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폴란드 계엄령 해제

딸기21 2009. 7. 22.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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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노동운동 무력탄압도 끝내 힘잃어

세계를 뒤흔든 오일쇼크는 1970년대 세계 각국의 경제를 요동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부침도 가져왔다. 동유럽 폴란드도 그런 나라 중 하나였다.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물가가 치솟고 경제가 흔들리자 생활고에 부딪힌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80년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자 정부는 노동자들의 힘에 밀려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 ‘연대’를 승인하고 쟁의권을 인정하는 당근을 내주었다.

이듬해 38세의 바웬사는 연대노조의 힘을 결집시켜 또 한 차례 전국적인 파업을 일으켜 집권자인 스타니스와프 카니아 통일노동자당 서기를 물러나게 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뒤이어 서기가 된 군 참모총장 출신의 보이치에스 야루젤스키는 노동자들의 반발에 계엄령으로 맞섰고 대대적인 탄압정책을 펼쳤다.

바웬사를 비롯한 노조지도자들과 반체제 지식인 등 5000여명이 구금됐고 합법화됐던 노동운동도 모두 지하로 숨어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무력 탄압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82년 5월과 8월 계엄령 아래에서도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으며, 해외 체류 중인 외교관들까지 대거 국외로 망명하는 일들이 잇따랐다. 정부는 그해 10월 노조들을 다시 불법화했으나, 노동자들의 계속되는 반발과 국외의 압력에 밀려 83년 7월22일 결국 계엄을 해제했다. 계엄에서 해제로 이어진 폴란드의 상황은 노동자들의 나라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노조 운동을 탄압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막았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허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계엄이 풀린 뒤에도 정부는 노조활동을 극도로 탄압했다. 하지만 계엄 기간 실시된 서방의 강도 높은 제재로 경제는 수렁에 빠졌고, 노동자들의 반발은 물밑에서 계속 끓어오르고 있었다. 정부는 87년 형식뿐인 정치·경제 개혁 법안을 만들어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부결돼 위신만 떨어졌다.

88년 여름 산업의 중심인 광산지대에서 다시 파업이 시작돼 전국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바웬사와 타협에 나서 다시 자유노조 활동을 합법화했다. 이어진 이듬해 총선거에서 자유노조는 최대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야루젤스키는 89년 실권 없는 대통령으로 내려앉았고, 노조 운동을 지도했던 토마초프 마조비에츠키가 이끄는 전후 최초의 비공산 연립정부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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