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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방

딸기21 2010. 1. 12.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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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고고씽휘모리님이 '어린이책방 갈 사람 여기붙어라' 하시는거 보니까 문득 몇년전 생각이 난다. 더불어 아이와의 책읽기 추억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일본에서 놀고 있었다. 1년간 회사를 쉬면서 남편 따라 일본에 가서 딸이랑 놀았다.
딸아이는 만 2세, 우리 나이로는 서너살이 됐지만 엄마인 내가 그 애를 끼고 키운 것은 몇달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육아에 서툴렀고, 더군다나 일본어는 전혀 못했고(할줄 아는 말이라고는 곤니치와 정도), 아이는 할머니 댁에 있다가 엄마랑 잠시 서울에 있다가 일본으로 건너온지라 한국어도 일본어도 제 연령만큼 못하는, 사실은 거의 못하는 수준이었다. 낯선 땅에서 나는 헤맸고 아이도 헤맸고... 나는 우울했고, 아이도 우울했고...

그럴 때 나를 구원(과장 좀 보태서;;)해준 곳은 공원과 도서관이었다.
요요기공원(공짜니까), 카사이린카이공원, 오다이바, 우에노공원, 히비야공원, 센조쿠이케 공원, 요코하마 린카이공원 등등 크고작은 공원들을 돌아다니면서 머리와 마음에서 우울함을 걷어냈고, 전철 타고 돌아다니면서 일어를 공부했다(아이랑 24시간을 같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내 시간이라고는 통 없었다). 도쿄 시티즌인척 폼 좀 잡아보려고 애썼지만 되지 않았던 몇달...
그러다가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의 길을 트면서(외국어가 안 되어도 애엄마들 사이에 수다는 가능하다는 놀라운 사실;;) 기분도 좋아지고 일어도 초큼 늘었다. 나는 동네살이에 익숙해지면서 내가 발견한 곳은 쿠가하라 도서관이라는 작은 동네도서관이었다.
쿠가하라는 내가 살던 아랫동네(가난한 마을) 위편에 있는 잘 사는 마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허위허위 언덕길을 올라 2층 주택들 사이에 자리한 쿠가하라 도서관에 간다. 2층에는 열람실, 1층에는 서가가 있다. 혼자 갈 때에는 2층에서 일어 공부를 하고, 아이랑 같이 갈 때에는 그림책들을 거내 들고 1층 안쪽 어린이방에 가서 아이와 뒹굴거렸다. 물론 나도 책을 잘 못 읽고 아이도 잘 못알아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나만 그랬나? 애는 재미없었을지도;;).
그러고 나서 나는 정치인으로 치면 광폭 행보를 시작했으니... 전철 서너정거장 떨어진 오오타구(아까 그 도서관은 말하자면 洞급 도서관, 여기는 區급 도서관) 문화센터의 도서관으로도 진출했다. 거기서도 아이를 풀어놓고 책을 읽었다. 하루종일 손바닥만한 깡통집에서 아이와 뒹굴어야 하는 내가 숨쉴수 있었던 공간...

돌아온 뒤에, 서울에도 어린이 도서관 혹은 책방들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한번도 가지 못했다. 왜냐? 나는 다시 회사라는 정글로 돌아왔으므로.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이제 딸아이는 초등 3학년을 앞두고 있다. 책 귀신이다. 책 엄청 잘 읽는다. 마법의시간여행 등등에 빠져서 산다.
애가 유치원에 다닐 때에는 책을 읽어줘야 하니 귀찮았는데, 초등학교 들어간 뒤로 거의 읽어주는 일이 없어졌다. 자기 전에 애가 자장가 삼아 간혹 읽어달라 할때도 있었지만 작년부터는 그것도 없어졌다. 그러다가 어제 어린이용 <탄탄 우리문화> 몇권을 뽑아가지고 읽어줬다. <우리 증조할머니>편이 나왔다. 우리 애는 증조할머니(나의 외할머니)가 살아계시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증조할머니를 좋아한다. 책은 옛사람의 한살이를 다룬 것이라 증조할머니의 상엿길로 끝을 맺는다. 아이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왜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읽어주냐고 항의를 한다. 그 다음에는 <애지게 꽃지게>를 읽었고, <앞니 빠진 중강새>를 둘이 번갈아 읽으면서 '라디오 녹음하기' 놀이를 했다.

아이 학교에는 근사한 도서실이 있다. 하지만 이젠 같이 갈 일도 별로 없고... 어린이도서관에 함께 드나드는 것도, 책을 읽어주는 시기도 모두 지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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