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 아직 감염 의심환자가 없는데도 29일 정부가 전국에서 사육중인 돼지 35만 마리 중 30만 마리를 살처분하라고 지시했다. 이슬람국가인 이집트에서 돼지를 먹는 사람들은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기독교 소수파들이다. 양돈 농가들은 살처분 명령에 크게 반발, 카이로 보건부 청사 앞에서 돌을 던지며 거센 항의 시위를 벌였다.
멕시코 돼지 인플루엔자 발생 이래 살처분을 지시한 나라는 이집트가 처음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조치의 실효에 의문을 표한다. AI를 일으킨 H5N1 바이러스는 주로 새에게서 사람들에게로 전염됐기 때문에 새와의 접촉을 막는 살처분이 효과가 있었지만 이번 변종 H1N1바이러스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옮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딕 톰슨 세계보건기구(WHO) 대변인은 “이번 전염병이 돼지에게서 나왔다는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최소한 아직까지 돼지는 ‘무죄’라는 얘기다. 전염병이 먹거리에서 시작됐다는 근거도 없다.
그럼에도 마케도니아가 이날 ‘모든 살아있는 돼지’의 수입을 금지한 것을 비롯해, 멕시코·미국남부산 돼지 수입을 제한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중국·러시아·우크라이나 등 15개국이 돼지 수입 제한을 결정했다. 발병 근원지인 멕시코에서는 대표 음식인 타코의 거리 판매가 금지됐다.
감염자 5명이 확인된 영국의 보건부는 독감예방용 마스크 3200만개를 준비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스페인, 호주, 대만도 마스크를 비축하고 있다. 하지만 BBC방송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마스크로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멕시코에서는 독감예방용 마스크를 쓴 강도들이 은행을 터는 웃지못할 일도 일어났다.
한국, 일본, 그리스, 터키는 공항에서 열감지 카메라로 승객들을 체크하고 있으나 소용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3년 아시아를 떨게했던 사스는 발열 등 증상을 일으키는 발병 환자들을 통해 전파됐기 때문에 열감지 검사나 여행금지 조치가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돼지 인플루엔자는 감염됐지만 발병하지는 않은 보균자들을 통해서도 확산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공항에서의 검색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멕시코, 레바논, 필리핀 정부는 전통적인 키스 인사나 끌어안는 인사를 하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당부했다. 신체접촉을 줄이는 것이 인플루엔자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WHO 톰슨 대변인은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므로 나라별로 형편에 맞는 대응법을 찾는 것이 효과적일 수는 있다”면서도 키스금지의 효과에 대해서는 말을 피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9일 “13만2000개 학교의 휴교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현재 100여개교에 휴교령을 내린 상태다. 학교를 폐쇄하는 것을 포함해 다중이 모이는 자리를 줄이는 것은 인플루엔자를 막는 데에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염병학자들이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이라고 부르는 예방법이다.
홍콩 정부는 사스 때처럼 이번에도 대대적인 청결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가브리엘 렁 보건장관은 “공공장소의 감염원을 없애는 데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사스 때 한차례 ‘전염병 예방 훈련’을 해본 홍콩 기업들은 직원들이 2시간마다 손을 씻게 하고 있다.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은 멕시코를 오가는 모든 비행기에 의사를 탑승시키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일단은 이런 실용적인 조치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노르웨이·필리핀·잠비아·덴마크·뉴질랜드 정부는 ‘팬데믹(광역 전염병) 위원회’나 태스크포스(TF)팀을 설치했다.
독일의 보건학자 외르크 하커는 AP 인터뷰에서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변종 바이러스의 움직임을 최대한 빨리,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라며 “모든 바이러스는 제각각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이번 바이러스에 맞는 효율적인 대처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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