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촘스키 - 머가 하룻밤의 지식여행이야.

딸기21 2005. 1. 1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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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의 지식여행 1 촘스키 

존 마허 (지은이) | 주디 그로브스(그림) | 한학성 (옮긴이) | 김영사 | 2001-02-20


촘스키의 책을 몇권 읽었더니... 내용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촘스키 특유의 어법에 많이 익숙해진데다가 내용도 대동소이해서 좀 시들해지던 차였다. 바로 얼마전에 '패권인가 생존인가'를 읽으면서 형편없는 번역 때문에 신경질이 많이 나기도 했고. 그러다 문득 돌이켜보니, 정작 촘스키의 언어학 이론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촘스키의 '본업'을 모르고서 촘스키 책들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촘스키라는 사람의 논리구조에 대해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생판 문외한인 내가 촘스키의 언어학 저술을 읽기엔 버겁고, 언어학 개론서부터 시작하기도 답답하고 해서 이 책을 골랐다. '하룻밤의 지식여행'. 하룻밤을 투자해서 촘스키라는 인물과 '인사'를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패권인가 생존인가'의 영향이 컸다.

그 책에 대한 모 신문사 서평을 읽어봤는데, 칭찬 일변도인 것도 문제가 있거니와(적어도 그 개판 번역을 생각하면 -_-;; 그리고 내용도 촘스키의 전작들에 비하면 밀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봄), '언어학자 촘스키가 사회운동가 촘스키로 다시 나타났다!'는 내용이었다. 촘스키가 언어학자를 넘어 반미운동가로 명성을 떨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아마도 그 기자는 '언어학자 촘스키' 말고 '행동하는 지식인 촘스키'의 책을 처음 읽었던가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넘어가서- 이 책 참... 꽝이었다. 하룻밤의 지식여행으로 촘스키에 대해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한 내가 잘못이었나? 아니다. 이런 류의 시리즈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쓸모가 있다. 따라서 기획 자체가 잘못된 것은 분명 아니다.

책은 '언어학자 촘스키'와 '비판적 지식인 촘스키'를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책의 3분의2는 촘스키 언어학을 설명하는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언어학 전문가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면, 이 책을 어케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예를 들면 '프라하 학파'에 대한 각주를 보자.

*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반에 프라하 학파는 음운을 변별적 자질의 집합 내에서 분석하는 음운이론을 만들어냈다.

누구를 위한 각주인가. 참 내, 황당해서. 책이 몽땅 저런 식이다. 작가의 짓인지 역자의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만행이다... 촘스키 언어학의 의미를 '간단히'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이 책보다는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이나 '게놈'에 나온 촘스키와 관련된 몇줄의 설명이 훨씬 나을 거라고 본다.

게다가 말이다.

"촘스키는 사회 문제들의 어떠한 개인화도 거부한다. 이 때문에 그는 그의 언어적 견해와 사회적 견해 간의 필연적 연계를 부인한다. 이는 둘 중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 둘이 서로 의존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촘스키의 언어학 작업을 굳이 사회운동과 연관시키지 말란 얘기다.

"동티모르에서의 잔학 행위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비난하기 위해서 전문적인 언어학 훈련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누가 말하느냐라든지, 그들의 배경이나 그것을 말하기 위한 자격 같은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말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촘스키 스스로 저렇게 말하고 있다. 촘스키의 학문적 업적을 몰라도, 미국 패권에 대한 촘스키의 비판이 맞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면 됐다는 것이다!

헌데 촘스키가 직접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는 뭐라고 하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어와 인간의 자유 간에 중요한 관계를 볼 수 있다...(중략) 언어의 동일성은 변하지 않는 생물학적 원리들에 기초한 인간의 유전적 자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자유롭게 서서 환경의 강력한 압력을 버티어 낼 수 있다. 또한 그래서 가장 깊은 층위에서의 인간성은 사회적 폭압의 강풍에 저항하는 것이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심둥? 촘스키가 주장한 것이, "환경에 억압에 굴하지 않는 유전적 언어본능"으로 단순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저 작자에게 유전자결정론/환경결정론에 대한 최근의 유전학 성과들을 다룬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언어체계를 학습할 수 있게 해주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은 언어장애 집단에 대한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분명 촘스키는 옳았다. 하지만 그것이, '환경(외부 자극)과 상관없이 언어는 타고난다'는 얘기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저 작자의 주장처럼 비약된다는 것은 우습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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