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난 후 - 코소보를 둘러싼 나토의 발칸 전쟁이 남긴 것들
가지 카플란, 노암 촘스키, 레지 드브레, 로베르 레데케르, 미셸 초스도프스키, 알렉스 캘리니코스, 에드워드 W. 사이드, 엘린 메익신즈 우드, 지오반니 아리기, 타리크 알리 (지은이),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옮긴이) | 이후(시울)
"전쟁은 이제 더 이상 '다른 수단을 통한 정책의 지속'이 아니라 정책의 부재를 대체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상황주의자들과 장 보드리야르가 분석한 '정치의 종언'의 직접 상속자인 전쟁을 갖게 된 것이다. 정치의 종언은 전쟁의 종말을 알리기는커녕 전쟁의 활기찬 귀환을 위한 기반을 준비하고 있다." (로베르 레데케르, <정치를 대신한 자리: 인도주의와 전쟁>)
"미국이 발칸 대륙의 여러 나라들을 상대로 하는 것처럼, 당신 또한 한 나라의 외교정책을 매수할 수는 있지만 그 민족의 꿈과 기억까지 사들일 수는 없습니다." (레지 드브레, <공화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한 여행객의 공개서한>)
"국경없는 의사회는 서구의 정부와 국제 원조기구들의 실천과 비교되는 보다 공세적이고 정치적인 개입 스타일을 개척했다. NGO들이 언론(특히 TV) 보도에 의존한 것은 인도주의적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탈정치적인 해석을 조장했다. 이들은 재난지역에 대한 NGO의 접근권을 주장하며 강대국들에 자신들의 활동을 군사적으로 보호하라고 요구했다. " (알렉스 캘리니코스, <인도주의적 개입의 이데올로기>)
미 합참의장이었던 콜린 파월 장군은 군사력 행사를 위한 기본 조건들을 제시하는 소위 '파월 독트린'을 발표했다. 명확하고 중요한 국가적 이해가 걸려 있어야만 한다,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충분한 힘이 있어야 한다, 명확한 탈출 전략이 있어야 한다 등이 그것이었다.
당시 미국의 유엔 대사였던 매드린 올브라이트는 파월의 이 원칙들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녀는 "당신이 항상 얘기하는 그 최강의 군대를 우리가 활용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 겁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올브라이트와 클린턴이 추구하던 신중한 전략이 무엇이었든 간에, 올브라이트의 무책임한 태도는 적어도 새로운 제국주의라는 맥락 속에서는 이해가 된다. 사실 그것은 오랫동안 미국 대외정책의 근간을 이루어온 테마였다. 언제 어느때든 미국의 군사력이 배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분명히 밝히는 것이 그것이다. (엘렌 메익신즈 우드, <코소보와 새로운 제국주의>)
"애국자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애국심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애국자란 혹시 영웅의 이미지에서 신비로운 껍질을 벗기고 그것을 무너뜨리는 사람인가? 나로서는 그렇다, 애국자란 그런 사람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 내가 치명적인 신화와 더불어 살아왔기 때문일테다. 하지만 또한 주위를 둘러보면 발칸을 내리누르고 있는 신화들의 범죄의 무게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신화를 파괴하는 이러한 일이 과학적 실험이라고만은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우리가 우리 과거의 포로로 미래를 살아가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다. 그렇다면 애국심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이는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호머와 아킬로쿠스, 소크라테스와 사포가 했던 식으로 모국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가지 카플란, <발칸 대지의 모든 반역자여 단결하라!>)
어느새 내 주위는 대리인들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TV에 비친 전쟁의 참상을 보며 마음아파하고, CNN식의 화려한 테크노전쟁 보도를 보면서 저널리즘의 무자비한 상업주의를 비난하고, 아니, 상업주의 언론을 비난하는 대의에 동의해주고, 월급의 2-3%를 가난한 아이들에게 전달되도록 복지재단에 맡기고, 코트 깃에 조지 W 부시의 얼굴이 그려진 뱃지를 다는 것으로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들에 대한 추모를 대신하고, 몇몇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정치적 관심을 대체시켜왔다.
그런 식으로 세상의 모든 전쟁을 비난하고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규탄해온 나에게 로베르 레데케르는 "대의 민주주의와 대리 민주주의를 혼동하지 말라"고 꾸짖는다. '정치를 없애버리는 과정'으로서의 전쟁. 더우기 인도주의라는 것을 내세운 전쟁. <인권 제국주의>라 이름붙은 전쟁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뉴 레프트 리뷰> 편집장인 타리크 알리(사진)가 여러 사람의 글을 묶어 펴낸 <전쟁이 끝난 후>라는 책은 1998년의 코소보 공습과 나토의 뒤에 숨은 미국의 얼굴, 발칸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한 책이다. 짧은 글들로 구성돼 있지만 한편 한편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미셸 초스도프스키, 에드워드 사이드, 노엄 촘스키, 가지 카플란. 책에 실린 <코소보: 나토팽창전쟁>을 기고한 로빈 블랙번은 페리 앤더슨의 뒤를 이어 뉴 레프트 리뷰의 편집장을 지낸 사람이다.
코소보 전쟁의 진실을 설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얼마전 <쿼크로 이뤄진 세상>에서 발견했던 그 말, '사색한다'는 말을 생각했고 다가올 이라크 전쟁을 상상했다. 언제부터인가 지식(정보)을 쌓아두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업무상 필요하다는 이유로, 세계와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명목으로 책 한권 한권을 쌓아올리듯, 위태로운 지식의 돌무더기를 세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작은 책을 읽으면서 사색하지 않는 독서는 무의미하다, 가치판단을 보류한 채 쌓아두는 역사지식은 기만이다 하는 자각으로 인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다. 작은 책 한권이 너무 무거워서 부담스럽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내 머리는, 내 마음은 어떻게 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던 것은 책 내용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를 관찰해서 이끌어낸 지적 병력(病歷)의 진단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권이냐, 주권이냐. 대리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훌륭한 지적이지만 TV영상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데 선량한 개인들이 '인도주의 이데올로기'를 과연 거부할 수 있을까. 또한 비아냥거리는 대신 조금만 생각해보면 인도주의는 분명 의미있는 가치 아닌가. 그동안 '사색'을 미루고 기피했던 차에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만 쏟아지니 답답해진 것은 당연하다.
"미국은 승리를 선언하긴 했지만 아직 평화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승자들이 코소보 협정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이 관철되었다고 판단할 때까지 폭격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노엄 촘스키, <코소보 평화협정>)
촘스키의 말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앞으로 벌어질 이라크전에도 역시나 들어맞을 것이다. 코소보를 놓고 역사를 이야기한 논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모든 일들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논자들이 던져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지금 이 자리에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위안을 얻으면서, 사색을 향해 스스로를 채찍질해본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지금 너의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네가 무관심하게 TV에서 지켜본 일들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반대하고, 항의하고, 투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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