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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테러전 '뒤처리' 떠맡은 오바마

딸기21 2009. 11. 1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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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래 지난 8년여 동안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지구상 곳곳에서 수많은 이들을 잡아 가뒀다.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와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기지 수용소 등에 미국이 잡아들인 ‘테러용의자’들이 갇혀 있다.
법적 근거도 없이, 재판도 없이 몇년째 갇혀있는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버락 오바마 정부는 고민에 빠져있다. 한쪽에서는 정당한 법절차에 따라 재판하거나 석방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또다른 쪽에서는 “테러범을 미국으로 데려와도 안되고 풀어줘서도 안된다”는 주장을 고집한다. 대테러전 뒤처리를 둘러싸고 미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아프간 주둔 미군이 카불 근처 바그람 공군기지에 새로 세운 테러용의자 수용소를 15일 언론에 공개했다. /AFP


바그람의 새 수용소

미군은 15일 아프간 카불 부근 바그람 공군기지에 세운 새 테러용의자 수용소를 미국 언론들에 공개했다. 6000만 달러를 들여 새로 지었다는 이 시설에는 104개의 감방과 학습실, 텃밭 따위가 조성돼 있으며 최대 114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미군은 바그람기지의 기존 수용소에 수감중인 700여명을 이달말부터 순차적으로 새 구금시설에 이감할 계획이다.
2001년10월 전쟁을 시작한 이래 바그람의 수용소는 ‘숨겨진 감옥’으로 운영돼왔다. 미 정부나 민간단체의 감시도, 아프간 정부의 관여도 사실상 금지된채 운영되다가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파문이 불거진 뒤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미군은 아프간·파키스탄 일대에서 체포한 알카에다·탈레반 조직원들과 테러용의자들을 이 곳에 가두고 있으나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구금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비판이 거셌다. 15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현재 바그람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 중 아프간 국적자 30명을 뺀 나머지 모두는 기소도 없이 몇달~몇년 째 구금돼 있다.
미군은 “아프간 정부의 테러범 관리능력을 믿을 수 없다”면서 미군 수용소 수감을 고집하고 있으나, 휴먼라이츠워치 등 인권단체들은 “미군의 테러용의자 관리 또한 문제투성이”라 지적한다. 미군은 테러용의자를 체포하면 14일 이내에 구금 사유를 통지해주고 60일 이내에 군장교 3명으로 이뤄진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계속 구금할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심사 이후의 처리에 대해선 정해진 절차도 없고, 모든 결정이 자의적으로 이뤄진다. 바그람에서 풀려난 이들을 통해 미군의 수감자 학대가 폭로되기도 했다. 미군은 새 수용소에 면회실을 설치하고 의료진의 접근도 허용하겠다고 했으나 인권단체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오바마 대통령이 책임지고 아프간 수감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9·11 용의자 재판 논란

9·11 뉴욕테러를 모의했다고 자백한 테러용의자 칼리드 셰이크 모하마드 등 관타나모 수감자 5명이 미국 뉴욕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앞서 미 대법원은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특별군사법정에서 재판하게 한 것은 법적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고심 끝에 결국 법무부가 ‘뉴욕 민간법정 재판’ 결정을 내린 것은 지난 13일이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자신들이 범행을 일으킨 뉴욕 세계무역센터(WTO) 붕괴현장 부근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라며 “8년만에야 그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타당한 결정이지만, 테러용의자에 대해 심리적 거부감을 보이는 미국인들과 공화당 보수파가 들고일어나면서 미국 내에서 큰 논란이 벌어졌다. 인권단체들과 민주당은 “이제야 수감자 처리가 제 궤도를 찾게 됐다”며 반겼다. 하지만 공화당 소속의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15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적 전투원인 그들을 시민으로 대우해서는 안된다”며 반대했다. 공화당 부통령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은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인들을 위협하는 말도안되는 짓”이라고 맹비난했다.

관타나모 수감자는 어디로

얼마전 미국은 관타나모의 위구르인 수감자들을 카리브해의 버뮤다와 태평양 섬나라 팔라우에 보내는 ‘편법 석방’을 했다. 하지만 아직도 관타나모에는 215명의 수감자들이 있고, 당국은 이들을 순차적으로 미국 본토 내 교도소들에 이송해 재판에 부칠 계획이다. 로이터통신은 15일 “법무부 관리들이 일리노이주 매디슨의 톰슨교정센터에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이송하기 위한 실무준비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당국은 현재 거의 비어있는 톰슨센터를 개조, 관타나모 수감자 중 우선 100명 가까이를 옮겨올 계획이다. 당국은 이감시설을 찾지 못해 애를 먹다가 시카고에서 240㎞ 떨어진 이 교정센터를 찾아냈다. 경제난에 시달리던 매디슨 시 측은 수감시설을 내주고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일자리를 늘리려 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관타나모 수감자들이 ‘유치’의 대상이 되는 웃지못할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첫 조치로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명령에 서명하면서 전임 행정부와의 차별성을 선언했다. 그러나 올해 안에 마무리짓겠다던 수용소 폐쇄는 점점 늦춰지고 있다. 워싱턴연방법원의 글래디스 케슬러 판사는 15일 “관타나모 수감자 중 테러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30명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즉각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일리노이주 매디슨의 톰슨교정센터. 이 곳이 관타나모 수감자들의 새 감방이 될 거라고 한다. /AP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 남부 바스라 부근, 쿠웨이트 접경지대의 캠프 부카 수용소의 철조망 옆을 지나고 있다.
 미군은 이 곳에 지난 6년간 연인원 10만명 이상을 수용했다. 그 결과 이 수용소는
알카에다 테러범 양성소가 되고 말았다. / 2008년5월, AFP 자료사진.


포로학대 사진공개 금지

2004년 공개된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포로학대 사진들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2007년 호주의 한 TV방송이 당시 드러나지 않았던 학대 사진들을 공개한 뒤, 미공개 사진들이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인권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지난 4월 미 연방정부를 상대로 사진 공개청구소송을 내 승소했다.
하지만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14일 이라크·아프간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저질러진 수감자 학대사진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연방법원 명령을 따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법원 판결 뒤인 지난 5월 정부 정보공개대상에서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한 국토안보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오바마 정부와 게이츠장관의 ‘미군 편들기’와 사진 숨기기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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