훌륭하고 누가 이기적이며, 누가 좋은 편이고 누가 나쁜 편인지 판결하는 도덕주의적 결론도 아니다.... 대중이 다른 식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하고 요구했을 때, 대중의 기대에 맞춰 행동한 데 대한 보상을 해주었을 때, 그때서야 기업은 변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기업의 운영 방식을 친환경적으로 바꿔가려면 대중의 인식 변화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늙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구조'를 논하고 '이론'을 말하는 것들보다는,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얘기하면서 채찍질을 해주는 책이 훨씬 반갑고 좋다. '나는 신중한 낙관주의자'라는 다이아몬드의 말은 멋지게 들렸다.

책 말미에 참고문헌이 길게 붙어있는데, 저자는 본문에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고 싶으면 참고문헌을 보라"는 충고를 해놨다. 참고문헌 목록이 꽤 길다. 이 목록이 아주 재미있었다. 목록만 따로 떼어서 커리큘럼을 만들어 공부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아쉽게도 목록에 나온 책들 중에 국내에 출간돼있는 것은 거의 없는 듯하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꼭 읽어보고픈 것들이 눈에 띄어서 노란 색연필로 표시해놨다. 책장이 거의 노랗게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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