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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토고] 탐베르마 마을에 갔던 이야기.

딸기21 2005. 12. 2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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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토고 북부에는 전기도 전화도 없이 원시적인 모습으로 부족생활을 하는 원주민 마을이 있다. 14일 수도 로메에서 500㎞를 달려 탐베르마 지역에 있는 바삼바의 오지 마을을 방문했다.

바삼바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남단 해안에 있는 수도 로메를 벗어나자 겨울철 계절풍인 모래바람 하르마탄이 짙게 깔렸다. 북쪽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르마탄이 벌써 로메까지 이르고 있었다. 초원 저멀리 모래바람 속에 메마른 나무들이 희미하게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사바나에는 짙은 모래바람이 안개의 층을 이루듯 하얀색으로 초원을 한꺼풀 씌우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잘 뚫려있었지만 아무 제한표시도, 표지판도, 차선도 없었다.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들을 스쳐지나며, 자동차는 갓길을 걷는 사람들 사이를 곡예하듯 달려나갔다.

바오밥 나무는 뿌리가 아주 깊어서, 이 나무를 뽑은 곳에 잘못 갔다가는 구덩이에 빠져 못 나오고 죽는 수도 있다고 한다.


바오밥 나무

 

나를 홀딱 반하게 만든 망고나무.



바삼바로 가는 길, 지나쳐온 마을 풍경은 한국의 옛 시골풍경과 비슷했다. 길가에 곡식을 널어말리는 모습, 아기를 업고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들, 하얀 소떼를 몰고 가는 사람들. 마을 어귀마다 커다란 망고나무들이 새파란 잎사귀를 햇빛에 반짝이며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중부의 소코데를 지나자 초원은 끝나고 구릉성 산지가 나타났다. 현지인 가이드는 독일에서 친구가 보내줬다는 모바일폰으로 남부에서는 볼 수 없는 산과 숲을 연신 찍어댔다. 에야데마 냐싱베 전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카라를 지나자, 차는 어느새 비포장도로에 들어와 있었다. 로메를 떠난지 7시간. 토고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인 티크목(木) 재배장과 화전민들이 시커멓게 태워놓은 밭을 지나 바삼바 마을에 들어섰다.



곡식 빻는 여자들.



아 졸려~ 어디에서나 아이들은 잠이 많다. 나도 졸려...



원래 이곳은 17세기 서아프리카를 장악했던 아보메이 왕국의 노예사냥을 피해 들어온 주민들이 숨어 지내던 곳이다. 시대가 여러번 바뀌었지만 이곳 주민들은 오래전의 흙집에서 오래전의 삶의 방식 그대로 살아오고 있다. 주민 수는 계속 줄어 현재 235명, 28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동그란 원통모양 집에 초가지붕, 집 안에는 염소들이 자는 방과 침실, 부엌이 모두 이어져 있었다.

볼록 솟은 원추형 지붕에는 곡식창고가 있고 화장실도 지붕 위에 있다. 주민들은 벼와 잡곡 등을 재배하거나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민들은 토고 북쪽 부르키나파소에 기원을 둔 지타마리히족으로, 토고인들도 잘 알지 못하는 극소수 부족이다. 북부 사람들은 다수 종족인 남부의 에베족에 비하면 거칠고 사납다고 했다.

마을을 돌아보자니 배꼽이 볼록 튀어나온 아이들이 곳곳에서 발가벗고 쳐다봤다. 캄캄한 흙집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아기에게 젖을 물린 젊은 여인이 취재진을 몰래 불러세워 다급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동전 한 개를 집어주자 웃음을 던지며 돌아섰다. 안내해주던 마을청년 무수쿠(21)는 "전기는 들어오지 않지만 휴대용 라디오로 월드컵 소식을 들어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다"며 웃었다.








바쌈바 마을 풍경



이곳 주민들은 토고를 대표하는 것도, 토고인들의 전형적인 모습도 아니며 관광안내 책자에 나올 정도로 이 나라에서도 드물게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를 그럴싸하게 속여 넘긴 사악한 원주민도, 서양의 생태론자들을 매혹시킨 `고상한 야만인'도 아니었다.

주민들은 외지인을 보자 모두 모여들어 손을 벌렸고, 돈을 주지 않으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앞을 막아섰다. 차가 지나가는 길목에 빨랫줄을 쳐놓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코흘리개 꼬맹이들까지 무언가를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지만 일거리가 없는 청년들이나 여자들은 마을에 남아 주로 취재차 찾아온 외국인들에게 손벌려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해질 무렵 마을을 나섰다. 가이드는 "밤이 되면 외국인들은 물론 토고 사람들도 마음대로 지나다닐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마치 중동 몇몇 지역의 베두인들처럼, 낮에는 관광지처럼 호객을 하고 밤이 되면 강도로 돌변하는 것이 이 마을이라는 것. 가이드는 "밤이 오면 여기는 그야말로 암흑천지"라며 길을 재촉했다.


얌을 파는 사람들


수수를 이고 가는 여자들


초원에 불을 놓는 화전민들


`문명세계'에서 온 이방인들을 동경하듯, 질시하듯 바라보던 눈길들을 떠올리자니 "제발 우리에게도 전기를 넣어 달라"던 마을 사람들의 하소연이 귀에 걸렸다.

로메로 돌아오는 길, 도로변에는 화전민들이 불을 놓아 메마른 초원이 따닥거리며 불타고 있었고 불길에서 도망나온 동물들을 노린 독수리 떼가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