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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토고] 토고에 가다

딸기21 2005. 12. 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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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종(반갑습니다), 꼬레!"

모래바람 부는 바닷가 공항, 서아프리카인들 특유의 마음 좋아 보이는 얼굴에 넉넉한 웃음. 12일(현지시간)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토고 수도 로메에서 마주친 이 나라의 첫인상이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월드컵 조 추첨식을 보고 좋아라 하며 “내일은 드레스덴을 구경해보자” 하면서 꿈에 부풀어있었다. 날벼락 같은 지시를 받았다. “토고로 가라”. 생소한 이 나라가 한국의 월드컵 첫 상대팀이 됐다고 해서, 갑자기 토고로 가게 됐다. 라이프치히에서 부랴부랴 토고행 비행기표...를 샀다. 난생 처음 내 카드로 천만원 긁어봤다! 

(중간 생략) 프랑크푸르트에서 민박하고 담날 파리로 갔다가, 곧바로 토고 수도인 로메로 향했다--- 라고 하면 사실과 좀 다르다. 파리에서 로메 가는 비행기는 중간에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잔에서 한번 서는데, 비행기 트랜짓을 하는 것은 아니고, 나는 그냥 앉아 있고, 일부 승객들이 갈아탄다. (나이지리아엔 입석도 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로메로 간다.

회사에서는 내가 토고 가는거 알아보는 동안 자꾸만 비자 문제 어케 되냐고 물었는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출장도 좋은 데만 가본 분들은 이런 질문을 집요하게 하는구나'... 비자는요, 걍 하믄 돼요. 말 안해줄 거예요.

로메 사람들은 내년 6월1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역사적인 월드컵 첫 경기의 상대가 될 한국에서 온 취재진을 뜨겁게 맞았다. 

11일(현지시간) 비행기가 수도 로메의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는 동안 어두움이 깔린 바닷가와 항구도시의 불빛들이 보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로메의 해안은 사주(沙柱)와 석호(潟湖)들로 이뤄져 있다. 그중 가장 큰 석호의 이름이 나라 이름의 유래가 된 토고호(湖)이다. 전체 인구 568만명 중 60만 명이 로메에 살고 있다. 수도의 이름은 원주민들이 이를 닦는데 썼던 나무 이름인 `알로치메'에서 나왔다

(여담이지만 반다나 시바는 한 책에서 인도의 '원주민들이 이를 닦는데 쓰는 나무'를 서양인들이 어떻게 '지적재산권'이라는 이름으로 빼앗아가는지를 따지기도 했다)

공항은 작았다. 단층으로 된 공항 청사 앞, 활주로에 착륙한 항공기는 그대로 청사 앞으로 (택시처럼) 가서, 아스팔트 바닥에 나를 내려놓았다. 브리지...같은 건 없습니다 ^^;; 

로메 사람들은 친절하고 따뜻했다. 공용어인 프랑스어, 사실상의 국어인 에베 부족어,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말을 건네던 이들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몹시 반가워했다. 

"이제 알았어요, 당신들은 우리 축구를 보러 왔군요!" 
"한국 축구라면 낯설지 않아요." 

로메 시민들은 월드컵 첫 본선진출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에 크게 들떠있는 듯, 축구에 대해 물으면 모두 반색을 했다.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신사분이 맘에 들었다. 중년과 노년 사이인 것 같은데 (이분들 나이를 통 짐작하기 힘듦) 멋진 비즈니스 정장에... 세련이 철철 넘쳤다. 아저씨 이름은... 난 '코스모스 시크파'라고 듣고 안어울리게도 이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명함을 받아보니 그거이가 아니었당. 

암튼 촌닭처럼 옆에 앉아서 “익스큐즈 미~” 하면서 매달렸다. 토고에 대해 이너넷에서 후다닥 자료를 찾아온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어케든 하나라도 더 알아가지고 땅을 밟아야 하는 처지였던지라, 아저씨가 잠들만 하면 깨우고, 좀 쉬려고 하면 또 깨우고... (뒤에 이 아저씨 얘기 또 나옴)

나는 female 에다가 Asian 에다가 덩치도 굳이 따지면 slim 한 쪽에 속하기 때문에 (뱃살 빼고) 어디 가면 아줌마 체면 접고 일단 불쌍한 척 가녀린 척을 한다. MDH형 출장을 다니면서 얻은 삶의 지혜라고나 할까.



로메 시내 풍경


다시 월컵 얘기로 돌아가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아프리카의 세네갈이 개막전에서 직전 대회 우승팀 프랑스를 꺾으며 돌풍을 일으켰었다. 토고인들은 내년 독일에서 자신들이 다시한번 `검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해하면서 한껏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시내 곳곳에는 월드컵 본선 진출을 기념하는 포스터와 광고들이 있었다.

본선 첫 진출이라는 점 때문에 겸손해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유의 낙천성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 사람들은 "반드시 이기자"는 생각보다는 세계적인 축제 마당에 자신들도 자리를 얻게 되었다는 것에 마냥 기뻐하고 있는 듯했다. (몇몇 사람들은 한국을 3대0으로 이긴다고 큰소리쳤지만...) 

로메 시내에 들어서자 모래바람 냄새가 느껴졌다. 일주일만 지나면 이곳은 겨울철 계절풍인 모래바람 `하르마탄'에 휩싸인다. 이 바람은 북쪽 사하라의 모래를 해안까지 실어 나른다. 하르마탄이 불면 모래가 하늘을 덮고 낮기온도 5℃ 가량 떨어진다고 한다.

이곳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낮 기온은 30도를 웃돌지만 아침저녁으로는 21~23도 정도의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겨울'은 한달 뿐, 하르마탄이 지나가고 나면 로메에는 다시 무더위가 찾아온다.


로메 최고층 빌딩인 코린티안 뒤페브리에르 호텔 35층에서 바라본 시내 풍경.


로메의 바닷가. (사진을 제가 너무 작게 줄여서 맛이 안 나는군요;;)



거리에는 곡식을 절구로 찧는 사람들, 머리에 오디오까지 이고 다니며 파는 행상들, 소파를 늘어놓고 파는 노점상들이 북적였다. 길가에는 쓰레기 천지였지만 허름한 시장통엔 인터넷 카페 간판들이 보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1600달러, 문맹률이 40%에 이르지만 인터넷 사용자가 21만 명에 이를 정도(토고에도 전화 같은 거 있냐고 묻지 마세요)로 로메 지역에서는 빠르게 정보화가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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