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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외교가 여성 바람, '힐러리 효과'

딸기21 2010. 1. 1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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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넘어 ‘세계의 수도’로 불리는 미 워싱턴, 각국 대사관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매서추세츠 애비뉴의 오만 대사관에서는 아랍권 최초의 여성 주미대사인 후나이나 술탄 알 무가이리가 집무실에 앉아 이슬람권에 대한 편견을 공박하는 연설문을 쓰고 있다. 두어 블록 떨어진 듀폰서클 부근의 인도 대사관에서는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워싱턴에 부임한 여성 대사 미라 샨카르가 집무에 여념이 없다. 이웃한 고풍스런 대사관에서는 남미권 유일한 여성 주미대사인 콜롬비아의 카롤리나 바르코가 의사당에서 열릴 자유무역 박람회 준비에 대해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세계 각국에서 온 내로라하는 외교관들이 불꽃튀는 외교전을 벌이는 워싱턴에 ‘여성 바람’이 드세다. 10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 국무부에 등록된 182명의 대사들 중 25명이 여성이다. 아직도 여전히 남성 중심의 ‘보이클럽(Boy Club)’이긴 하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도 여성 대사가 늘어났다. 1990년대 말에 비하면 5배로 늘었다.
이유는? ‘힐러리 효과’다. 최근 워싱턴에 도착한 모잠비크 대사 아멜리아 마토스 숨바나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때문”이라며 “우리 대통령이 나를 대사로 뽑으면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은 데에는 클린턴 장관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최근 4대에 걸친 미 국무장관 중 3명이 여성이었다. 97년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미 역사상 첫 여성 국무장관이 될 때만 해도 세계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올브라이트의 경우 여성성을 강조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며, 미국 안에서도 자기네 장관을 예외로 치는 분위기가 있었다.
워싱턴 여성대사들 중 최고참인 싱가포르의 헝치찬 대사는 “96년 부임해왔을 때만 해도 다들 대사는 당연히 남자일거라고 생각했고, 회의장의 내 자리에 ‘미스터 앰배서더(Mr.Ambassador)’ 명패를 갖다놓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대사 부인으로 오해받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라고 헝 대사는 전했다.
콜린 파월의 뒤를 이어 조지 W 부시 행정부 2기 국무장관이 된 콘돌리자 라이스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에 많이 밀렸고 외교 수장이라기보다는 ‘부시의 측근’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클린턴은 퍼스트레이디로서나, 대선후보가 되겠다고 나섰을 때나, 국무장관으로서나 여성 외교관들의 역할모델이 되고 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여성 인권 옹호자로 활약했던 클린턴은 현재 국무부 산하 대외기관 수장의 30%를 여성으로 채우고 있다. ‘힐러리 효과’가 나올 만 하다.

물론 여성 대사가 늘어난 데에는 실질적인 이유들도 있다. 25명의 여성 주미대사 중 11명은 아프리카 국가, 4명은 카리브 소국 출신이다. ‘규모’가 좀 되는 나라는 인도, 콜롬비아,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키르기스스탄 정도다. 그외에 민주주의 실험에 들어간 걸프의 소국 바레인과 오만, 인구 1만4000명의 태평양 섬나라 나우루, 도시국가 싱가포르, 1984년에야 여성 투표권을 인정한 유럽의 리히텐슈타인 공국 등이다.
미국 외교소식통들은 미 정가와 국무부 내에 “여성 대사를 임명할 정도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현대화에 나서는 나라로 인정해주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바레인의 후다 에브라힘 노누 대사는 유대인 여성으로서 아랍권에 대한 미국사회의 편견과 싸우고 있다. 아프리카 빈국들은 워싱턴에서 아동·보건·여성·복지분야 원조예산을 얻어낼 일이 많이 때문에 여성 대사가 도움이 된다고 포스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