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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 외곽의 주이 마을에는 노르웨이 구호기구의 지원으로 만든 ‘앰퓨티(Amputee) 마을’이 있다. 내전 기간 소년병들에게 팔다리가 잘려나간 이들을 위한 일종의 정착촌이다.
며칠전 국제이주기구(IOM) 직원들과 함께 주이마을을 찾았다. 일자리도 없고 정부로부터 변변한 지원도 받지 못하는 내전 피해자들은 대개 낮동안 프리타운으로 구걸을 하러 나가기 때문에 마을은 한산했다. 뭉툭하게 절단된 팔에 목발을 짚고 다니는 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절단·전쟁피해자협회(AWWPA)의 알 하지 주수 자카(48) 회장은 갈고리가 달린 의수를 들며 취재진을 맞았다. 1999년 반군이 프리타운을 장악하기 위해 공세를 펼쳤을 당시 그는 은행에서 일하면서 시내에 거주하고 있었다. 반군이 당시 14세였던 딸을 납치해가는 것을 막으려다가 붙잡혀 양팔을 잃었다. 사흘간 치료도 못한 채 피를 흘렸다는 그는 “뒤에 의사로부터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년병들은 ‘손목을 잘라라(Cut Hands)‘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만행을 저질렀다”면서 “다만 눈길을 끌기 위해 그런 짓을 한 반군들은 인간이 아니었다”고 몸서리를 쳤다.
(진정 의문이다. 대체 그들은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자카 회장처럼 팔을 잘린 이들은 대부분 반군들에게 삶의 터전을 잃고 정부와 국제적십자사 등이 마련한 구호캠프로 옮겨졌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금도 이들의 정확한 피해상황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협회 쪽에서는 6000~7000명 정도가 절단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카 회장은 “무장해제된 소년병들에 대해서는 정부와 구호기관들이 지원을 해주는데 정작 피해자인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국제사회의 관심과 도움을 호소했다.
회사 일로 외국에 간 것이 여섯 번이다. 두 번은 일본, 두 번은 이라크, 두 번은 아프리카. 일본에 갔던 두 번을 빼놓고 나머지 네 번은, 우울해져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여행 아닌 여행이었다.
동료들은 내게 “남들이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에만 다니니 좋겠다”고들 한다.
솔직한 나의 마음은-- 남들이 다 가는 ‘좋은’ 곳들만 돌아다녔으면, 싶은 것이다. 그냥 홀가분하게, 깨끗한 거리, 이쁘고 멋진 집들, 고풍스런 성채, 환상적인 노을, 바쁘게 일하더라도 이런 걸 보면서 일하고 싶단 말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 좋았다’ 하면서 푹 잠들 수 있는. 그런 출장을 바라는 건 무리일까?
이런 사람을 만나는 건 너무 괴롭잖아. 난 사회운동가도 아니고 박애주의자도 아니고 사해동포주의자도 아니지만 그저 한 사람의 지구인으로서, 괴롭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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