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중동 인명

딸기21 2011. 2. 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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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흐 앗 딘 Salah al-Din, Salah ad-Din 1138-1193. 서방에서는 살라딘으로 불리는 중세 아랍의 군주. 유럽 십자군을 격퇴하고 예루살렘을 차지한 뒤 오늘날의 시리아에서 이집트로 이어지는 대제국을 세웠다.

아부 하얀 알 타우히디 Abu Hayyan al-Tawhidi 930-1023 추정. 중세 아랍의 철학자·시인.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사상을 재해석한 인물로, <알 무카바사트(빌려온 빛)> 등의 저작과 시집들을 남겼다

사피 알 딘 알 힐리 Safi Al-Din Al-Hilli
·1277-1349. 
오늘날의 이라크에 살았던 중세 아랍 시인. ‘흰 것은 우리의 행동, 검은 것은 우리의 전투, 푸른 것은 우리의 땅…’이라는 싯구로 유명하다.

글러브 파샤 Glubb Pasha 존 배곳 글러브. John Bagot Glubb 1897-1986. 영국 출신의 군장교로 요르단이 건국된 뒤 후세인 국왕을 도와 요르단 군을 훈련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영국을 등에 업고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한다는 비판이 나와 해고됐으나, 그 뒤에도 후세인 국왕의 친구이자 조언자로 남았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고위관리를 가리키는 파샤라는 호칭을 붙여 ‘글러브 파샤’로 흔히 불렸다.

 
글러브 파샤


이집트

무스타파 루프티 알 만팔루티 Mustafa Lutfi al-Manfaluti 1876-1924. 이집트 만팔루트 태생의 수필가, 소설가. 터키와 아랍계 혼혈로 유서깊은 이슬람 교육기관인 알 아즈하르 성원 대학에서 신학교육을 받았으나 유럽 특히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유럽 소설과 민담을 아랍식으로 각색한 단편소설들을 썼다. 수필집 <나자라트(Nazarat)>와 <무흐타라트(Mukhtarat)>, 사후 출간된 단편소설집 <아바라트> 등은 쉽고 유창한 아랍어 문체로 유럽 민담들을 각색한 것들이다. 근대 아랍 설화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마흐무드 무크타르 Mahmoud Mokhtar 1891-1934. 이집트의 조각가.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만 카이로 대학 정문의 ‘이집트의 르네상스’ 조각상을 비롯한 기념비적인 작품을 많이 남겨 현대 조각의 선구자로 불린다. 

라샤드 루슈디 Rashad Rushdi 1915-1983. 이집트의 영문학자로 카이로대학과 리즈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카이로대 교수로 일했다. 영문학을 아랍어로 번역, 이집트 뿐 아니라 아랍권 전역의 지식인들에게 소개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극작과 무대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서구 연극작품들을 여러 편 카이로의 무대에 올렸다. <씨어터 매거진>은 그가 60~66년 편집장을 맡아 펴냈던 문화 잡지다.

라티파 알 자야트 Latifa al-Zayyat 1923-1996. 이집트의 유명한 여성 작가이자 저술가. 이집트의 사다트 정권이 이스라엘과의 비밀협상으로 전격 수교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탄압하자 그에 맞서 문화적 연대 투쟁을 벌였으며, 이 때문에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옛 시절 이야기 al-Shaykhukha wa qisas ukhra>(1986), <자기 짐을 알았던 남자 Al-Rajul al-lathi ‘Arifa Tuhmatuh>(1995), <집 주인 Sahib el-Beit>(1995) 등의 소설을 남겼다. 알 자야트의 전기는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등으로도 출간됐다. 

술레이만 파야드 Sulaiman Fayyad 
1929-. 이집트의 작가. 단편소설과 드라마 각본 등을 주로 썼다.

유수프 이드리스 Yusuf Idris 1927-1991. 이집트의 극작가, 소설가. 원래는 카이로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작가로 돌아섰다. 전통 연극과 민담을 현대화한 극작법으로 유명하다. 특히 가난한 파르푸르(Farfour·하인)와 주인을 등장시킨 연극 <알-파라피르(Al-Farafeer)>로 명성을 얻었다. 가말 압둘 나세르를 지지하는 등 정치활동에도 적극적이었고, 유력 일간지 알-아흐람의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했다. 

 
유수프 이드리스


팔레스타인 

술레이만 알 나불시 Sulayman al-Nabulsi 1908-1976.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태생의 요르단 정치가. 요르단 사상 유일하게 의회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총리로 1956~57년 재직했으나 반 왕실 쿠데타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물러났다.

가산 카나파니 Ghassan Kanafani 1936-1972. 팔레스타인의 저항시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대변인과 기관지 <알 하다프> 편집장을 지냈다. 나중에는 노선차이로 갈라서, 또 다른 저항기구인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 창설을 주도했다. <당신들에게 남은 것>(1966년), <움 사아드>(1969년) 등의 저항문학작품을 남겼다. 국내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가 번역·출간돼 있다. 1972년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구 모사드의 차량폭발 공격으로 암살됐다.

 가산 카나파니  

나지 알 알리 Naji al-'Ali 1938-1987. 팔레스타인의 유명 저널리스트 겸 만평작가. 쿠웨이트 신문 <알 카바스(Al Qabas)>에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만평을 그렸다가 영국 런던에서 이스라엘 측에 암살당했다.

바시르 알 바르구티 Bashir Al Barghouti 1931-2000. 팔레스타인의 좌파 정치인 겸 언론인.

와디 하다드 Wadi’ Haddad 1917-1978. 팔레스타인 해방투사로, 67년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에서 일했다. 옛 소련 정보기구 KGB에 포섭돼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소문도 있다. 1978년 3월 옛 동독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지 알-알리 Naji al-Ali 1938-1987. 팔레스타인 출신의 저명한 만평작가. 쿠웨이트에서 발행된 알-시야사(al-Siyasa) 신문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만평을 그렸다. 그의 풍자 만화 캐릭터 한달라(Hanthala, Handala)가 인기를 끌면서 팔레스타인 저항의 상징으로 추앙받았다. 1987년 7월 22일 영국 런던의 사무실에서 또 다른 쿠웨이트 신문 알-카바스(al-Qabas)의 만평을 그리고 있다가 저격을 당했고 5주 뒤 숨을 거뒀다. 

아부 살마 Abu Salma 1906-1980. 팔레스타인 시인. 하이파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하다가 이스라엘에 하이파가 점령되자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건너갔다. 이스라엘군의 점령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 민족의 슬픔을 노래한 시들로 1978년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의 로타스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무인 브세이소 Mu'in Bseiso 1926-1984. 팔레스타인 시인. 가자에서 태어났으나 이집트로 건너가 카이로에서 공부했으며,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이 점령되자 이집트를 기반으로 문학 활동을 했다. 

카말 나시르 Kamal Nasir 1925-1973. 팔레스타인 시인. 베이루트의 아메리카대학을 나와 라말라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1956년 요르단 의회에 진출했다. 67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뒤 PLO에 합류, 해방투쟁에 뛰어들었다. 73년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에 암살됐다.

타우피크 자야드 Tawfiq zayyad 1932-. 팔레스타인 시인. 나자렛 태생으로, 팔레스타인의 아픔을 묘사한 ‘동방박사의 불 Fire of the Magi’과 ‘올리브 나무 둥치에서 On the trunk of an olive tree’ 등의 시를 발표했으며 팔레스타인 구전 시가를 집대성한 책을 출간했다. 나자렛 시장을 지내기도 했다.

파드와 투칸 Fadwa Touqan, Fadwa Tuqan 1917-2003. 팔레스타인의 여성 시인. 이스라엘 점령 통치 하 주민들의 삶을 노래, ‘팔레스타인의 시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아랍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마흐무드 다르위시 Mahmoud Darwish 1941-2008. 팔레스타인의 민족시인으로 불리는 시인 겸 작가. 1948년 이스라엘의 침공 뒤 레바논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자랐다. 19세에 첫 시집 <날개 없는 새들Asafir bila>을 낸 것을 시작으로 숱한 시집과 산문집을 남겼다. 옛소련에 유학하기도 했고, 이집트와 레바논 등 중동 여러 지역을 오가며 활동했다. PLO의 정치활동가로도 일했으며 여러 잡지의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마흐무드 다르위시

미셸 클레이피 Michel Khleifi 1950-. 나자렛 출신의 팔레스타인 극작가로, 벨기에에서 활동하고 있다. 1987년작 <갈릴리의 결혼식>으로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황금조개상 등을 받았다.

이스라엘

다비드 벤 구리온 David Ben Gurion 1886-1973.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지도자로 시오니즘을 주창,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했으며 초대 총리와 국방장관을 지냈다.

시몬 페레스 Simon Peres 1923-. 이스라엘 정치인. 두 차례 총리와 임시총리, 부총리와 외무장관 등을 지냈으며 2007년부터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다. 좌파 노동당 소속으로 이츠하크 라빈 총리 밑에서 부총리를 지내며 팔레스타인과 협상, 오슬로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다. 그 공로로 라빈, 아라파트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90년대 중반 한 차례 총리를 지내고 2009년 재집권한 우익 리쿠드당 소속의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에 비하면 온건파로서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을 통한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근래에는 노쇠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져, 국제무대에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에밀 하비비 Emil Shukri Habibi 1922-1996. 팔레스타인 출신의 이스라엘 정치인. 오늘날의 이스라엘 영토인 하이파의 팔레스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이스라엘 국적으로 크네셋(이스라엘 의회) 의원을 지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에서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고 존경받는 드문 작가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카트르 카셈 Katr Kassem>, <괴물의 딸 사라야 Khurafeyyet Sarayet Bint el-Ghou> 등의 작품을 남겼다.

기타

나짐 히크메트 Nazim Hikmet 1902-1963. 터키의 시인·극작가·소설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젊은 시절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으며, 결국 터키 국적을 박탈당한 뒤 폴란드 국적으로 살았고 결국 망명지였던 소련에서 숨을 거뒀다. 한국전쟁 때 터키의 파병에 반대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본 히로시마를 읊은 <죽은 계집아이>, <일본의 어부> 등의 시와 희곡 <다모클레스의 칼>, 소설 <로만티카>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2009년 1월에야 비로소 복권돼 사후에나마 국적을 회복할 수 있었다.

바드르 샤키르 알-사야브 Badr Shakir al-Sayyab 1926-1964. 이라크 출신의 시인. 1940년대에 전통 아랍시 양식을 깬 ‘산문시 운동’을 일으켜 아랍 문학계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이 책에서 바르구티가 언급한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도 알-사야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이루즈 Fayrouz 1932-. 본명은 Nouhad Wadi Haddad. 레바논 출신의 여가수로, 아랍권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페이루즈 


앗사피르 As-Safir 레바논의 대표적인 아랍어 일간지. 범(凡)아랍주의·좌파 성향의 지식인 탈랄 살만(Talal Salman)이 1974년 창간했다. ‘앗사피르’는 ‘대사(大使)’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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