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라크, 비동시성의 동시성

딸기21 2003. 3. 1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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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시내에서는 종종 말이 끄는 수레를 볼 수가 있다. 바그다드와 암만을 있는 고속도로변에서는 베두인들이 양떼를 끌고 다니고, 원유를 실은 탱크로리가 질주하는 곁으로 낙타들이 앉아 쉬거나 지나다닌다.

그 모습을 보면 컨템포러리(동시대성)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기분이 묘해진다. 송두율교수는 예전에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말을 사용했었는데, 그 말이 모순의 중첩을 가리킨 것이었다면 사막에서 제기되는 동시대성의 문제는 문명의 중첩과 관계가 있다.

사막 곳곳에서 만나는 비동시성은 이 땅에 얼마나 오랫동안 문명들이 명멸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바그다드의 시민들과 베두인들은 서로 다른 역사의 길을 걸어왔다. 바그다드에서는 일당독재가 판을 치는데 북쪽에서는 예수 시대의 언어인 아람어를 쓰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고 사막에서는 베두인들이 양을 친다. 이 땅에는 문명들이 겹쳐 있고 지나온 경로도 다양하다.

반면 한국은 얼마나 획일적인 경로를 걸어왔는지, 그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모순의 동시성은 일상의 곳곳에서 부딪쳐올지언정 문명의 중첩은 경험할래야 경험할 수가 없다. 역사가 켜켜이 쌓여서 나타나는 것이 그것일텐데, 우리는 쌓이고 쌓인 역사를 모두 깔아뭉개고 '동시적 발전'을 추구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유시프 신부님의 말처럼 한국은 '젊은 나라'다. 새로 태어나서 젊은 것이 아니라, 옛날 것들을 없애버려서 젊어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고통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또 개발독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 '젊게 만드는' 과정을 평가절하하려는 생각도 없다. 우리에게는 이들이 갖지 못한 다이내믹 코리아(역동성), 효율적인 개발 과정이 있었다. 개발이라는 잣대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의 발전경로가 훨씬 효율적이었다. 이들은 분명 우리보다 '낙후'돼 있다.

많은 희생이 뒤따르긴 했지만 나름대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면서 고속성장을 해온 한국과, 역사의 먼지들을 전혀 털어내지 않고 겹겹이 쌓아두고 있는 나라.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너무나 상이한 평가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로 통일되지 않은 여러 갈래의 발전경로를 갖고 있는 곳에 서구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이식시켜서 오직 하나의 경로만을 남겨두겠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미국의 오만'이 아닐까.

프랑스를 업신여기고 러시아를 우습게 알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무력화하는 것도 미국의 오만이지만, 정말로 미국이 두려운 것은 바로 세계를 획일화하려 하고, 또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그들의 사고체계 아닌가. 미국의 이른바 '중동 민주화 구상'이 그 땅에 가져올 충격은 대체 얼마나 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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