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만들어진 이란-리비아 제재법(ILSA·일명 ‘다마토법’, 2006년 리비아를 빼고 이란제재법 ISA로 바뀌었음)을 필두로 수차에 걸친 제재법안들로 이란과의 모든 거래를 막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글로벌 제재’로 누구보다 고통을 받는 것은 이란의 정권이 아닌 일반 국민들이다.
미국의 제재가 이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하다. 지난 3일 이란 영자지 테헤란타임스는 제재가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기사를 실었다. 마누셰르 모타키 이란 외무장관은 중동 역내에서 이란의 수준높은 의술을 찾아 ‘의료 관광’을 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제재가 미치는 영향을 일축했다.
실제로 막대한 자원과 국토, 노동력을 갖고 있는 이란이기에 제재의 단기적 효과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이란은 2008년 세계를 휩쓴 경제위기의 여파를 거의 입지 않은 몇 안되는 나라에 속했다. 글로벌 금융체제에 결합돼 있는 정도가 그만큼 낮기 때문이었다.
지난 2일 테헤란증권거래소에서 종합주가지수(TEPIX)는 제재 한파에도 불구하고 4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6월 안보리가 추가제재를 결의한 뒤에도 이란 증시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의 금융제재로 인해 이란 증시의 해외투자자 비율은 2%에 불과하다. 역설적이지만 미국의 제재 덕에 이란 금융시장은 글로벌 침체 영향을 적게 받고 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제재가 이란의 억압적인 신정체제를 약화시키고 핵 욕심을 억누르는 데에 실효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적지 않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이란 특파원 라민 모스타김은 4일 미국공영라디오(NPR) 인터뷰에서 “제재는 오히려 이란 정권과 상류층의 배를 불리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제재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져 있어, 소비재와 서비스시장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이란은 무려 15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제재의 빈틈을 뚫는 밀거래를 막을래야 막을 수 없다. 밀거래로 물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국민들은 고통받지만 돈 있고 권력있는 자들은 오히려 이익을 챙긴다.
가장 큰 수혜자는 다름 아닌 이란 정부다. 이란 경제의 50%는 국영부문이다. 1997~2005년 개혁파 정권 시절 민영화와 외자유치 등의 경제개혁을 추진했지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보수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 입김이 다시 세졌다. 모스타김은 “제재의 벽을 넘을 방법이 없는 민간부문은 제재 때문에 더욱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디네자드 정권은 일부 산업 민영화를 진행하면서, 핵심적인 석유·천연가스 부문에 대해서는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대선 소요를 거쳐 재집권한 뒤 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가 에너지산업 통제권을 대폭 강화한 것이 눈에 띈다. 미국의 최근 제재는 이란 권위주의 정권의 물리적 기반인 혁명수비대와 바시지 민병대 등을 겨냥한 것이라지만 이 기구들이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는 증거는 없다.
제재 조치로 핵 야심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긴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란 핵협상 대표를 지내고 현재 마즐리스(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알리 라리자니는 얼마전 “제재 때문에 오히려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란 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공세가 이란 내부에서 보수강경파들의 입지를 굳혀주고 있는 것이다.
제재는 정권에는 당장 영향을 주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란 경제와 국민들의 생활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 지난 25년간 이란에서는 항공기 17대가 떨어져 1500명 이상이 숨졌다. 제재 때문에 낙후된 항공기를 보수하지 못해 생긴 일이다. 2005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보고서는 “미국의 제재가 이란 항공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란은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 16위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다. 전체 수출의 80%, 재정수입의 45%가 에너지 부문에서 나온다. 미국통상위원회(NFTC)는 이란 제재를 풀어주면 이란의 석유·천연가스 생산량이 25~50% 늘어날 것이며 GDP가 32% 증가할 것이라 추산한 바 있다. 이란으로서는 그만큼의 경제적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셈이다. NFTC는 이란 제재를 풀 경우 국제유가도 10% 가량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계속된 고립과 제재로 이란은 역량 만큼의 성장을 하지 못했다. 이라크전 이후에는 고유가 덕을 봤지만 산업발전이 늦어지면서 두자릿수 실업률과 높은 인플레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젊은층의 불만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수조치는 사실상 이란 국민들에 대한 ‘집단 징벌’로 가고 있다. 하지만 이로 해서 이란의 정권이 바뀌기보다는, 오히려 이란 정권이 반미감정을 부추기며 상황을 악용하는 측면이 더 크다.
이란 전문가들은 인도적 차원에서 제재 정책을 재검토하고 이란의 내부 민주화와 신정 붕괴를 촉진하는 편이 더 낫다고 지적한다. 덴버 대학 이란 전문가 나데르 하셰미 교수는 NPR 인터뷰에서 “이란은 추가 제재와 상관 없이 실물경제의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며 미국이 대화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컬럼비아대 하미드 다바시 교수는 “제재이든 군사적 공격이든, 이란 정권은 그것을 권력 강화에 악용할 것”이라며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쉽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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