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조로아스터(1)

딸기21 2007. 2. 2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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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나메를 읽기 위해서는 고대 이란의 종교적 전통과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조로아스터라는 종교입니다. 최정만, <비교종교학 개론> 정리된 것을 인터넷에서 퍼오고 거기에 제가 아는 내용들을 덧붙여서 다듬었습니다. 저자는 기독교도 관점에서 썼기 때문에 틀과 인용구들만 빌어오고 거의 다 뜯어고쳤어요^^ 



1. 개관


아시아의 어느 지역에서 기원전 3000년경 네 무리의 인간들이 각지로 흩어져나간다. 한 무리는 북쪽 스칸디나비아 쪽으로, 한 무리는 서쪽 그리스 로마로, 한 무리는 동쪽 아시아 쪽으로, 또 한 무리는 동남 아시아 쪽으로.
그 중 조로아스터교와 관련된 그룹은 네 번째 동남쪽으로 간 무리다. 인도와 이란에 정착한 이 무리를 인도-이란 족(Indo-Iranians)이라고도 하고 아리안족(Aryans)이라고도 한다. 아리안족은 BC 2000년경 일부가 현재의 이란 지역에 정착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인도 서북부로 가서 인더스문명을 형성한다. 아리안족의 종교가 바로 조로아스터교다.
((페르샤라는 것은 파르시 farsi, 즉 언어의 이름이고 고대나 지금이나 이란의 이름은 이란이다. 그런데 그리스 사람들이 이란을 페르샤라고 불렀던 탓에 우리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다. 저자가 페르샤라 한 것은 모두 이란으로 고쳤다).



조로아스터의 이미지
 


금방 알 수 있었겠지만, 조로아스터교는 역사가 매우 오래 된 종교다. 예수가 날 때 찾아왔던 동방박사들이 원래 신봉하던 것이 바로 조로아스터라고 한다(배신자들).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준 '이란 왕 고레스(Cyrus 키로스)'의 종교도 조로아스터교였다
(당시 중근동은 하나의 문명권이었기때문에 아랍인이니 이란인이니 헤브루인이니를 따지는 것은 덜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고대에는 이란인들이 오늘날의 이라크 땅을 점령하고 있었다. 페르세폴리스의 유명한 왕 중의 한 명인 하룬 알 라시드만 해도 중요한 유적들은 이라크에 있다고 들었다. 알 라시드의 이름을 딴 호텔이나 알 라시드의 부인인 알 주베이다가 안치된 모스크가 바그다드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로아스터를 숭배하는 아리안족은 태초 이래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는 태양 제단의 성화(聖火)에 샌달 나무(Sandal Wood)를 태운다. 흰 옷을 입고 흰 수건을 쓰고 그 제단에 둘러서서 메데파사 시대부터 불러 오던 성가를 부른다. 

"위대한 창조주 오르무즈드를 찬양하세
우리의 생명 다해 찬양하세
완전하고 순결하시며 영원히 빛나시네
선하시고 광채로우시도다
당신의 선하심과 당신의 선하신 나라
그 나라는 지혜와 율법이 가득하도다"

아리안족은 7세기에 이슬람 교도들에게 침략을 당하자 인도로 피난하여 겨우 살아남았다. 현재는 신도 수가 15만명 밖에 안 되는데 봄베이 주변에 모여산다고 한다. 이란에도 수천명 정도 신도가 남아 있는데, 무슬림은 그들을 가바르(구에브레스) Gabars(guebress), 즉 '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라파엘의 아테네학당에 묘사된 조로아스터
 
 

Ⅱ. 조로아스터의 생애

조로아스터 Zoroaster 는 서구에서는 '짜라투스트라 Zarathushtra'로 더 잘 알려져 있다. BC 600년경에 나타난 고대 이란의 예언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 연구결과에서는 BC 1500년경(석기시대!)으로 생몰연도가 올라갔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기원전 600년 쯤에 살았으니까... 예언자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급이 되겠다.)
조로아스터는 인도-이란 족의 1차 이동 때 동남쪽으로 갔던 무리의 후손이다. '조로아스터'라는 이름에는 '신적 원리의 현현(顯現)'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이란 동부에 있던 메디아의 박트리아 Bactria 땅에서 부르샤스바 Burshasba 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난 곳 가까이에 우르미아 Urmiah 호수가 있다.

전설에 그는 나자마자 쾌활하게 웃었기 때문에 부모가 "대 선지자를 우리 팔에 안는다"고 외쳤다고 한다. 부모가 처음에 지어준 이름은 금화 Golden splendor 였다. 당시 주민들은 농경 반 목축 반의 유목민들이었기 때문에 조로아스터도 스무살 때부터 집을 떠났다. 그 뒤로 종교생활에 전념하면서 빈민들을 찾아다니면서 도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30살 때 선한 신 아후라 마즈다 Ahura Mazda의 계시를 받는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아후라 마즈다는 뒷날에는 오르무즈드 Ormuzd 라 불리게 되는데, 샤나메에는 오르무즈드로 나와 있다). 조로아스터는 예언자야말로 하나님의 독특한 계시를 받는 선택된 사람으로 믿었고, 자신이 바로 그 선택된 예언자라고 생각했다. 

모든 선지자가 그랬듯이, 그 역시 처음에는 배척을 받았다. 박해 때문에 집을 떠나 10년 동안 떠돌이 전도사 생활을 한다. 당시 가장 가까웠던 동지는 사촌인 마이드하이 마온하 Maidhyai Maonha 였는데 이 사람은 나중에 성 요한 Saint John 이 된다. 조로아스터는 42살 때 마기족(Magian)의 일부였던 아케메니아 Acaemenia 의 왕인 카비 비슈타습 Kavi Vishtasp 을 개종시켜서 콘스탄틴 Constantine 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자, 이제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이름들이 마구 나오기 시작한다. 예수한테 경배했던 동방박사들이 바로 조로아스터의 신봉자였음을 상기해보자).

비슈타습을 뒤따라서 왕족과 귀족 72명이 모두 조로아스터에 귀의했다. 덕분에 조로아스터교가 전국에 퍼졌다. 조로아스터교는 왕의 힘을 빌어서 우상숭배를 혁파하고 사제들의 부패를 일소했다. 다신교를 없애고 아후라 마즈다라는 유일신을 섬기도록 설파했다.
박트리아 부근의 한 작은 산에서 가졌던 그의 강연 모습은 꼭 예수의 산상설교를 떠올리게 한다. 조로아스터가 50세가 됐을 때에는 종교가 이란 전역과 외국에까지 퍼졌다. 그러나 이란 안에서는 브라만교를 믿던 캉그란가카라는 자가 반란을 일으켰고, 북방에서는 아스바가 이끄는 투라니아족이 쳐들어왔다.
비슈타습은 사위인 이스펜디아르 Ispendiar 장군을 시켜 반란과 침략을 진압하게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BC 583년 왕도 죽고, 조로아스터도 발크 Balkh 에서 승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도중에 적의 칼에 맞아 77세의 나이로 순교한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는 그의 사후에도 소멸하지 않았으며 조로아스터의 제자 쟈마스프에 계승된다.


 
이란에 있는 조로아스터의 묘소
 


조로아스터에 대한 기록은 가타스 Gathas, 소(小) 아베스타 Little Avesta, 스펜드나스크 Spendnask 등 고대 조로아스터 경전을 재편집한 후대 팔라비 Pahlavi 문서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문헌들은 한결같이 조로아스터를 신앙의 대상으로 신격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가 태어나기 3000년 전과 300년 전에 구세주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이미 있었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으며, 난 뒤에 동방박사 Magi 들의 축하 방문을 받았고, 통치자의 살해 음모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식이다.
서른 살에는 선지자의 생을 시작했고, 광야에서 마귀 아흐리만이 보낸 부하 뷰이티 Buiti 에게 시험을 받는다. 그러나 "생명과 수족과 영혼이 산산이 갈라질지라도 마즈다의 선한 종교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혹을 물리친다
(어느 종교랑 굉장히 닮았다...).

그 후로 온갖 기적을 행했으니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최고의 선과 진리이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유대교와 거의 혼합돼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조로아스터는 심판날을 기다리지 않고 천사들에 들려 하늘로 옮기어 갔다는 것 정도. 이런 내용들이 실려 있는 문헌기록의 연대로 보아, 뒤에 기독교와 섞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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