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블록버스터' 비아그라의 그늘

딸기21 2009. 3. 2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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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 하나가 세계에서 이만큼 화제가 되고 이만큼 많은 논란과 관심을 불러모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바로 세계최대 제약회사 화이자가 만든 남성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다.
 
1998년 3월 27일 비아그라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승인을 받았다. 비아그라는 공화당 대선후보를 지낸 밥 돌 전 상원의원과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를 등장시킨 광고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980년대 이후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린 미국과 유럽의 거대 제약회사들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으며 의약품 시장에서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비아그라는 이 시장의 판도를 뒤바꾼 ‘초대박’ 상품이었다.

원래 이 약이 시장에 나올 계획이 아니었다는 것은 지금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화이자는 뉴욕에 본사를 둔 미국 회사이지만, 비아그라의 고향은 영국이다.
영국 남부 켄트주 샌드위치의 화이자 연구실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은 1996년부터 실데나필이라는 성분을 이용해 심혈관계 질환 치료제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개발 과정에서 이 성분이 뜻밖의 효과를 일으킨다는 보고가 나왔다. 회사 측은 이 약의 잠재력을 깨닫고 즉시 계획을 수정했다.

혈압상승에 따른 실명과 사망 등의 치명적인 부작용 사례에도 불구하고 비아그라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짝퉁 비아그라가 판치고 밀매까지 등장했다. 레비트라, 시알리스 등의 유사상품이 줄을 잇기도 했다. 비아그라는 지금까지 3500만건 이상이 처방됐으나, 처방 없이 유통되는 것까지 합치면 판매량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 비아그라와 마약을 섞어 만든 ‘트레일 믹스’가 퍼져 문제가 됐다. 비아그라를 탄 물을 주면 시들어가는 식물이 되살아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스꽝스러운 발명품에 수여되는 미국 ‘이그노벨상 위원회’는 지난 2007년 햄스터에게 비아그라를 먹여 제트래그(시차 때문에 생체리듬이 깨지는 것)를 줄이는 연구를 한 과학자들에게 상을 주기도 했다.

비아그라는 또한 “인류에게 필요한 약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던졌다. 여전히 지구상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3대 전염병인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으로 죽어간다. 제약회사들은 이런 ‘빈국형 질병치료제’보다 선진국 부자 소비자들을 겨냥한 다이어트약이나 호르몬제재 개발에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비아그라같은 약을 ‘인류의 행복을 위한 약(happy drug)’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의 생산라인 감축 때문에 조류독감 치료제 타미플루 공급난이 빚어진 데에서 보이듯, 세계의 가난한 다수는 생존을 위해 저렴한 약을 필요로 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어린이들을 상대로 신약 임상실험을 했던 화이자는 10여년에 걸친 소송 끝에 얼마전 부작용 책임을 지고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의약업계 블록버스터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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