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메리카vs아메리카

비운의 아이티

딸기21 2010. 1. 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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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는 미국 캘리포니아 등 북미 서부지역과 함께 ‘산안드레아스’라는 불안정한 지각판 위에 위치하고 있어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이번 지진은 강도가 특히 셌고 여진이 계속되면서 피해가 커졌다.
주민 피해가 컸던 또 하나의 이유는 주거여건이 열악하고 대책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12일 “포르토프랭스를 비롯해 아이티 전역의 주택들은 대개 양철 지붕에 판자를 덧대어 만든 허름한 건물들”이라며 “지진이 일어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아이티에서는 2004년 남부와 북부에 잇달아 홍수가 일어나 총 5000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2008년에는 8~9월 허리케인 4개와 열대성폭풍들이 계속 들이닥쳐 800명 가까운 이들이 숨졌다. 그해 11월에는 학교 건물이 무너져 학생과 교사 등 500명 가량이 희생됐다.
재난이 일어나면 가난한 주민들은 정부에 항의하며 소요와 폭동을 일으키고, 정정불안으로 정부 기능이 마비돼 정치적 실패가 반복되는 악순환이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이웃한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대비다. 아이티는 카리브해에서 두번째로 큰 히스파니올라 섬 서쪽에 있다. 섬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동쪽의 도미니카공화국도 허리케인과 열대성 폭풍 피해를 입지만 아이티의 재난은 유독 극심하다.
전문가들은 아이티의 정치적 실패와 환경파괴 때문에 피해가 커진다고 지적한다. 열대우림을 보전해온 도미니카공화국과 달리 아이티 주민들은 우림을 모두 베어냈고, 그로 인해 해안 침식과 토양 상실이 계속됐다. BBC방송은 “아이티 전체 우림의 2%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같은 폭풍이 닥쳐도 아이티의 피해가 큰 이유다.
이번 지진에서 보듯 정부의 재난 대책이 사실상 전무한데다, 인프라를 확충할 능력도 재원도 없다. 인구의 절반은 문맹이고, 이렇다할 산업이 없어 갱들이 판친다. 국민 대부분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층이다.

아프리카계 해방노예들의 나라인 아이티는 1804년 중남미 최초로 독립했다. 1956년 프랑수아 뒤발리에의 군사쿠데타 이후 20세기 후반까지 아이티는 독재에 시달렸다. ‘파파독’이라 불렸던 뒤발리에는 64년에는 종신대통령이 됐고, 71년 그가 숨지자 아들 ‘베이비독’ 장-클로드 뒤발리에가 열아홉살에 권력을 승계했다. 86년 군중 시위와 군사쿠데타로 베이비독이 국외 탈출한 뒤 2006년 르네 프레발 대통령이 취임하기까지 쿠데타와 정권교체가 되풀이됐다.




90년대 내전에 가까운 충돌이 일어나자 유엔이 평화유지군을 주둔시켜 치안을 맡았다. 2004년 재난 뒤 유엔은 다시 안정화지원단을 보냈다. 약간의 불안요인만 있어도 정권이 흔들리기 때문에 아이티에 사건이 터지면 미국과 국제사회가 나서서 지원해주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유엔 아이티특사로 임명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호소를 받아들여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7월 아이티 전체 부채의 80%에 해당하는 12억달러를 탕감해줬다. 96년에 이어 두번째로 집권한 프레발 정부는 외국이 주는 돈으로, 외국군 도움으로 간신히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