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아프간의 '민간군사회사'들

딸기21 2010. 8. 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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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중심가의 타이마니 지역에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났다. 테러범들이 노린 곳은 겉보기에는 여느 집들과 다를 바 없는 주택이었으나, 실제로는 영국에 본사를 둔 하트라는 민간군사회사(PMC)의 사무실이었다. 테러범들은 민가를 가장한 사무실에 들어가려다 저지를 당하자 문앞에서 총기를 난사한 뒤 자폭했다. 이 과정에서 하트에 고용된 운전사 2명이 숨졌다.

두달 전 미 중앙정보국(CIA)은 대표적인 PMC인 지(Xe)와 아프간 기지 경비계약을 체결했다. Xe는 비슷한 시기에 국무부와도 카불 교외 미 외교관 거주단지 경비계약을 맺었다. 두 건의 계약규모는 총 2억2000만달러(약 2조6000억원)에 달했다. Xe는 2006년 이라크에서 민간인 17명을 학살, 미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가고 소송까지 걸렸던 ‘블랙워터 월드와이드’가 이름을 바꾼 회사다. 아프간에서도 민간인 사살에 개입하고 파키스탄 내 작전 등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나 물의를 빚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미지가 실추돼 미국 내에서까지 지탄을 받게 되자 회사 명칭만 바꾼 채 계속 전쟁 용역을 수주하고 있다.


치안병력을 키워 미군 철수 이후에 대비하려 하는 아프간 정부가 ‘PMC 몰아내기’ 작전에 돌입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아프간에서 경비업체들을 모두 내보내겠다”면서 올해 안에 철수·폐쇄를 강행할 것이라 밝혔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16일 보도했다. 대통령궁 측은 “정부는 4개월 안에 모든 경비업체들을 해체해야 한다는 결정을 했다”면서 “2011년 1월 1일을 시한으로 하는 해체령을 조만간 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In this July 19, 2010 file photo, A U.S. contractor looks away from a dust cloud whipped up by a helicopter departing over the gatepost at Combat Outpost Terra Nova in Kandahar, Afghanistan. |AP


‘사설경비회사(PSC)’라고도 불리는 PMC들은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을 뒷받침해주는 보조적인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전쟁의 상당부분을 수행하는 주역이다. 주된 임무는 시설 경비와 아프간 치안군 훈련, 병참 보급 등이지만 Xe처럼 직접 전투에 투입되는 경우도 많다. 특정 지역에서의 재건작업과 주민 접촉, 정찰업무 등을 도맡기도 한다. 

아프간 정부가 정식으로 영업허가를 내준 업체만 외국계 기업 26개를 포함해 52개에 이른다. 그 중에는 Xe나 다인코프 같은 미국 대기업으로 미 정부와 계약을 체결한 회사도 있고, 유엔 등 국제기구나 인도주의 지원기구와 계약해 직원들을 보호해주는 회사도 있다. 국제기구들은 주로 아프간 현지 경비업체의 비무장 경비원들을 고용하지만 정보수집이나 경비인력 훈련에는 여러 분쟁지역에서 경험을 쌓은 외국계 회사들과의 계약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Afghan police officers block traffic near the scene of a militant attack in Kabul, Afghanistan on Tuesday, Aug. 10, 2010.|AP


인적 규모와 예산 규모로 보면 아프간전쟁의 60%는 이들이 수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의 경우 아프간전에 투입된 인력의 69%는 군인이 아닌 PMC 직원들이었다. 미 국방부 관리들이 아프간을 방문할 때에도 용역업체 병력이 수행을 한다. 

의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아프간 최대 미군기지인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100여개 작전캠프들로 보급품을 나르는 8개 수송업체들에만 2008년까지 22억달러를 지불했다. 아프간 정부의 인가를 받고 일하는 사람은 3만~4만명에 불과하지만 의회 조사국은 아프간 내 공식·비공식 PMC 직원 수가 13만~16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말부터 올해 초까지 미군은 약 3만명을 아프간에 추가 파병했다. 이와 함께 PMC 직원도 2만6000~5만6000명이 늘어났다. 대부분은 아프간 현지에서 채용된 인력이다.



이들은 전쟁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지만 미군이나 국제안보지원군 지휘체계에 들어있지 않아, 책임도 불분명하고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민간인 살상에 많이 자주 휘말리며, 테러범들의 손쉬운 공격대상이 되기도 한다. 현지인 용병들이 탈레반과 결탁하는 경우도 있다. 

Xe 사례에서 보이듯, PMC들은 한 지역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이름을 바꾸거나 본사 위치를 바꾸거나 회사를 해산하고 새로 만드는 방식으로 ‘세탁’을 해 영업을 계속한다. 파푸아뉴기니 군사쿠데타에 개입하고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 ‘피의 다이아몬드 내전’에 관여했던 영국계 샌드라인의 경우 ‘이지스 디펜스서비스’라는 새로운 기업으로 변신,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계속 일을 따내고 있다.


아프간 정부는 이들이 자주 주민들과 마찰을 빚어 대테러전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자체 치안유지 인력을 양성하는 데에도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와히드 오마르 대통령 대변인은 “경비업체들이 너무 커지면서 마치 정부를 대신하는 듯이 굴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3월 현재 아프간 정규군인 치안군은 병력이 8만3000명 정도다. 그 중 5만2000명은 미군을 도와 동·남부 지역에서 탈레반 소탕작전에 참가하고 있고, 나머지가 시설 경호·치안유지 등의 역할을 한다. 치안군 훈련과 육성도 미국·영국 PMC들이 맡고 있다. 하지만 민간 회사들이 늘면서 오히려 치안군 육성을 가로막고 있다. 치안군이 100달러 안팎의 월급을 받는 반면 민간회사들은 더 높은 급료를 주기 때문에 그리로 이탈해가는 군인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카르자이 정부의 발표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차관보는 “아프간 정부의 목표를 우리도 공유하고 있지만 민간 경비회사들이 당장 활동을 그만둘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브라이언 휘트먼 국방부 대변인도 “점진적으로 수를 줄여가기 위해 아프간 정부와 협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요제프 블로츠 국제안보지원군 대변인은 “사설 경비업체들을 없애겠다는 것은 훌륭한 목표이지만 아프간 치안군의 역량을 강화해놓는 것이 먼저”라면서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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