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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우울했던 여행.

딸기21 2006. 5. 1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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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세계에서 가장 끔직하고 참혹한 내전을 겪은 나라.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에 면한 빈국 시에라리온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라이베리아의 먼로비아에 들렀다가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으로 향했습니다. 비행기는 프리타운을 지나 세네갈을 거쳐 종착점인 감비아로 가는 ‘완행비행기’였습니다.

공항에 내려서 이런 헬기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어요.


프리타운 공항에 내린 것은 지난 30일. 시에라리온 내 9개 공항 중 유일하게 포장된 활주로가 있는 곳이죠.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려면 육지를 파고들어온 만(灣)을 건너야 하는데 교량이 없어 군 수송기를 개조한 헬리콥터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이 헬리콥터는 정말이지 '언제 떨어진들 이상할 것 없는' 형상이었는데요. 실제로 제가 이 헬기를 타고 두어달 뒤에 결국 바다에 떨어져... 탑승자 20여명이 몰살당했다는 걸 외신기사로 읽었습니다;;)

내전(1991~2002년)이 끝난 지 4년이 지났지만 프리타운 시내에는 그 상흔이 덕지덕지 붙어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국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라고는 볼 수 없는 탓에, 거리는 쓰레기장이었고 무너져가는 집들에 꾀죄죄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내전은 온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황폐함은 ‘잃어버린 10년’ 따위의 말로는 형용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2001년부터 이곳에서 구호활동을 벌여온 국제이주기구(IOM) 프리타운사무소는 내전 기간 교육시설의 88%가 파괴됐고 문맹률이 85%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10달러, 말 그대로 세계 최빈국이랍니다. 전체 도로 1만km 중 포장도로는 895km 뿐이어서 프리타운을 벗어나면 이동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력공급, 물 공급이 최대 현안이고요. 전국적인 전력 공급망이 없어 건물마다 발전기 돌리는 소리가 시끄러웠습니다. 


내전 기간 시에라리온에서는 250만명이 집을 떠나 피난을 했습니다. 전쟁 종류 뒤 20만명 가량이 귀환했지만 아직도 200만명은 유민(流民)이 되어 국내를 떠돌고 있습니다. 기니와 라이베리아, 감비아 등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나마 존재했던 인프라는 내전 기간 남아나지 못했습니다. 시에라리온이 자랑하던 다이아몬드 광산은 군벌들 손에 넘어가 파헤쳐졌습니다. 삼림 남벌과 토양 침식, 물 부족 때문에 ‘환경 재앙’ 우려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내전의 상처에서 헤어나오기 위한 재건의 몸부림은 몹시 힘겨워보였습니다. 


시에라리온에 있는 닷새 동안 저는 내내 프란츠 파농의 책 제목,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삶이 척박해서일까,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고 눈빛은 적대적이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도시는 쓰레기장이었고 주민들은 걸인들 같았고 젊은애들은 모두 부랑아같았습니다. 85% 문맹, 산업도 공공서비스도 없는 곳, 치유될 수 없는 폭력의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 마음 아픈 현실이지요. 


유엔은 2005년 말 시에라리온평화유지임무(UNAMSIL)를 공식 종료하고 평화유지군을 철수시켰습니다. 현재 국제기구 중에서는 유엔난민기구(UNHCR)와 유엔개발계획(UNDP) 등이 남아 유엔통합사무소(UNIOSIL)를 구성해 활동을 벌이고 있고, IOM 같은 기구들이 재건작업을 돕고 있습니다. 


1996년 집권한 아메드 테잔 카바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국내 유민들의 재정착과 소년병들의 사회통합 작업은 계속 진행중이고요. 정부는 빈곤감소전략계획(PRSP)이라는 이름으로 가난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사진들을 보고는 누군가가 '난민촌이냐'고 묻더군요. 프리타운 시내 중심부랍니다.



그러나 붐부나 지역에 건설될 예정인 대규모 발전소는 10년째 공사 중이고, 공항과 시내를 잇는 교량은 카바 대통령의 첫 공약이었음에도 착공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IOM 프리타운사무소에서 2001년부터 구호활동을 펼쳐온 앤드루 초가 소장은 “사람들이 일하는 법을 잊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이 앤드루 초가 소장이라는 분은 짐바브웨 출신으로, 앙골라 내전에 참여했던 게릴라 대장이었답니다. 유엔에서 회유해 무기를 놓게 하고 IOM의 일자리를 주었는데 일을 엄청 잘 하시는 분 같았습니다. 시에라리온 사람들 '군기 빠져 있다'고 질타하셨고, 시에라리온 사람들도 일 잘하는 소장님을 무서워하는 분위기... 돌아올 때 소장님이 쓴 짐바브웨 경제에 관한 책을 얻어왔는데, 영어로 된 거라... 읽지는 못했어요;;)

IOM에서는 유럽 등지에 나가있는 시에라리온 출신 전문인력을 고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한시적 귀국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지만 참여는 저조하다고 합니다. 프리타운 외곽에 소규모 음료 공장과 직물 공장 따위가 있기는 하지만 전국적으로 기업 활동은 거의 없다 해도 될 정도이며 무엇보다 교육받은 인력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했습니다.

여전히 외화수입의 90%는 내전의 원인이 됐던 다이아몬드에서 나온답니다. 최근 광산들이 위치한 코노 지역에서 분리독립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정부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것은 내전의 상처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 다이아몬드 광산을 노린 군벌들은 라이베리아의 지원을 받아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마약이 주입된 소년병들은 군벌들이 조종하는대로 민간인들의 사지(四肢)를 자르고 유아들까지 성폭행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IOM에서 일하고 있는 카트리나(33)는 반군이 프리타운까지 들어왔던 1999년 만삭의 몸으로 집 안에 숨어지냈던 악몽을 떠올리면서 “아무도 잊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리타운에도 이런 곳은 있지요. 빈투마니라는 바닷가의 호텔인데요.
저기에 중국식당이 있어서 점심을 먹으러 갔었어요.


높은 건물에서 바라본 시가지 풍경. 멀리서 보니깐 제법 그럴싸해 보이죠?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시에라리온 사람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역시나 자원 덕분입니다. 시에라리온은 널리 알려진대로 다이아몬드와 철광, 티타늄광과 보크사이트 등을 수출하는 천연자원 부국이다. 외화수입의 90%는 내전의 원인이 됐던 다이아몬드에서 나옵니다.

아프리카 외교에 발벗고 나선 중국은 프리타운 대사관에도 직원 20여명을 상주시키고 있고, 식민종주국이었던 영국을 비롯해 유럽국들과 미국에서도 투자자들이 다시금 프리타운행을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프리타운에서 외국투자자 포럼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아직 대사관을 개설하지 않았지만 교민 50여명이 식당 등을 경영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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