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어깨너머의 연인
유이카와 케이 (지은이) | 김난주 (옮긴이) | 신영미디어 | 2002-11-20
출판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는데 일본 소설만 잘 팔린다는 통계조사가 나온 모양이다. 하긴, 한국 소설 읽은지 오래된 나도 최근 몇년간 일본 소설은 읽었으니까.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마루야마 겐지, 요시모토 바나나, 아사다 지로 같은 소설가의 책들.
다만 국적이 일본이라는 이유로 저 소설가들을 줄줄이 묶었지만, 실상 저들의 소설은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소설들이 주는 재미도 작가에 따라 다르고, 주제나 분위기도 모두 다르다. 나름의 재미가 있고 나름의 장점이 있다. 그러니 일본 소설이 이러저러해서 재미있다고 딱 잘라 말하긴 힘들다.
'퀸'도 마찬가지였다. 노처녀 이미숙이 결혼이 아닌 사업을 선택하고, 당차고 자의식 강한 김원희는 항공기 조종사가 되고, 애교 만땅이던 윤해영이 봉사활동 나서고,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자라난 이나영(그땐 연기 진짜 못했는데) 또한 자기의 길을 찾는다는 내용. 연애 이야기로 시작해 연애 이야기로 끝나되, 그 끝은 연애/결혼이 아닌 새로운 인생. 사랑은 인생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동시에, 사람을 성장하게 해주는 학교이기도 하다. 사랑을 차버리지 않으면서 쿨하고 경쾌하게 성장과 꿈, 새로운 모색까지 이야기하는 드라마들. 영화 '싱글즈'도 비슷했던 것 같다.
'아줌마'보다 두어해 먼저 방영됐던 '퀸'을 보면서 무릎을 쳤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드라마가 있다니! 나중에 보니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원작 소설인 '여자들의 지하드'는 못 읽어봤다. '싱글즈'도 일본 소설을 리메이크한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어깨 너머의 연인'은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책이다. 가볍다면 가벼운 연애소설. 두 여자, 그리고 몇명의 남자들, 그들이 엮어가는 사랑 이야기.
사랑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이다. 사랑은 인생의 빼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니다. 소설의 결말 부분은 '싱글즈'하고 거의 똑같다. 사랑의 결말에는 단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랑의 형태 또한 제각각이라는 것-- 이를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가 사회의 자유도/성숙도를 판가름케 해주는 지표라고 나는 생각한다. 동성애를 인정하느냐, 동거 커플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느냐, 결국 '사랑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 사회는 이런 면에서 아직은 자유도가 굉장히 낮은 사회다.
그래서 일본 소설을 읽는다. 가볍다고? 흔히들 일본 소설이 가볍다고 말한다. 아마도 일본 소설 전체를 평가하는 말은 아닐 것이고, 맨 위에서 언급했던 최근 국내 유행중인 '인기 작가들'(마루야마 겐지는 좀 다르지만)에 대한 평가 쯤 될 것이다.
저들의 소설이 '가볍다'는 평가에는 쉽게 동의해줄 수 없지만 쿨하고 경쾌한 측면은 분명히 있다. 자유도가 낮은 사회에서, 사랑마저 제도적 억압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그 억압을 조금이라도 없애주는 것 같은 소설을 읽으면서 해방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 광고의 카피였던 것 같은데.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정말 맞는 말이다. 아주 작은 차이, 예를 들면 연애소설의 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와 역경을 헤치고 '결혼한다/안 한다' 같은 차이가 그저 평범한 연애소설과, 명품 소설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질척질척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의 나라(그 나라도 그닥 경쾌하진 않지만) 소설가들의 쿨한 소설을 읽으며 잠시 대리만족을 맛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죄 없는 자, 나를 돌로 쳐라.
728x90
'딸기네 책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의 세기-실패한 프로젝트?- 무지개 렌즈로 '노동'을 보자 (0) | 2005.01.19 |
---|---|
촘스키 - 머가 하룻밤의 지식여행이야. (0) | 2005.01.15 |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0) | 2005.01.13 |
[스크랩] 귄터 쿠네르트, '가정배달' (0) | 2005.01.08 |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0) | 2005.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