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행복을 전해주는 메신저, '해피'

딸기21 2000. 9. 10. 10:45


해피
하마 노부코 (지은이) | 대원씨아이(만화)


'마스터 키튼'과 '몬스터'로 유명한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 중에 '해피'라는 만화가 있죠. 테니스 선수들 사이의 사랑과 경쟁, 우정에 관한 것인데 재미가 없어서 5권까지 보다가 덮어버렸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해피'는 우라사와의 '해피'가 아니라, 하마 노부코라는 여성작가의 '해피'입니다. 첫 표지를 알라딘에서 살짝 훔쳐오려고 했는데 우라사와의 것 밖에 없어서 실패했습니다.

하마 노부코는 개를 굉장히 좋아하나봅니다. 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기본적으로 '해피'는 맘에 들 겁니다. '해피'라는 이름의 맹인견과, 그 주인 카오리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린 만화입니다. 
'맹인견'이라 하니 벌써들 아셨겠지만, 해피의 주인 카오리는 맹인입니다. 스물두살때 사고로 실명한 아가씨죠. 절망 속에 지낸 카오리의 나날들은 사실 작품에서는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독자들은 카오리가 실명한 뒤 애인에게 배신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녀의 절망을 유추해볼 따름이죠. 
얘기가 시작되는 것은 카오리가 해피를 만나면서부터입니다. 러브래들 레트리버 종 강아지 해피가 '패피워커'(맹인견이 될 강아지를 1년간 키워주는 사람) 손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모습, 카오리가 한달간 맹인견 훈련소에서 해피와 합숙하며 적응과정을 거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맹인과 맹인견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사랑이라는 점을 작가는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그 신뢰와 사랑은, 맹인과 맹인견 사이에서만 중요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모든 인간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동물 사이에 신뢰와 사랑이 필요하다는 거죠.

카오리는 해피 덕분에 수의사 노보루와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습니다. '보통 사람'과 같은 생활은 거의 포기하고 있던 카오리였지만, 해피의 도움으로 멋지고 착한 남편을 만나고,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겁니다. '정상에 가까운'이라고 하면 좀 오해가 있을것이고, '정상과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생활을 합니다. 카오리는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손의 느낌과 청각으로 주변을 느끼게 되고,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만화는 해피와 카오리를 중심으로 맹인견에 관한 상식들을 알려주면서 맹인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와 배려를 촉구합니다. 맹인견에 관한 사실들 못잖게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나 '나와 다른 것들에 관한 배려'입니다. 
작가의 눈길은 너무나 따뜻합니다. 해피가 보도블럭 사이에 핀 꽃 한포기를 밟지 않고 지나가는 모습, 카오리가 부딪치지 않도록 멈춰서 있는 모습, 카오리의 아기와 뒹굴고 노는 모습을 다큐영화를 찍듯 담담한 시선으로 따라갑니다. 
그 시선은 잔잔하면서도 따뜻해서, 극적인 사건이 별로 없는데도 책장을 쉽사리 덮을 수 없게 만듭니다.
올가을이 가기 전에 꼭 읽어보세요. 마음에 가벼운 담요를 한장 두른것같은 기분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