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기후 재앙의 집결판, 남아시아

딸기21 2010. 8. 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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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북서부 산악지대가 물바다로 변했다. 북서부 중심도시 페샤와르를 비롯해 아프가니스탄으로 연결되는 산지의 밍고라, 디르, 칼람 일대는 사흘간 쏟아진 몬순(열대성 폭우)으로 복구되기 힘들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더네이션 등 현지언론들은 고립된 채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이 수만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미 사망자는 1100명을 넘어섰다. BBC방송은 ‘거대한 호수로 변한’ 페샤와르 르포를 전했다. 특히 이 일대는 험난한 산악지대여서 계곡에 몰려 사는 주민들이 많았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절벽길이나 다리가 끊어지면 그대로 고립돼 ‘섬’으로 변하기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1년에 한번씩 불어오는 몬순은 이 지역 주민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지만 이번에는 퍼붓는 비가 삶의 터전을 초토화시키는 재앙이 되어 들이닥쳤다.



‘재난 백화점’ 남아시아


페샤와르는 아프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대도시여서,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이 시작된 이래로 세계 언론의 관심사가 돼왔다. 페샤와르가 위치한 곳은 파키스탄의 4개 주(州) 중 하나인 카이바르-팍툰콰 주다. 

영국 점령통치 시절부터 100년 넘게 ‘북서변경주(North-West Frontier Province)’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요새는 카이바르-팍툰콰라는 현지식 지명이 널리 쓰이고 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잇는 카이바르 패스, 중국과 파키스탄 사이에 놓인 카라코룸 하이웨이가 모두 이 지역에 있다. 이 유서깊은 길목들도 모두 홍수 피해를 입었다. 


지금은 전쟁통에 탈레반 토벌이다 뭐다 해서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원래 카이바르-팍툰콰는 알프스 부럽지 않은 산악과 계곡, 호수를 자랑하는 소문난 여행지였다. 이미 18, 19세기부터 유럽의 여행자들과 탐험가들이 카슈미르와 함께 이 일대를 찾아 경관을 구경했다. 이번 홍수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스와트 밸리의 칼람과 밍고라까지 모두 물에 잠겼다. 외국인 사망자 수는 확인된 것만 20명이 넘는다. 유엔은 총 100만명 이상의 주민들이 홍수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 파키스탄 관리는 CNN 방송에 나와 “1947년 독립 이래로 60여년만에 최악의 홍수”라 말했다. 화면엔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며 절규하는 주민들이 비쳐졌다. 알자지라 방송은 “100년만의 폭우”라고 보도했다. 알자지라 특파원 카말 하이데르는 블로그에서 “천지가 물인데 마실 물 한 방울이 없다”고 주민들의 애끓는 처지를 전했다. 

사흘간의 비가 가져온 홍수는 소외되고 가난한 카이바르-팍툰콰 주민들에게는 형언할 길 없는 재앙이 되고 있다. AP통신은 “대테러전도 재난 복구에 달렸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2005년 파키스탄 남부 카슈미르 대지진 때처럼 이번에도 긴급구호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3000만유로(463억원)의 긴급 지원을 결정했다.



‘100년만의 홍수’라고들 하지만, 파키스탄 홍수는 남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기후변화 재난의 연속선 상에 있는 재해들 중 하나일 뿐이다. 

지난해 여름 인도는 국토의 3분의1을 물부족으로 몰고간 엄청난 가뭄에 시달렸다. 인도의 가뭄으로 사탕수수 수확량이 줄어 세계의 설탕값이 올라갔다. 올들어서도 인도에서는 이상 고열로 100명 이상이 숨졌다. 인도아대륙에서 형성된 ‘열구름’이 가뜩이나 더운 중동을 더욱 심한 열파로 몰아넣고 있다. 이미 인도는 2002년 한 차례 큰 가뭄을 겪은 바 있다. 그 때 인도 경제성장률은 3%대로 떨어졌다.

몬순 사이클이 깨진다


방글라데시의 홍수는 다른 지역과는 피해 범위나 규모가 다르다. 국토 대부분 지역이 산이 없는 낮은 평야여서 해수면이 올라가면 곧바로 침수되는데다, 해안 저지대 평야의 인구밀도가 세계 어느 곳보다도 높다. 천혜의 곡창이던 방글라데시는 이제는 ‘재난이 일상화된 나라’로 변했다. 1998년 홍수 때에는 800만명이 이재민이 됐고 2003년에도 200만명이 집을 잃었다. 2005년에도 몬순 강우가 몰아친 북부·중부에 물난리가 났다. 2007년 이후로는 해마다 홍수와 수인성 질병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한번 큰 물난리가 나면 전국토(14만4000㎢)의 3분의2 가량이 피해를 입는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와 인도양 섬나라들이 위치한 남아시아는 지구적인 기후변화의 파괴력이 몰리는 집중 피해지역이다. 히말라야의 빙하에서 흘러내린 강물은 이 일대 15억 인구를 먹여살리는 젖줄이지만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갈수록 예측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의 지붕’이 녹아내리면 “대홍수 뒤 수원 고갈”이 찾아올 것이라는 쪽에 과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특히나 문제가 되는 것은, 방글라데시에서 보이듯 남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라는 점 때문이다. 사람은 많고, 개발 수준은 낮고, 재난에 대비할 정부의 능력은 떨어진다. 



홍수가 잦아 콜레라, 설사 등 저개발국형 수인성 질병이 쉽게 퍼지고,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바닷가 땅들이 자꾸만 깎여나간다. 세계은행은 이대로 기후변화가 진행될 경우 이번 세기 중반이 되면 남아시아의 곡물 수확량이 30%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기후변화가 이 지역 가난한 주민들에게 미칠 재앙의 목록은 다양하다. 

“사용가능한 담수량이 줄고 물이 산성화되거나 염화되는 지역이 늘어날 것이다. 홍수와 가뭄 피해를 입는 지역이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산악지대 주민들은 물 공급이 불규칙해지고 줄어들 것이다. 수력발전 용량이 줄어들 것이다. 말라리아, 뎅기열, 콜레라 같은 질병은 더 심해질 것이다. 극단적인 날씨로 인해 사망하는 이들이 늘 것이다. 농업생산성은 떨어지고 어업도 악영향을 입을 것이다. 생태계 시스템도 영향을 입을 것이다.”
 

세계은행이 밝힌 재난의 시나리오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해 “남아시아는 이미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면서 저런 시나리오가 미래의 일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집중 호우와 가뭄, 사이클론(열대성 태풍)이 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수백만 빈민들이 삶의 위협을 겪고 있다. 인프라와 농업, 보건, 물 저장량과 환경 등 전분야가 영향을 받고 있다.” 


‘대책’은 말 뿐


이번 파키스탄 홍수에서 보이듯, 몬순의 사이클이 깨졌다는 점에 특히 과학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미국 퍼듀대 기상연구팀은 최근 “기후변화가 남아시아 몬순의 역학에 영향을 미쳐 강수량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몬순과 몬순 사이, 즉 건기가 길어져 가뭄이 일상화된 반면에 몬순이 닥치면 폭우가 쏟아지는 기상이변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올여름 세계를 강타한 이상고온 현상에 대해 기후학자들은 ‘라니냐’ 탓을 들고 있다. 라니냐는 태평양 동부 적도 해역에서 바닷물 온도가 3~5도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는 엘니뇨와 반대 되는 현상이지만, 그로 인한 기후변화 효과는 엘니뇨와 비슷하거나 더 크다.

지난해 11월 세계야생생물기금(WWF)은 방글라데시의 다카, 필리핀 마닐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 동·남부 아시아의 거대도시들이 기후변화로 ‘모진 피해(brutal damage)’를 입기 쉬운 곳들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언급된 곳들은 난개발된 도심 주변 드넓은 지역에 슬럼가가 형성돼 있는 이른바 ‘메가시티(초거대도시)’들이다. 다카는 WWF 학자들이 매긴 ‘기후변화 위험도’ 점수에서 10점 중 9점을 받아, 재난 위험이 가장 큰 도시로 꼽혔다. 마닐라와 자카르타는 8점이었다. 




중국의 상하이와 홍콩,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싱가포르도 해수면 상승과 호우, 홍수, 이상고온 등 기후변화 피해에 취약한 곳들로 꼽혔다. WWF 보고서는 “아시아는 인구가 많으면서도 기후 재난에 대한 대응능력이 부족해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경고들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국가들의 대응능력이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부탄 수도 팀푸에서 열린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 정상회의 기후변화 공동대응이 의제가 됐다. UNEP와 유엔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 WWF 등 여러 기구의 경고 내용이 모두 언급됐고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데에 정상들이 입을 모았다. 

하지만 BBC방송은 “행동 없는 말잔치”라 혹평했다. 이미 2007년 델리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도 SAARC 국가들은 공동 대응을 얘기했었다. 하지만 지난해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때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제일 퉁퉁거렸던 나라가 인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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