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타이타닉의 침몰

딸기21 2010. 4. 13. 20:00

‘타이탄’은 그리스 신화의 거인족 티탄에서 나온 말이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을 상징하는 우라누스 사이에서 나온 자식들은 티탄들은 신화 속 ‘황금시대’에 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빙하기를 맞은 공룡의 몰락처럼, 티탄족은 자신들의 후손인 제우스와 신들의 연합군에 몰려 멸망한다.


영국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도 이름에 걸맞는 규모를 가진 배였다. 화이트스타라인 선박회사는 1911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이 배를 완공한 뒤 신화 속 거인들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 무게 4만6326톤에 길이 259m, 너비 29m로 당시까지 세계에서 만들어진 증기여객선 중 가장 큰 배였다. 이 배를 만드는 데에 2년이 걸렸고, 외부를 꾸미는 데에 1년이 더 들어갔다고 한다. 이 배는 만들어질 때부터 서방 세계 언론들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가 돼 큰 관심을 끌었다.




영국 남부 사우스햄튼 항구를 떠나 뉴욕으로 첫 출항을 한 것은 1912년 4월 10일. 하지만 바다 위의 ‘떠다니는 궁전’인 여객선의 운명은 비극적이었다. 출항 나흘째인 4월 14일 밤 11시 40분, 타이타닉은 북미 동부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거대한 빙산과 부딪쳐 2시간 40분 만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승객과 승무원 2223명 중 15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 시의 공격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닌 선박 재해로는 세계 최악의 사고 중 하나였다. 선박회사 측은 당대 최고의 기술진들이 최첨단 기술을 총동원해 만든 ‘가라앉지 않는 배’라고 선전을 했기 때문에, 침몰소식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생존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배가 비교적 천천히 가라앉았기 때문이고,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은 규모에 걸맞지 않게 구명보트가 너무 적게 비치돼있던 탓으로 알려져 있다. 타이타닉의 최대 탑승인원이 3500여명이었던 데 비해 배에 비치된 구명보트의 탑승가능 인원은 총 1178명이었다고 한다. 타이타닉 사고는 각국이 선박 안전기준을 강화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승객들 사이에서 ‘여성과 아이들 먼저’라는 구조원칙이 지켜진 탓에 사망자들 중에는 성인 남성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타이타닉이 여러 영화와 드라마 등의 소재가 된 것은 ‘초호화 여객선의 비극’이라는 극적인 소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극 속에서 펼쳐진 빅토리아풍 ‘신사도’가 후대 사람들의 낭만적 감수성을 자극한 이유도 크다. 


수십년에 걸친 수색작업 끝에 바다밑 3773m에 가라앉아 있던 타이타닉이 마침내 1985년 인양되면서 다시 한번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고, 제임스 캐머론 감독의 동명 영화가 1997년 개봉돼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영화 <타이타닉>은 제작비가 2억달러로 여객선 타이타닉 제작비(1997년 물가환산 1억5000만달러 수준)보다 더 많이 들었다 한다.


화이트스타라인은 벨파스트의 할랜드-울프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초대형 호화여객선들을 ‘올림픽급’으로 구분했는데, 이 급의 배로는 타이타닉 외에도 두 척이 더 있었다. 그중 하나인 브리타닉 호도 1차 대전 때 독일 U-79 기뢰함의 기뢰를 맞고 가라앉는 바람에 수명이 길지 못했다. 또 다른 한 척 올림픽 호는 1935년까지 취항하다 퇴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