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버마인 마웅저씨.

딸기21 2005. 6. 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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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미얀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가 오는 19일 60회 생일을 맞는다. 영국인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독재정권 하에서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수지 여사의 환갑을 머나먼 서울에서 축하하며 버마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 동안 한국에서 고국의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버마인 마웅저(36)씨. 국제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서울 홍대앞 카페 아게하에서 그를 만났다. 1,2년만 있으면 군사독재 정권은 무너질 것이라 생각하고 양곤(버마 수도)을 떠나온지 벌써 11년. 그는 지금도 "1,2년만 있으면 군사독재 정권은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런 신념으로, 희망을 안고 한국의 인권단체들과 함께 낯선 땅에서 버마 알리기 등 국제연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양곤 근처 시골에서 7남매의 막내로 자라난 마웅저씨는 85년부터 양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1962년 군사정권의 쿠데타가 일어난 뒤에 버마에서는 시간이 멈춰져 버렸다. 경제발전, 민주화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지금도 60~70년대를 살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80년대 말에 우리는 양곤에서 62년 쿠데타 이전 쓰여진 사회주의 서적들을 읽으며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도 버마의 민주화운동가들은 그런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88년 한국에서 올림픽이 한창일 때 버마에는 `양곤의 봄'이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마웅저씨는 전버마학생연맹(ABSFU) 소속으로 반독재 시위에 참여했다. 그해 가을 다시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90년 민선 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렸고, 수지 여사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 진영은 민족민주동맹(NLD) 등의 정당을 만들어 맞섰다.


NLD의 학생조직에 해당되는 신사회민주당(DPNS)에서 활동해오던 마웅저씨는 94년 보안당국이 추적을 하고 있다는 가족들의 말을 듣고 해외 도피를 결심했다. 한국행을 결정했지만 사실은 한국의 현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한국 김대중 전대통령의 수난사와 북한의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한국에 가면 민주화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막연한 생각에 건너온 한국, 이곳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말해 무엇하랴. 인천과 부천에서 2003년까지 `불법체류 노동자'로 일하면서 겪어야 했던 괴로움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렸다. 버마를 떠나와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한 이들은 지난해말 현재 75명. 그 중 7명은 정부의 승인을 받았고 9명은 거절당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다시 떠나거나, 한국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마웅저씨는 난민 승인을 못 받았기 때문에 신분이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한국 인권단체들의 도움으로 서울에 활동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03년부터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성공회대 아시아NGO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 인턴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말도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다.


버마에 남아서 활동하거나 이웃한 태국으로 넘어가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동지들과 연락하면서,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와 시민운동에 대해 배워가면서 그는 희망을 찾는 동시에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높은지를 또한 절감하게 된다.

"고향을 떠나올 땐 군부정권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믿었지요. 하지만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영국 식민정부가 의도적으로 민족분열을 조장한 탓에 버마는 복잡한 민족문제를 안고 있다. 1947년 수지여사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의 설득으로 산악지대의 카렌족과 샨족 등 소수민족과 주류 버마민족 간 통일 독립국가 건설에 합의가 이뤄졌지만 아웅산 장군은 이듬해 독립을 못 보고 암살당하고 말았다. 이후 카렌족과 샨족은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무장게릴라투쟁을 벌였고, 버마인들은 한 사람의 명망에 의존한 통합 논의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깨닫게 됐다.

다행히 최근 태국에 망명해 있는 정치인들과 소수민족 대표들 간에 연방정부 구성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이들은 다시 버마 내의 수지 여사측과 민주정부 구성에 대한 의견 접근을 보고 있다. 수지여사를 구심점으로 민족간 화해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각 정치세력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지만 발전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고 마웅저씨는 생각한다.


`곧 민주화될' 조국에 돌아가서 그가 하고 싶은 일은 예전같은 정당 정치운동이 아닌 NGO 활동이다.

"소수민족 아이들은 교육도 못 받은채 태국으로 넘어갑니다. 마약, 성매매, 아동노동, 어느 한 가지 심각하지 않은 문제가 없어요. 그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민족화해라는 것도 없습니다. 게릴라만 양산하는 꼴이죠."

버마 친구들의 오해까지 받아가면서 그는 2003년 NLD 한국지부를 탈퇴했다. 그 대신 `버마 어린이 교육지원모임'이란 것을 만들어서 한국에서 힘겹게 모은 돈을 쪼개 국경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오는 12일 저녁 마웅저씨와 버마인 동료들은 카페 아게하에서 `버마의 자유를 위한 밤(Free Burma Evening)'이라는 행사를 연다. 또 수지여사의 생일인 19일에는 부천에서 NLD한국지부, 미얀마공동체 등이 함께 하는 수지여사 석방 기원 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버마 군사독재정권을 인정, 군부가 바꿔버린 `미얀마'라는 국호를 인정하고 있지만 유럽국들이나 주요 외신들 사이에서 버마는 여전히 `버마'다. 마웅저씨는 식민지 억압과 군부독재, 민주화 운동 등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이 버마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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