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필저 / 문현아 옮김 / 책벌레
"인도에는 조합원 30만명이 모두 여성인 자가고용여성협회가 있고, 브라질에는 토지없는 사람들의 운동이 있으며 멕시코에는 사파티스타가 있다. 대개 서방에서는 거의 알지 못하는 이들의 승리는 웅장하다. ...서방에서는 그런 승리의 소식들을 잘 모른다. 아르헨티나에 관한 보도는 우리의 삶과 관계 있는 투쟁소식들은 없고 온통 혼란에 관한 것뿐이다. 언론자유를 위한 터키 언론인들의 투쟁, 콜롬비아 노동조합원들의 투쟁, 동아시아의 새로운 ‘호랑이’ 노조의 투쟁 같은 웅장한 이야기는 서방에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신화와 달리, 사람들은 그다지 순종적이지 않다. 냉전 종식 이후의 정치적 초현실주의 시기는 끝났다. 사람들은 다시 움직이고 있다. -머리말 중에서"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서방에는 투쟁 소식들이 전달되지 않는다. 동방에도 민중들의 투쟁 소식은 전달되지 않는다. 왜? 언론의 잘못 때문?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면 언론은 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그것이 상업언론의 특성이다).
리뷰라기보다는, 책을 읽고 생각난 것들을 두서없이 얘기해보고 싶다. 이 책은 요즘 많이 보이는 미국 비판서들(촘스키류 서적들)하고 별반 다르지는 않다. 인도네시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사례를 다루면서 ‘제국주의와 세계화가 낳은 참상’을 전한다. 저자는 호주 출신의 언론인 겸 다큐멘터리 영화작가라고 한다. 하지만 ‘4편의 다큐멘터리’라는 부제와 달리, 책은 다큐 필름을 보듯 생생하지는 않다. 오히려 여러 자료와 저자가 만난 이들의 입을 통해 세계화의 그늘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종류의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들을 전에 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시각적인 무언가, 좀더 생생한 무언가를 기대했었는데 그 점에서는 좀 기대에 못 미쳤다. 인도네시아 부분은 이미 저자보다 ‘덜 비판적인’, 경제전문가에 가까운 이들의 책에서 읽었던 것들이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부분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이라크 부분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 상황을 다룬 것이어서 시의성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었다.
오히려 내가 재미있게 읽은 것은 마지막 챕터, 호주 토착민들의 비참한 현실에 관한 부분이었다.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이렇게’ 비참한 정도인지는 미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저자 자신이 호주인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구체적으로 적어놓기도 했다.
"선택받은 자들은 아무것도 운에 맡기지 않았다. 개최지로 결정되기 전에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시찰을 왔을 때, 위원들을 태운 수행차가 접근하면 교통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도록 조작돼 있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리픽을 유치하기위해 호주의 백인 정부가 벌였던 ‘작전’의 한 장면을 그린 스케치다. 저자는 ‘전시용 호주’에 가려진 호주 토착민의 실상을 낱낱이 전한다.
“눈이 먼 흑인들은 그곳에 없었다. 성경책만큼이나 오래된 트라코마(눈 질환) 때문에 이들은 눈이 멀었다. 호주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트라코마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호주는 세계보건기구의 ‘부끄러운 목록’에 기록된 유일한 선진국이다. 가난한 스리랑카에서조차도 사라진 이 병이 부유한 호주에는 아직 남아있다.”
이 안과질환은 아이들에게 수영장만 있었으면 해결될 병이라고 한다.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들이 대중교통수단 차별에 항의하는 프리덤 라이드 운동을 벌였던 것처럼, 호주의 몇몇 토착민들은 수영장에 들어가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책에는 트라코마보다 훨씬 비참한 토착민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묘사돼 있다.
“내가 처음 장례식을 집전했을 때 사람들이 울부짖는 것에 짜증이 나서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사람들이 내 말을 따르더군요. 그리고 나서부터는 장례식때마다 쥐죽은 듯이 고요해지는 겁니다. 어느날 내가 일어서서는 사람들에게 사과를 했어요. 사람들이 이렇게 계속해서 죽음을 당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듯, 나도 여러분에게 잘못했노라고.”
백인 목사의 고백. 어릴 적에 호주에 정착한 백인들이 말에 타고 토착민을 사냥하는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비록 토착민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긴 하지만 지금은 훨씬 나아졌을 줄 알았다.
몇해 전 외신에서 나우루(이런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의 난민촌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이란, 아프간 등지에서 온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호주 정부가 자기네 근처에 있는 작은 나라 나우루(인구가 1만5000명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작다)에 ‘난민수용소를 만들라’고 했단다. 안 그러면 경제제재를 한다니, 호주에 의존해 사는 나우루는 울며겨자먹기로 수용소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 작은 섬은 인구의 30%가 난민인 희한한 나라가 되어버렸고, 호주 정부는 세계적인 지탄을 받았었다.
책에는 호주의 난민 정책에 대한 얘기도 실려 있다. 그 중에 눈에 띈 것 한 토막.
“난민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대중적 두려움이라는 거짓말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적은 수의 ‘불법’ 난민을 받아들인 나라가 호주라는 사실을 통해서 까발려졌다. 그 숫자는 1년에 4000명 정도 밖에 안 된다”.
책을 읽으면서 호주를 미워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어제 나는 호주 대륙의 유대류 동물들에 대해 생각을 했었다. 캉가루, 코알라, 주머니곰, 왈라비, 그리고 오리너구리 같은 희한한 동물들. 호주에 관광가고 싶어, 사진 속 타즈메이니아의 그 멋진 경치들! 하지만 이제는 정치적 선택으로서 호주를 미워하리라.
하지만 엊그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하는 마웅저씨에게서 메일이 왔다. 1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일한 끝에 이제야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호주를 미워하려면 한국은 더 미워해야 하는데. 이래서 한국사람들은 맘놓고 남의 나라 욕하기도 힘들다니깐.
저자는 첫머리에서 사람들은 순종적이지 않다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자 한다면 볼 수는 있지만 승리의 함성은 들리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쩐지, 오히려 슬퍼지고 무기력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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