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자유의 시인, 엘뤼아르 숨지다

딸기21 2009. 11. 1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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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불을 만들었다/동지가 되기 위한 불/겨울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불을.”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사람인 폴 엘뤼아르는 사랑과 열정의 시인, 그리고 ‘정치적인 시인’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평을 듣는다. 엘뤼아르는 1895년 파리 북쪽  생드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외젠 에밀 폴 그랭델. 태어난 곳은 노동자 거주지역이었으나 엘뤼아르 자신은 회계사 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라났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폐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했고 스위스의 산골마을 다보스에서 요양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소년의 영혼에 시적 감수성이 새겨진 것은 1911~13년 요양소에서였다.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등 프랑스의 시인들과 휘트먼을 비롯한 미국 시인들의 시에 자극받아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 그 때였다.

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또다른 만남도 이 때 이뤄졌다. 훗날 그의 아내가 된, ‘갈라’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러시아 소녀 엘레나 디아코노바를 만난 것이다. 엘뤼아르는 17년 갈라와 결혼했지만 지인인 스페인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아내가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4년 엘뤼아르는 결국 아내와 헤어졌다. 폐결핵이라는 또다른 시련이 그를 괴롭히고 있을 때였다. 이 시기 엘뤼아르의 시에는 정신적·육체적인 고통,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생겨난 전쟁에 대한 혐오감과 평화에 대한 갈망이 드러난다. 야전병원에서 접한 전쟁의 참상을 그린 <평화를 위한 시> 등이 그것이다.

초현실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엘뤼아르의 전반기 시 세계는 <모든 사람의 장미>라는 시집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30년대 중반 이후의 그의 시 세계는 더욱 정치적으로 변한다. 평화, 정의, 자유, 연대가 그의 시를 관통하는 테마가 된 것이다. 34년 그는 영혼의 동반자였던 마리아 벤즈를 만나 결혼했다. 

뉘쉬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두번째 부인은 엘뤼아르에게 풍부한 영감과 인간애를 불어넣어 주었지만, 갈라와 마찬가지로 입체파 화가로 명성을 얻고 있던 파블로 피카소와 염문을 뿌렸다. 뉘쉬와의 결혼생활은 46년 뉘쉬가 갑자기 쓰러져 숨지면서 12년만에 끝났다.

36년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엘뤼아르는 공화파에 대한 연대를 선언하고 자유에 대한 의지를 고취시키는 시들을 발표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한 뒤에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시적 표현을 넘어 스스로 정치운동에 뛰어들었다. 전체주의에 맞서는 레지스탕스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작가 단체의 책임자가 돼 비밀출판물을 간행하는 문화운동을 주도했다. 42년에는 영국의 항공편대가 그의 시집 <시와 진실>을 독일 점령치하 프랑스에 뿌리기도 했다. 이 시집의 맨 첫머리에 실린 ‘자유’는 지금도 자유와 평화와 연대를 갈구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사라지지 않는 울림을 전한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피 묻은 돌, 휴지, 재 위에/병사들의 총칼 위에/제왕들의 왕관 위에/나는 쓴다, 너의 이름을/오, 자유여!”

엘뤼아르는 52년 11월 18일 과로와 협심증으로 숨을 거뒀고, 그의 주검은 많은 지식인들의 애도 속에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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