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오베르하우젠 수족관의 ‘영험한 문어’ 파울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최대 스타로 떠올랐다. 2년전 유로2008 때부터 승자 맞추기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온 파울은 스페인 우승을 비롯해 이번 월드컵에서 8경기 연속해 승리팀을 예상하는 데에 성공했다. 파울의 신통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펠레의 저주’마저 무력화시킨 파울의 비법은 ‘학습’에 있다는 분석이 많다. 문어를 비롯한 두족류(머리에 발이 붙어있는 연체동물)는 무척추동물 중에 머리가 가장 좋다. 이 때문에 피터 싱어 같은 윤리학자들은 동물학대에 반대하는 이들이 흔히 지나치기 쉬운 고등 지능 생명체의 하나로 문어를 들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문어가 예민한 통증 감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1993년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따라 외과수술이 필요한 경우 반드시 마취를 해줘야 하는 동물 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문어의 학습능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단기 기억력을 모두 갖고 있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여러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1992년 이탈리아 생물학자 그라치아노 피오리토와 피에트로 스코토는 “문어는 관찰을 통한 학습도 할 수 있다”는 연구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해양생물학자들은 문어가 최소한 공간지각력과 위치파악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인정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으로만 4종의 문어들이 먹이를 얻는 데에 단순한 형태의 도구를 사용한다. 문어는 뉴런의 3분의2가 다리에 분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다리들마다 제각각 ‘자치’를 하듯 동시다발적인 신경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여러 수족관에서 문어를 ‘훈련’시키는 실험을 해 성공한 바 있다.
파울은 2008년 1월 영국 웨이머스 수족관에서 부화해 곧바로 오베르하우젠에 옮겨졌다. 수족관 측은 독일 아동작가 보이 로른센의 동시 <문어 파울(Der Tintenfisch Paul Oktopus)>을 본떠 파울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파울은 문어 중 가장 흔한 종류 중 하나인 ‘옥토푸스 불가리스’ 종이다. 이 종은 아프리카 서부 대서양에서부터 지중해까지의 너른 지역에 분포한다. 몸통 크기 25㎝, 다리 길이까지 합치면 1까지 자라기도 한다.
문어의 지능이 높다지만, 파울이 각국 축구팀의 경기를 분석해 결과를 맞췄을 리 없다. 파울이 학습한 것은 팀별 경기력이 아닌 국기의 형태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장 많다.
파울의 예지력을 묻는 실험은 대진을 앞둔 두 나라 국기를 붙인 상자 두 개를 수조에 넣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파울은 두 상자 중 한 쪽에 들어있는 굴이나 홍합 따위를 먹음으로써 승리팀을 ‘선택’한다. 파울은 유로 2008년 독일 팀과 다른 팀들의 경기결과를 맞추는 질문에서 6번 연속 독일 국기가 붙어있는 상자를 선택했다. 이 대회에서 독일은 예선 한 경기와 결승전에 패했다. 파울은 6경기 중 4번을 맞춘 셈이 됐다.
이번 월드컵에서 파울은 독일이 포함된 7차례 대진과 마지막 결승전 등 8경기의 승자를 모두 맞췄다. 그 중 5경기는 독일이 이긴 경기였다. 즉 파울은 ‘승자를 예측하는 법’이라기보다는 ‘독일 국기를 고르는 법’을 학습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독일을 택하지 않았던 3경기에서 파울은 세르비아(예선전), 스페인(4강전), 스페인(결승전)을 골랐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이 세 나라 국기의 공통점에 주목했다. 모두 가로줄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문어는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색의 밝기와 형태는 구분한다. 러시아 생물학자 비야체슬라프 비시코프는 리아노보스티통신 인터뷰에서 “밝기 차이가 나는 줄무늬로 이뤄진 국기에 파울이 끌렸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국기를 고르는 데에 익숙한 파울이, 독일 국기의 노란색보다 더 밝은 흰색 가로줄이 있는 세르비아 국기와 더 넓은 노란색이 들어간 스페인 국기를 골랐을 수 있다. 파울의 작은 혼동이 우연히도 승패와 맞아떨어진 셈이다.
사람들이 혹하기 쉬운 확률의 함정도 ‘파울 신화’에 한몫 했다. 무승부가 없다는 가정 하에, 8경기 연속 승패를 맞출 확률은 256분의 1이다. 유럽 도박사이트에서 거액 상금을 따낼 확률보다는 훨씬 높다. 문어 256마리를 놓고 맞춰보라 했다면 제아무리 똑똑한 동물들일지라도 255마리는 틀렸을 것이다.
프랑스 퀴리대학 에티앵 로퀴앵 교수는 “하지만 성공한 예측에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에 그 한 마리의 성과가 기적처럼 여겨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쳄니츠 동물원에서도 몇몇 동물들을 상대로 비슷한 실험을 했는데 이들의 예선전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호주의 ‘레온’이라는 호저(豪猪·가시도치), 세르비아의 피그미하마 ‘페티’, 가나의 타마린원숭이 ‘안톤’도 과거엔 경기예측으로 유명했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실패했다. 말레이시아의 앵무새 ‘마니’도 결승전 네덜란드 승리를 점쳐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
아무튼 파울은 이번 월드컵의 ‘장외 MVP’로 명성을 얻었다. 독일인들이 준결승 패배 뒤 파울을 “튀겨먹겠다”고 한 뒤 스페인의 한 사업가는 “파울을 우리나라에 데려올 수 있도록 3만 유로를 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베르하우젠 수족관 측은 파울을 팔라는 제안을 거부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이 우승할 것이라는 파울의 예언이 나오자 오렌지색 문어 피켓을 든 축구팬들이 파울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한편 16강전에도 못 올라가고 탈락한 이탈리아에서는 한 스포츠웹진이 파울의 원 서식지가 지중해라는 이유로 “독일식 발음인 ‘파울’ 대신 이탈리아식으로 ‘파올로’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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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 종일 문어 연구... -_-
예전 가오리 글 올릴 때나 오징어 연구할 때보다도 훨씬 열심히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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