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대한항공기 무르만스크 '강제착륙' 사건

딸기21 2009. 4. 21.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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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4월20일 오후(현지시간), 대한항공 보잉707 902편이 프랑스 파리의 오를리 공항을 이륙했다. 외국인 62명을 포함한 승객 97명과 승무원 13명 등 110명을 태운 여객기는 도쿄를 거쳐 서울로 오는 정기 여객편이었다.

당시에는 한국과 소련 간 항공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던 터라 여객기는 미국 알래스카의 경유하는 북극 항로로 운항됐다. 그러나 앵커리지 공항에 착륙, 급유를 받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항공기는 나타나지 않았고 교신조차 되지 않았다.
여객기의 행방을 알려준 것은 외신이었다. AP통신은 당시 백악관 대변인이던 조지 파웰의 말을 인용, “마지막 교신 지점과 레이더 추적 결과 등으로 미뤄볼 때 여객기는 소련 변경에 강제착륙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주한 미국사관 측이 “대한항공기가 소련 영공에 들어갔음이 레이더에 포착됐다”고 한국 정부에 통고해왔다.

국교도 없는 적성국가 소련으로 들어간 항공기의 행방과 승객·승무원들의 안전 여부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파리발 항공기는 21일 오전 소련 영내로 들어가 2시간 반 동안 공중을 돈 뒤 무르만스크 남쪽의 한 얼어붙은 호수에 강제착륙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얼음 위에 착륙하는 과정에서 비행기 동체가 크게 무너지고 2명이 숨졌으나, 기적과도 같이 대부분의 탑승자들은 무사했다. 사망자는 한국인 1명과 일본인 1명으로, 이들은 불시착 때의 충격 때문이 아니라 소련 전투기의 총격에 희생됐다는 사실이 뒤에 드러났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일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련 측과 탑승자 송환 협상을 벌였다. 훗날 조사 결과 항공기 조종사와 항법사의 실수로 인해 여객기가 항로를 이탈, 소련 영내에 들어갔다가 소련군의 경고사격을 받고 강제착륙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련과의 협상 끝에 미국은 팬암기를 현지로 급파했고, 승객·승무원·화물의 인수인계 절차가 결정됐다. 그러나 기장과 항법사는 소련 측의 고집 때문에 다른 탑승자들이 모두 송환된 뒤에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냉전이 빚은 이 사건은 자칫 엄청난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사고였으나, 다행히도 기장의 침착한 대응 속에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얼어붙은 호수에 대형 여객기를 무사히 착륙시킨 조종 실력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됐다. 지난해에는 잊혀져가던 이 사건 당시의 현장을 담은 사진들이 러시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개돼 관심을 불러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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