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시사주간지 <타임>

딸기21 2010. 3. 2. 18:41

'국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잡지’. 이렇게 말하면 감이 오지 않겠지만, 영어 “The International Magazine of Events”의 약자를 모아놓으면 영어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들은 쉽게 알아들을 이름이 됩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바로 그 잡지입니다.




미국 저널리스트 겸 출판인인 브리튼 해든과 헨리 루스(아래 사진)가 창간한 타임은 1923년 3월 3일 첫 출간됐습니다. 예일대 동창생으로 캠퍼스 신문 ‘예일 데일리뉴스’를 만들던 두 사람은 일반인들을 위한 시사잡지를 만들기로 한 뒤에 이름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맨 처음 물망에 올랐던 것은 ‘팩츠(Facts·사실들)’였으나, 해든이 “뭔가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게 들리는” 이름을 골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타임’으로 결정됐습니다. 예일대 동창인 부자 친구 헨리 데이비슨, JP모건의 유력인사였던 은행가 드와이트 머로 등의 지원을 받아 세상에 선을 보였습니다.


29년 해든이 사망한 뒤 루스가 타임을 이끌었습니다. 루스는 67년 세상을 뜰 때까지 20세기 미국 미디어 업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 중 하나로 군림했습니다.
타임이 창간된 시기는 미국에서 라디오와 영화 등 새로운 매체들이 세상을 움직이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인쇄매체로 출발한 타임은 다른 미디어들을 활용하는 전술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장 ‘핫’한 라디오프로그램과 영화를 먼저 소개하고, 그들과 공존함으로써 수익모델을 만들었던 것이죠. 

타임 창간때부터 일했고 훗날 2대 주주이자 편집장을 지낸 로이 라센은 창간 이듬해인 24년부터 신생 라디오방송에 타임이 뽑은 시사퀴즈를 내보냈습니다. 
나중에는 미국 내 33개 라디오방송국에서 타임 잡지와 연계한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31년에는 CBS방송이 ‘3월의 타임’이라는 이름으로 30분짜리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타임이라는 이름이 미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는 이 프로그램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 후 정치·경제계의 유력인사들이나 주요 기업들도 타임과의 공존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전략을 택했다는 겁니다.

80년대 이후 몇몇 큰손들에 의해 세계 미디어업계가 재편되면서 타임도 독립된 잡지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됐습니다. 89년 워너 커뮤니케이션과 타임이 합병돼 타임워너라는 거대 미디어그룹이 탄생했습니다. 2000년 아메리카온라인(AOL)과의 재합병으로 ‘AOL타임워너’라는 회사가 만들어졌지만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의 합체 실험은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3년 뒤 다시 타임워너로 돌아갔습니다.


타임은 창간 이래 팝문화를 비롯한 ‘가벼운 뉴스’에서 분쟁·내전·정치 등 ‘무거운 뉴스’까지 고루 다루면서 시사잡지의 전범(典範)이 됐지요. 보수적·상업적인 속성, 민감한 트렌드 감각, 세련된 편집과 예술적인 사진들이 이 잡지의 성공요인으로 꼽힙니다. 

제 경우, 국제뉴스를 다루는 일을 하다보니 타임을 많이 봤었는데요. (기사를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고 말 그대로 '훑어본' 적이 많다는 얘깁니다 ^^;;
다소 '끔찍한' 사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예를 들면 아체 지역 반군들의 시신 사진(이런 사진은 일간지에선 보기 힘들죠), 아프가니스탄 소련 괴뢰정부의 대통령이던 나지불라가 교수형 당해 매달려 있는 모습도 타임을 통해 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이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타임의 가장 큰 특징은, 언제나 표지에 사람을 싣는다는 거겠지요. 타임의 표지모델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세계 미디어의 초점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타임 첫 호의 표지인물은 누구였을까요. 출판 설비가 열악해 팩시밀리로 전송된 사진을 이용해 찍어난 제1호의 표지인물은 은퇴한 미 하원의장 조지프 캐넌이었습니다.

해마다 타임이 발표하는 그 해의 인물은 모든 언론들의 관심거리입니다. 

당초 ‘올해의 남성(Man of the Year)’이었던 이 코너 이름은 1999년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로 바뀌었습니다. 
그 전까지 여성으로서 타임 표지모델이 되었던 사람은 4명 뿐이었습니다. 영국 에드워드8세가 왕위까지 집어던지게 만들었던 ‘심슨 부인’ 즉 월리스 심슨(36년), 장제스 중국 국민당 주석 부인 쑹메이링(37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2세(52년), 그리고 아시아 민주주의의 기수였던 고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86년)입니다. 

99년 이후에도 여성들은 꽤나 박대했다는 느낌입니다. 2002년 내부고발자들을 다룰 때에 여성이 등장했고 2005년 빌 게이츠 부인 멜린다가 남편 및 가수 보노와 함께 표지에 나온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예외적으로 83년에는 개인용컴퓨터(PC)가 선정돼 ‘올해의 기계(Machine of the Year)’라는 이름이 붙었고, 89년에는 ‘위험에 처한 지구’가 뽑혀 ‘올해의 행성(Planet Of The Year)’으로 변용됐습니다. 99년 마지막호에서 ‘금세기의 인물(Person of the Century)’로 선정된 사람은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늘 영광의 얼굴들만 선정되는 것은 아니고, 아돌프 히틀러나 이오시프 스탈린 같은 독재자·전쟁범죄자들이 표지인물로 등장할 때도 있습니다. 2006년 ‘당신(You)’을 그 해의 인물로 꼽았을 때에는 의미를 놓고 논란이 분분했습니다.


유서깊은 타임도 시대의 변화를 비껴갈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2007년 타임은 주말 독자들을 겨냥하는 쪽으로 전략을 전환, 발행일을 월요일에서 금요일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97년 420만부에 이르렀던 발행부수는 매년 조금씩 줄어 2008년에는 340만부로 축소됐습니다.
현재 영국에서 발행하는 유럽판과 홍콩에서 펴내는 아시아판 등을 내고 있지만 캐나다판은 지난해 경영상의 이유로 없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