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아리스티드, 아이티 대통령 당선

딸기21 2009. 12. 15.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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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 섬은 스페인 정복자들에 점령돼 식민살이를 했던 곳이다. 콜럼버스가 이 섬을 발견했을 당시 섬에는 원주민인 타이노족과 아라와칸족 등이 살고 있었으나 유럽인들이 가져온 질병과 학살로 몰살당했다. 스페인은 이 섬에 아프리카의 흑인노예들을 데려다 일을 시켰다. 이들이 지금의 아이티 국민드의 선조들이다. 나중에는 프랑스가 이 섬을 차지했으나 1804년 독립을 했다.

이로써 아이티는 미주 지역에서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빨리 독립을 쟁취한 나라가 됐다. 세계 최초로 흑인노예들의 혁명에 의해 독립하고 그들이 만든 헌법으로 세워진 흑인 공화국이었던 셈이다. 아이티는 스페인어권 문화 속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나라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세상 어느 나라와도 닮지 않은 나라’라 불리기도 했다.

새출발한 아이티는 20세기 전반기에만 해도 같은 섬의 동쪽 절반을 차지한 도미니카공화국보다 훨씬 빨리 성장과 발전을 이룩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독재정권이 모든 것을 망쳤다. 1957년부터 86년까지 이 나라를 좌지우지한 것은 뒤발리에 가문이었다. 프랑수아 뒤발리에와 그 아들 장클로드 뒤발리에 등으로 이어지는 독재자 가문의 지배 아래에서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부패하고 폐쇄적인 나라가 됐다.

미국은 80년대까지 뒤발리에 정권을 경제적, 군사적으로 밀어줬다. 그러다가 86년 대규모 반 뒤발리에 시위가 일어나자 등떼밀려 지원을 거뒀다. 뒤발리에는 프랑스로 도망치고, 군 지도자인 앙리 남피 장군이 혁명평의회 성격인 국가통치위원회를 이끌었다. 87년 새 헌법이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됐고 총선이 실시됐다. 

몇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1990년 12월 16일 대선에서 아이티 최고의 정치스타가 탄생했다. 가톨릭 사제 출신으로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56)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해방신학자였던 그는 이미 80년대부터 뒤발리에에 반대하는 설교와 연설 등으로 명망을 얻고 있었다. 아리스티드는 유효표의 3분의2를 휩쓸었다.

아리스티드는 이듬해 2월 취임했지만 반년 만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국외로 망명했던 아리스티드는 정정불안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94년 귀국해 1년여 동안 대통령직을 다시 수행했다. 그는 2000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이번엔 그 자신의 무능과 부패 때문에 정권이 흔들렸다. 

2004년 다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그는 두번째로 쫓겨났다. 그를 저버린 미국이 해병대 병력을 시켜 자택에서 끌어내 외국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리스티드는 미국에 납치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옮겨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직도 지구 반대편을 떠돌며 아이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2006년 다시 선거가 치러져 르네 프레발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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