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14년 전 이츠하크 라빈 암살

딸기21 2009. 11. 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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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집권한 이스라엘의 우파 리쿠드당은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부정하고 폭력적 해법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그렇게 비난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치조직 하마스나 다를 바 없다. 이스라엘 극우파의 위험성은 이슬람 무장조직의 위험성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유대 극우파 테러’도 그 못잖게 무섭다.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 14년 전 오늘 일어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인들이건, 이스라엘 외부에 사는 ‘디아스포라(이산)’ 유대인들이건 1995년 11월 4일의 비극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카흐네차이로 알려진 유대 극우파 집단에 소속된 이갈 아미르라는 청년이 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한 라빈 총리를 죽였다. 

총탄 세 발과 함께 모처럼 만들어진 해빙 분위기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 해법도 산산이 무너졌다. 가디언은 최근 기사에서 당시의 사건을 “이스라엘의 JFK(존 F 케네디) 사건”이라 부르며 “중동 평화협상을 궤도에서 이탈시켰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치구조도 동시에 왜곡시켰다”고 평가했다.

라빈은 이스라엘 건국 이전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정착지에서 태어났다. ‘팔마츠 유대인부대’에 입대하는 것으로 군 경력을 시작, 48년 독립전쟁에 참전해 이집트 전선에서 싸웠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무단 점령의 계기가 된 67년 ‘6일전쟁’에서도 공훈을 세웠다. 

74년에는 이스라엘 ‘본토 태생’으로서는 처음으로 총리에 오른, 현대 이스라엘의 역사 그 자체를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그는 92년 다시 총리에 복귀했으며 이듬해 오슬러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94년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등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대화에 나선 순간부터 이스라엘 안에는 그의 적들이 득실거리기 시작했다. 라빈 암살은 철없는 테러범 한 명의 소행이 아니었다. 리쿠드당의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를 비롯, 많은 이들이 예루살렘의 시온광장에 모여 “라빈은 배신자”를 외쳤다. 레우벤 리블린 크네셋(의회) 의장은 최근 이스라엘 라디오방송에 나와 “당시 라빈에 반대한 것은 네타냐후만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몇년 째 코마상태인 아리엘 샤론 전총리, 지금은 중도파 카디마당에 소속된 에후드 올메르트 전총리 등 여러 정치인들이 라빈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지난달말부터 시온광장에서는 라빈 추모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의 정권을 장악한 것은 라빈의 적이었던 네타냐후와 리쿠드당이다. 

이스라엘 경찰은 1일 아랍계 주민들을 마구 죽이고 폭탄테러를 저지른 이스라엘인 잭 테이틀을 체포했다. 테이틀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무단점령하고 설치한 이른바 ‘유대인 정착촌’에 살면서 주변 아랍계 주민들을 살해하는 ‘증오범죄’를 저질렀다. 네타냐후 정부는 국제사회의 지탄 속에서도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라빈의 죽음 이후 14년이 지났지만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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