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임페리얼 컬리지의 앤드루 조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면역학 연구동향'이라는 전문지 7월호에 내놓은 논문 내용.
(논문을 다 읽은 것은 물론 아니고, 미 생명공학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생명공학의 최근 연구동향을 쉽게 훑어볼 수 있다. 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권해주고 싶은 홈페이지다. 업계 소식도 아주 잘 나와 있다. 뉴욕타임스나 BBC같은 보통의 언론들보다 하루이틀씩 빨리 소식이 실린다.)
인간게놈지도가 작년에 만들어졌는데, 첫째 리처드 르원틴 같은 사람이 '20년 가도 다 못 할 것'이라고 악담(?)했던 작업이 10년만에 끝나버렸다는 것, 둘째, 인간의 유전자 숫자가 생각보다 적었다는 것. 10만개는 될 줄 알았는데 기껏 3만개(아직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밖에 안 된다는 것에 숱한 과학자들이 자존심 상해 하지 않았나 싶다.
이토록 복잡한 육체적 정신적 기능을 갖춘 인간의 유전자 숫자가 Arabidopsis thaliana(애기장대)보다 그저 조금 많고, Oryza sativa, 다시 말해 쌀보다는 외려 적다는 거 아닌가.
잠시 애기장대 얘기를 하자면, 얘는 쌀이나 옥수수의 사촌 쯤 된다. 작년에 우리나라의 어느 교수가 세계에서 과학논문으로 따져서 논문 인용이 제일 많이 됐다고 뉴스에 나왔는데 언론들이 그 '해석'을 제대로 못 했다.
애기장대라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풀에 대한 논문이 왜 그렇게 많이 인용됐냐고? 애기장대는 말하자면...음, 동물에 과실파리가 있다면 식물에는 애기장대가 있다고나 할까, 여튼 식물 중에 최초로 유전자지도가 그려진 놈이라고 보면 된다.
옥수수나 쌀같은 세계적인 주요 곡물들의 유전자는 이 애기장대와 98%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애기장대 유전자 지도는 대단히 중요하게 평가됐고(쌀이건 옥수수건 유전자 조작하고 무기로 만들고 뭣이든 하려면 일단 유전자 구조를 알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임페리얼 컬리지 연구팀이 주장하는 바는 이거다. 왜 인간의 유전자 숫자가 생각보다 이렇게 적은가?
과학자들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인간의 면역체계'에서 찾았다.
면역체계는 우리 몸을 질병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장치다. 그런데 이 면역이라는 것은 특수한 것에 대해서보다는 일반적인 것에 대해 기능을 발휘할 때 더욱 효과적이다. 쉽게 말해, A라는 균에 대해서만 면역기능이 발휘되는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보다는 A와 유사한 A1, A2, AA, AA1 등 다양한 놈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전자를 갖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면역체계는 따라서 우리 인체의 특수한 조직이나 세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작용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사실 이 면역체계의 작동에 대해 복잡계 연구자들은 경탄을 금치 못한다. 이 얼마나 복잡오묘한 인체의 신비인가-숱한 질병과 외부 환경의 공격에 어찌어찌 알아서 적응하고, 치유해나간다니.
여튼 인체는 특수기능을 갖춘 버튼 여러개를 갖는 대신, 여러가지 기능을 갖춘 면역체계라는 단일버튼을 택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물론 그렇게 '단언'을 한 것은 아니고, '제안' 혹은 '가설' 정도로 의견을 피력했다고 봐야겠지만.
연구팀의 지적대로, 만일 인간이 호환성 높은 면역체계와 숱하게 많은 유전자를 욕심사납게 모두 가지려고 했다면 인체의 많은 부분은 저 무차별적인 면역체계의 역공격을 받아 스스로 파괴되고 말았을 것이다. 무차별의 기능은 때론 엄청 효과적이면서 또 무지막지하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진화는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게놈 숫자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면역체계는 우리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동시에, 우리의 변신을 막고 있는 것이다(단순무식한 딸기的 해석).
아 정말 미치겠네. 실은 이런 아리까리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었고, 월드컵 끝난 뒤 심리적 박탈감과 공허감과 허탈함과 상실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던 거였다.
어제는 노는 날(실은 나, 어제 새벽에 출근 하려고 아지님 차에까지 올라탔다가 노는 날임을 깨닫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이라서 집에서 테레비를 껴안고 살았다. 정말 하루 종일, 아무 채널이나 틀면 월드컵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봐도봐도 재미있는 걸 어떡해...
낮 동안에는 쓰잘데 없는 잡탕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밤이 되면서부터 조근조근 분석한 다큐형태의 프로들이 선을 보였다. KBS에서 방영한 히딩크 다큐는 입국 이래 월드컵 4강 까지 히딩크의 궤적은 물론, 선수들의 훈련 내용과 구체적인 전술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줘서 아주 좋았다.
SBS에서 11시 무렵부터 방송한 환희와 좌절 어쩌구 하는 프로그램은 선수들을 자세히 조명해줘서 대단히 몹시 좋았다. 좋아하는 바티에 대해 설명을 많이 안 하고 날라리 베컴을 더 많이 보여줘서 조금 열받긴 했지만. 페널티 한개 넣어놓고 미친 듯 발광하는 플레이어(D.B.), 10-0-0 으로 똘똘 뭉쳐 1시간 동안 수비만 하는 팀은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바티가 AS로마에서 짤릴 것 같다고 어떤 넘들이 그런다...부진+노쇠화를 이유로 들면서...)
아무래도 내 면역체계가 고장난 모양이다. 월드컵이라는 엄청난 병균을 효과적으로 막기는 커녕(막긴 왜 막아?) 자발적으로 다이빙을 해 놓고 무슨 딴소리냐면...후유증이 넘 크기 때문이다. 오늘 1시반부터 재미난 경기들 압박방송 해준다는데 그거 봐야지, 어제 보던 특집프로그램들 2부 또 봐야지, 어떻게 하면 이 열기를 장기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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