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20년 전 11/9

딸기21 2009. 10. 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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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계를 뒤흔든 대사건을 의미하는 숫자로 ‘9·11’이 더 유명해졌지만 2001년 이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세기를 규정하는 대사건을 가리키는 것은 ‘11·9’였다. 1989년 11월 9일,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 대통령의 개혁·개방이 가져온 파급효과가 통제 불능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반세기 동안 냉전의 두 진영을 가르던 장벽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무너져 내릴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 후 20년, 베를린 장벽 붕괴 뒤 세계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다. 독일인들은 통일과 함께 찾아온 사회·정치적 격변을 지혜롭게 넘겼다. 하지만 동유럽에서는 성공적으로 자본주의에 안착한 나라들과 내전의 혼돈을 겪은 나라들 간 운명이 엇갈렸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과 미국에서는 다음달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앞두고 냉전의 종식과 장벽 붕괴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들이 한창이다.


# 독일은 축제 분위기

지난 9일 옛 동독 지역에 위치한 유서깊은 도시 라이프치히에서는 89년 ‘역사적인 촛불 시위’를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다. 인구 50만명인 이 도시의 중심가에 무려 7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동독의 민주화와 동·서독 통일의 시발점이 된 촛불 시위를 재연했다.




20년 전 라이프치히 시청 앞 광장과 칼마르크스 광장에서는 10월 9일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월요일마다 민주 선거와 자유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 행진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수백명에 불과했던 참가자들이 순식간에 10만명, 30만명으로 불어났다. “우리가 민중이다”라는 구호를 내건 시민들의 행진은 동독 정부에는 엄청난 압력이 됐으며, 라이프치히 시민들은 통일 독일을 앞당긴 영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번 기념식은 동독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통일 독일의 수장이 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한 가운데에 열려 격세지감을 실감케 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메르켈 총리와 함께 기념식에 참석한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은 “20년 전 이날 라이프치히의 시민들은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음을, 권력은 민중에게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치하했다.

앞서 1일에는 체코 프라하의 중앙역에 공산주의 시절의 기차 한 대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동독 난민들을 서독으로 실어날랐던 기차였다. 89년 8월 동독인 수만명이 동베를린의 서독 대사관과 옛 체코슬로바키아 대사관, 그리고 헝가리 대사관 등에 망명을 신청하며 동독에 대한 거부의사를 표현했다.




그 해 9월 11일 헝가리가 서부 국경을 개방하자 동독인들은 헝가리로 넘어가 서유럽으로 빠져나갔고, 체코 등지를 통해서도 동독인들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이어졌다. 프라하의 철도역도 동독인들의 망명 길목 중 하나였다. 옛 서독 외무장관 한스-디트리히 겐셔는 동독 정부와 협상을 해 89년 9월 30일 동독인 5000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이번에 프라하에 다시 나타난 기차는 당시 난민을 실어날랐던 바로 그 열차였다.

# ‘장벽 도미노’ 재연

4일에는 베를린 광장에 15m 높이의 거대한 잠수부가 등장했다. 독일 통일 기념일에 맞춘 길거리 연극에 쓰일 초대형 인형이다. 브란덴부르크 문과 라이히슈타크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요즘 스티로폼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뒤이은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 도미노를 재현할 ‘도미노악숀(Dominoaktion)’이라는 이벤트를 위한 것이다. 도미노 모양으로 세워져 11월 9일 무너질 이 장벽은 30㎝ 두께에 폭 1m, 높이 2.5m로 이뤄진다.



1961년, 장벽을 세우는 동독 군인들과 노동자들


주최측은 거리의 시민들에게 페인트를 주고 1000개가 넘는 블록에 직접 평화와 화합을 갈망하는 그림들을 그리도록 했다. 아직도 남북으로 분단된 채인 한반도의 통일, 이슬람권과 기독교 두 문명권의 화해 등을 기원한 그림들이 블록을 메웠다. 행사를 주관한 모리츠 반 뒬멘은 “11월 초에 벽돌을 조립해 세운 뒤 도미노처럼 무너뜨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의 경우 15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베를린에 남아있는 냉전 시대의 벙커와 지하땅굴 등을 관람했다. 올해에는 관광객이 몇배로 늘어날 것으로 시 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유럽 곳곳에서는 벌써부터 기념축제들을 앞두고 베를린 장벽을 ‘순례’하는 여행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장벽은 무너졌지만 베를린 일부 구간에는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유적으로 남겨져 있다. 특히 최근에는 20주년을 앞두고 160㎞에 이르는 동·서독 간 장벽 자리를 따라 여행하는 자전거 코스가 개통돼 인기를 끌고 있다. 옛 검문소들이 있던 자리 14곳에는 장벽 순례객들을 위한 기념 포스트들이 세워졌다.


동서 베를린을 갈라놓는 상징적인 장소였던 '찰리 검문소'


1989년 11월 10일, 동독 측의 개방조치에 따라 '갑자기 열린' 찰리 검문소로 동독인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1989년 12월, 크레인으로 장벽을 부수고 있다.



지금은 베를린 통일센터로 변모한 포츠다머 플라츠에서 시작해 베르나워 스트라세에 이르면 남아있는 장벽의 안팎을 구경할 수 있고, 곳곳에서 펼쳐지는 사진전 등도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장벽 붕괴의 생생한 현장이던 ‘찰리 검문소(Checkpoint Charlie)는 어디 숨어있는지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20년전 서베를린 시민들은 장벽의 찰리 검문소 앞에 몰려가 “문을 열라” 소리를 지르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국경 문이 진짜로 열리는 ‘믿기 힘든 기적’이 벌어졌고, 순식간에 장벽은 무너졌다.
냉전 당시 ‘자유 진영’을 이끌었던 미국에서도 축하 분위기가 한창이다. 로스앤젤레스(LA)의 윌셔에는 아예 베를린 장벽이 실물 그대로 옮겨졌다. 가짜가 아니라 진짜 장벽이다. 베를린 장벽 12m 길이의 블럭을 잘라 미국으로 옮겨 다시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LA타임스는 “독일 외에서의 실물 장벽 전시로는 최대 규모”라고 보도했다.

# 오바마에 섭섭한 독일

고르바초프와 짝을 이뤄 냉전 붕괴를 이끌어낸 것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 벤추라카운티에 있는 ‘로널드 레이건 도서관’을 중심으로 장벽 붕괴의 의미를 되새기는 학술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도서관 측은 붕괴 기념일을 전후해 장벽 관련 전시회와 대규모 심포지엄 등을 개최할 계획이다. 또 가짜 장벽을 세워놓고 학생들이 직접 무너뜨릴 수 있도록 하는 행사도 마련하기로 했다.
미국 신문들은 20년 전의 기사들을 인터넷판에 다시 게재하며 장벽 붕괴 전후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소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공개한 89년 10월 19일의 기사는 “동독의 지도자가 교체됐다”는 것이었다. 철권을 휘둘렀던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당 정치국 내분 끝에 물러났고 에곤 크렌츠가 뒤를 이었다. 지난 6월 호네커가 애용했다는 동독 공산당 간부들의 전용 비행기는 민간 사업자에게 팔려나가 이색 호텔로 탈바꿈했다.



베를린 포츠다머 플라츠에 세워진 장벽의 한 조각



11월 9일 베를린에서 열릴 공식 기념행사에는 고르바초프 옛소련 대통령, 사회주의 붕괴를 앞당긴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등 왕년의 국제무대 유명인사들이 총출동할 예정이다. 하지만 독일인들이 가장 기다리던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로이터통신 등이 워싱턴과 베를린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오바마는 11월 11일부터 아시아 순방을 시작, 독일 방문에는 일정상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베를린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 대선 전 오바마의 방문에 대거 거리로 나와 환영해줬던 베를린 시민들은 섭섭한 표정이 역력하다. 오바마는 취임 뒤 지난 6월 잠깐 동안 드레스덴 방문하긴 했지만 베를린을 공식 방문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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