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거울에 비친 유럽

딸기21 2001. 8. 25. 10:46

거울에 비친 유럽-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Europa ante el espejo 

조셉 폰타나, 김원중 옮김. 새물결 



여름 휴가 기간에 딱 1권만 책을 읽자고 결심을 했는데, 당초 계획을 100% 초과달성하는 결과가 됐습니다. 일본인 부부와 장애원숭이의 사연을 그린 '다이고로야, 고마워'를 눈물 반 웃음 반 머금어가며 읽고난 뒤에 조셉 폰타나의 '거울에 비친 유럽'을 다 읽는데 '성공' 했습니다. 

책 한권 읽는데 무슨 '성공'이라는 말까지 붙이느냐. 이 책은 유럽의 언어권들을 대표하는 5개 출판사가 회심의 역작으로 기획중인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The making of Europe)라는 기획시리즈의 첫 번째 편이자, 총론에 해당하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체가 완역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서울대 서양사학과의 최갑수 교수를 필두로 한 일군의 서양사학자들이 기획에서 번역까지를 맡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번역이 워낙에 안 좋아서 말이죠. 실은 이 책의 첫장을 펼쳐든 것이 한달도 더 됐는데, 읽기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영어식 문장을 그대로 번역해서 (더우기 원본은 스페인어로 쓰여졌을 것이니까요) 초반부에 상당한 참을성을 요구하더군요.

알려진대로, 조셉 폰타나는 바르셀로나 태생의 역사학자입니다. 현대사와 경제사를 전공했다고 하는데, 이 책은 이른바 '수정주의 역사관'을 토대로 쓰여졌습니다. 우리가 배워온 기존의 '유럽사'라고 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유럽의 로마화와 기독교화-암흑의 중세- 르네상스-지리상의 발견과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성공'이라는 도식으로 돼 있습니다.

폰타나의 시각은 여기에서 잠시 벗어나, 경제적 발전과 정치체제의 변동이라는 요소들의 인과관계를 뒤바꿉니다. 봉건제라는 '대전제' 하에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유추해내는 것이 아니라, 농업생산력의 상승을 바탕으로 해서 기사도와 봉건제라는 제도가 발전해나갔다는 식으로 뒤집어보는 거죠. 

폰타나의 '뒤집어보기'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브뤼겔의 그림(그림)들은 '귀족제의 뒤안에 가려져 있던 민중의 생생한 생활상'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런 '뒤집어보기'를 위해서 저자는 '거울을 깨뜨리는' 역사서술을 시도합니다. 원래 '야만인'(barbarian)이라는 말은,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어를 쓰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표현했던 단어랍니다. '야만인'이라는 타자(他者)에 비춰 자신들을 보기 시작했을 때에 비로소 '그리스인'(헬레네스)이라는 정체성이 생겨난 것처럼, 오늘날의 유럽인들이 갖고 있는 자신들에 대한 인식이나 나머지 세계에 대한 인식들은 모두 타인을 향한 거울에서 역으로 유추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폰타나는 이같은 '타자의 거울'로 9가지를 꼽습니다. 야만의 거울(로마의 게르만 진출), 기독교의 거울, 봉건제의 거울, 악마의 거울('이단시'되는 것에 대한 배타성), 촌뜨기의 거울(귀족과 평민의 구분), 궁정의 거울(십자군과 종교개혁), 미개의 거울(식민주의), 진보의 거울(역사발전의 단계구분론), 대중의 거울(국민주권 개념)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별로 이해하지 못할 내용은 없습니다. 서술방식이 기상천외한 것도 아니고, 문장도 평이합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배우는 것이 있다면, 저 거울들이 비단 유럽인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자의 지적대로 '비유럽인들 자신들까지도 유럽인들이 만들어놓은 거울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지경이 된' 오늘날 아시아의 현실을 얘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폰타나는 유럽을 비추는 거울들을 깨뜨리는 작업을 통해서 역사란 무엇이며, 왜 역사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인용된 안토니오 마차도의 말을 다시 인용해봅니다. 

"과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속에서 온갖 희망들, 즉 실현되지 못한, 그러나 그렇다고 실패한 것도 아닌 희망의 저장소-요컨대 하나의 미래가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성공의 역사'에만 눈이 어두워져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은, '성공한 역사' 이면에도 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역사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어야만 미래의 '또다른 가능성'에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 새겨들을 만한 지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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