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딸기21 2009. 4. 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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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흡혈귀처럼 사람들의 기술과 돈을 빨아들이는 한,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금이나 에너지를 결코 투자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전쟁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전쟁은 가난한 사람들의 아들, 형제, 남편들을 전쟁터로 보내 싸우다 죽게 하는 행위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잔인하게 조종당하는 현실 앞에서 도저히 침묵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4월4일,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왜 미국인들은 베트남전쟁에 반대해야 하는가’를 밝히는 연설을 한다. ‘베트남을 넘어서- 침묵을 깨야 하는 때(Beyond Vietnam- A Time to Break Silence)’라는 제목의 이 연설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과 함께 킹 목사의 가장 유명한 연설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전쟁이 선량한 시민들을 전선으로 내몰고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약속을 무위로 돌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침묵은 곧 배반을 의미한다”며 시민권투쟁에 참여했던 이들이 침묵을 깨고 양심에 따라 반전의 목소리를 내야할 때라고 주장했다.

 

“힘없는 이들, 발언권이 없는 이들, 미국에 의해 희생된 이들, 우리 나라가 ‘적’으로 규정한 이들, 하지만 어떤 문헌에도 우리의 형제가 아니라고 적혀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저는 이 곳에 왔습니다.”

 

연설은 킹 목사가 생각했던 ‘인권’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남과 나를 구분하고 적과 우리의 차등을 두는 것은 진정한 시민의 자세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평화와 인권은 미국인들, 미국의 흑인들과 빈민들, 가난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 베트남인들을 죽여야 하는 미국의 군인들, 그리고 ‘미국의 적’이 되어 공격받는 베트남인들까지도 끌어안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노벨 평화상 수상자였던 킹 목사에게 지지를 보냈던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전쟁에 반대하자”는 주장에는 등을 돌렸다. 백인 자유주의자들, 심지어 흑인 유명인사들 중에서도 애국주의를 내세워 킹 목사를 외면했다.

 

공교롭게도, ‘베트남을 넘어서’ 연설을 한 지 꼭 1년 뒤인 1968년 4월4일 킹 목사는 암살당한다. 흑인 환경미화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테네시주 멤피스를 방문했던 그는 이날 저녁 오후 6시1분 로레인 모텔의 발코니에 서 있다가 제임스 얼 레이라는 인물에게 저격당했다.


총탄이 오른쪽 뺨을 뚫고 척수를 지나 어깨에 박히는 순간 킹 목사가 곁에 있던 가수 벤 브렌치에게 남긴 말은 “오늘 밤 ‘주여 이 손을 잡아주소서’를 멋지게 불러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킹 목사는 이 말을 남기고, 한 시간 뒤인 7시5분 숨을 거뒀다. 39세의 젊은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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