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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올퀴스트는 지난해 9월초까지만 해도 미국 뉴욕의 금융회사에 다니던 샐러리맨이었다. 올퀴스트는 지난해 9월9일 리먼브러더스에서 해고당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나 잘렸어”라고 말하던 순간이 어제 일처럼 아직도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해고 통지를 받고 일주일도 못 가, 평생 직장이던 회사도 무너졌다.
뉴욕발 금융위기 이후 1년. 글로벌 경제에 연결돼 있던 모든 이들이 그 충격에 흔들렸지만 특히 월가 사람들은 ‘세상이 한번에 뒤집어지는’ 고통을 맛봤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14일 올퀴스트처럼 1년 전 ‘리먼 사태’로 인생이 바뀐 이들의 삶을 소개했다.
올퀴스트는 월가의 큰손들처럼 부자는 아니었지만 리먼에서 일하는 동안 제법 괜찮은 집에서, ‘월가의 표준에 가까운’ 수준으로 살았다. 그러나 일자리와 함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은행 저금도 다 꺼내썼다. 나이가 들어 회사를 그만두면 고등학교 농구코치를 할 계획이었지만, 예정에 없던 실직 탓에 노년의 꿈마저 잃었다. 올퀴스트는 요즘 이곳저곳 금융회사들을 돌아다니며 채권파는 일을 하고 있다.
레슬리 겔버는 리먼이 파산할 때까지도 회사에 적을 두고 있었다. 트레이더로 잔뼈가 굵은 겔버는 2007년 시작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파문으로 잇달아 감원하는 동안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22명이던 직원이 10개월 동안 10명으로 줄었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회사의 위기도 여러번 겪었고 부서의 위기도 여러번 넘긴 차였다. 그래서 회사는, 나만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회사는 무너졌다. 그는 1년 동안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여전히 실직 상태다. 아는 이 없는 뉴욕을 떠나고픈 마음도 있지만 차마 아직 떠나지 못한 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놀고 있을 수 없어 자원봉사라도 하려 애쓰지만 병원이나 도서관에서도 ‘자원봉사자가 너무 많다’며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사가 아예 끝장 나는 꼴을 보지 않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뒤인 2008년 초 리먼에서 나간 켄 린튼은 오히려 처지가 낫다. 갖고 있던 리먼 주식을 해고 뒤 곧바로 팔아버린 것이 그에게는 새옹지마가 된 것. 리먼의 주택담보대출 부문 관리인이었던 그는 지금 취미삼아 개인용 제트기를 몰며 소일한다.
켄튼은 “파산 몇년 전부터 분위기가 이상했다”며 “경영진은 갈수록 완고해졌고 나중에는 고위 간부들조차도 사측의 행태에 이견을 제시할 수 없게 만드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리먼에서 채권거래를 담당했던 로런스 맥도널드도 13일 AFP 인터뷰에서 “경영진이 단기 수익에 집착해, 지나치게 위험한 투자를 고집했다”면서 실패의 원인을 회고했다. 그는 “경영진은 거대한 빙산이 앞에 있는데도 시속 수백㎞로 돌진하려고만 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판개아 투자회사의 간부로 일하고 있는 맥도널드는 지난 7월 <상식의 실패:리먼 붕괴의 속사정>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수많은 직원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회사를 파산시킨 리먼의 전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풀드는 아직도 금융계를 떠나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직원 3명을 데리고 ‘매트릭스 어드바이저스’라는 금융컨설팅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투자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갖 소송에 휘말려 있어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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