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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토고] 오지마을 추장님 집에서.

딸기21 2005. 12. 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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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삼바 마을에서 제일 큰 집, 야판타 앙투안(60) 추장의 집을 찾아갔다. 집앞에는 `예침포게이'(도저히 이 발음을 따라서 한글로 적을 수가 없다;;)라고 부르는 액막이 흙무더기가 있었고, 그 위에 하얗게 바랜 소 머리뼈가 걸려 있었다. 마당에서는 한 청년이 진흙으로 범벅이 된 채 음식을 저장하기 위한 커다란 토기를 만들고 있었다.

오지마을 촌장님을 만나다

야판타 추장은 1985년 추장이던 아버지가 숨진 뒤 자리를 이어받아 마을을 대표하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아버지의 아버지 대에 지은 것으로, 추장은 이 집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왔다. 마당에는 햇볕과 모래바람에 시달려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여인들과 아이들이 있었고, 추장은 30도를 웃도는 더위 속에서 두꺼운 점퍼를 나름 멋내어 덧입고 있었다. 


야판타 추장은 9명의 아내를 두었는데 2명은 죽고 2명은 집을 나갔으며, 현재 5명의 아내와 살고 있다고 했다. 그들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15명. 결혼한 맏아들이 며느리와 손주들을 거느리고 이 집에 같이 살고 있다.


액운을 쫓는 소머리뼈.


마당에 진흙을 벌려놓고 그릇을 만들고 있다.


주인공들은 까매서 잘 안 보이고 나만 보이네;;


야판타 추장은 전기도 전화도 없는 이 곳에서 평생을 살았고, 외지로 나가본 일도 없다고 했다. 월드컵 본선에서 첫 경기를 펼치게 될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한국이라는 나라도, 월드컵도 모른다며 웃었다. 대가족을 거느린 그의 주수입원은 목화 농사. 목화를 팔아 1년에 50만 세파(약92만원) 정도를 벌어 온 식구가 먹고 산다. 나이든 추장의 바램은 오직 하나였다. 바삼바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정부에서 자신들을 배려해주는 것. 그는 "아무라도 좋으니 우리에게 전기를 주고 우리도 제대로 살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토고 정부는 1970~80년대 대규모 개발 정책을 펼쳤지만 90년대에 들어와 에야데마 냐싱베 전대통령의 장기집권이 국내외적인 비난을 받으면서 유럽 쪽에서 오던 지원이 끊기고 유럽계 기업들도 떠나버렸다. 정부는 현재 유럽연합 측과 원조 협상을 벌이고 있다. 원조가 다시 재개되지 않으면 이 오지에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은 요원하다. 야판타 추장은 "아이들은 외지로 공부하러 나가면 일자리가 없는 이곳으로는 돌아오지 않는다"며 "한국은 잘 사는 나라냐"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