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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딸기21 2005. 4. 1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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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대,언제까지 갈 것인가 

이필렬 (지은이) | 녹색평론사 | 2002-10-31



내용으로만 치자면 이 책에 별 다섯개를 주고 싶다. 솔직히 글솜씨는 좀 아니올씨다...싶은 것이, 이필렬이라는 분은 작가도 아니고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과학자다. 틀렸다. 

이 분은 국내에선 꽤 유명한 환경운동가다. 약력을 보니 '베를린 공대 졸업(디플롬 화학자)'라고 써있다. 디플롬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일 대학의 무슨 학위제도 비슷한 것인 것 같고, 요는, 이 분은 화학을 전공한 분이라는 얘기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에너지대안센터라는 곳이 있다.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연구하고 캠페인하는 환경단체인데 작년인가 올초인가 환경운동연합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거기 대표로 계신 분이 바로 이필렬선생이시다. 

센터의 어느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피크' 얘기가 나왔다. 석유 생산은 보통 종형 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일단 피크(정점)에 오르고 나면 생산량은 반드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쉬운 말로 하면 석유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얘기다. 쉬운 얘기를 왜 어렵게 하느냐. 석유는 한정된 자원이다 라는, 그 당연한 것을 인정치 않는 사람들이 하도 많길래 하는 얘기다. 

이것저것 근거를 들이밀려다보니 피크니 종형곡선이니 하는 어려운 말이 나오게 된다. 제레미 리프킨의 '수소혁명'이라는 책이 바로 그 '피크'에서부터 시작된다. 석유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항상 피크를 얘기한다. "석유가 언제까지 펑펑 쏟아져나올 거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석유생산의 피크는 이미 지났다! 혹은 곧 지난다!" 여기서부터 석유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너지대안센터 간사는 내게 피크 얘기를 하면서 "이필렬 대표님이 피크론자(?)"라고 했다. 표정을 보니 어쩐지 반가워하는 분위기. 석유 문제를 생각지 않는 사람들은 피크를 모르거나, 인정치 않는다. 내가 피크에 관심을 보이자 상당히 반가워하던 이 간사 양반, 이필렬 선생님이 오시니깐 다짜고짜로 나를 가리키며 "이 분이 피크에 관심이 많으시대요" 라고 하는 것이다. 허허... 이런... 어떤 곳에서는 사람을 소개하고 설명하는데에 '피크'라는 말이 키워드가 될 수도 있다니,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우연한 만남 덕분에 이 책을 하나 얻어쥐는 행운이 따라왔다. 책 참 거시기하다. 값 8000원. 262쪽짜리 책에, 요즘 이 정도면 싼 거다. 책 겉모양부터 환경스럽다. 촌스런 느낌이 나는 책표지, 녹색평론사라는 겉표지의 인쇄 하며 흑백사진 표지, 주황색 타이틀배경에... 종이도 누렇다. 재생용지를 사용한 듯한 꺼끌꺼끌한 감촉.
맘에 든다. 환경문제를 다룬 책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렇게 책을 얻어서, 공짜 생긴 마음에, 90% 의무감으로 책을 펼쳤다. 석유문제를 논한 책은 이전에도 몇권을 봤었고 늘상 외신에서 접했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코가 깨졌다.
 

"핵분열은 과학자들이 이런저런 과학활동을 하는 가운데 우연히 얻어낸 발견이 아니다. 거기에는 현대과학의 근본 속성이 다른 어떤 발견보다 더욱 충실하게 응집되어 있다. 
현대과학의 중심 행위는 실험이다. 실험이란 자연을 인간의 의도대로 조작하고 변형하는 행위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험은 인간이 자연에 대해서 행사하는 폭력이다. 실험이란 그 근본 뿌리가 인간의 파괴욕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도구 사용이 초래한 자연의 변형이 자연의 순환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과학이 성립하고 기술이 과학과 결합하여 보편성을 얻은 후부터이다. 파괴는 서서히 그러나 단호하게 진행되었고, 주로 물질적 자연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파괴의 주역은 과학과 기술이었는데, 과학은 실험실에서 소규모로 자연을 조작하고 변형했고, 기술은 과학의 발견과 과학의 방법이라는 첨단장비로 무장하고 대규모 자연조작에 뛰어들었다.
... 나는 원자력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인위적인 핵분열은 인간이 물질적인 자연에 가하는 최악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핵분열을 일으키는 행위란 자연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이고 내밀한 부분인 원자핵에 인간의 칼날을 들이대어 마음대로 난도질함으로써 자연을 철저하게 짓밟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 구절 때문이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환경론자가 아니다. 환경문제에 솔직히 남다른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에코~~하게 살아가고 있지도 않다. 저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의 환경觀에 절망했고, 혼자 괜히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명은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 생명(환경)을 받아들이는데에 '근본적인 시각'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구나, 하는 충격.  

책은 재생가능 에너지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더 거창하게 말하면 전 지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외국의 재생가능 에너지 도입 현황과 제도 등을 살펴보고, 국내 실태를 점검한다. 우리나라 사정과 관련된 부분은 업데이트가 좀 덜 되어있다. 책이 나온 것은 2002년이고, 책 중에 몇몇 에세이들은 그 이전에 쓰인 티가 팍팍 난다.
당장 민간부문 소규모 전력판매만 보더라도 이 책이 나온 뒤에 상당히 괜찮은 수준의 법이 만들어졌으며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뒷부분은 에세이들을 묶은 것이 되어서 일관된 흐름이 있긴 하지만 내용이 반복되는 느낌이 있고, 앞서 말했듯 아름다운 문장도 아니다. 굳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사람도 내 생각에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핵분열 자체를 '가장 근원적이고 내밀한 부분인 원자핵에 인간의 칼날을 들이대어 마음대로 난도질함으로써 자연을 철저하게 짓밟는 것'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저 정도 개념을 갖고 있어야 진정한 '환경론자' 혹은 '생태주의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난 아니다.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식물 종자의 변형에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개입해왔다. 그 많은 애완견들, 품종개량된 그 모든 발바리들은? 심지어 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서도 '예스'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사람인데, 핵무기에는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핵분열은 그 자체가 자연파괴적인 것이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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